광역단체장 성폭력 문제 이어지자
등장한 남성들의 ‘펜스 룰’
성희롱 제기한 여성의 문제로 인식
문제적 조직문화는 그대로 방치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보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여성폭력방지위원회 민간위원 긴급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보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여성폭력방지위원회 민간위원 긴급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 오거돈 부산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로 이어지는 광역단체장 성폭력 계보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중요한 문제로 다룬다.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을 중요한 문제로 다루는 것과 이 문제를 대응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근래에 여성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상사들이 자신들을 불편해한다는 내용이다. 남성 동료 및 상사들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언행을 조심하는 것은 좋은데 반대 급부로 여성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위 말하면 남성들이 ‘펜스 룰’로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한 공공기관 고위 관리자는 여성과 일하는 걸 불편해해서 중간관리자 여성들을 승진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도록 남성들은 여성들과 거리두기라는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고,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과 얽히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여성들과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성희롱을 제기하는 ‘여성’ 개인의 문제로 본다는 것이고 그 여성 개인은 ‘예민한’, ‘문제적’ 여성이란 결론에 이른다. ‘펜스 룰’을 이야기하는 남성들은 성희롱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적 여성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성희롱이 발생하면 가장 많은 가해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이다. 우리 모두가 분명히 짚고 가야할 부분이 있다. 바로 성희롱은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처럼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삶의 경험과 경로가 달라지는 성별화된 사회에서, 남녀간의 다른 성문화,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성에 대한 이중잣대 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색하다. 그건 마치 우리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대할 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편견 바로 인종차별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중심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도 그렇게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푸는 핵심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넓게는 사회문화, 좁게는 조직문화라는 접근이 필요하다. 직장 내 성희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 사례가 있다. 1996년 미국 일리노이주의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현지공장은 여성근로자에 대한 성희롱을 방치해 공민권법을 위반한 혐의로 제소당했다. 이후 미쯔비시는 여성근로자 3백명에게 3천4백만달러라는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했다. 해당 사례는 미국내 공공기관 및 기업에 경각심을 심어줬고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책임을 강화해나갔다. 그러나 한국에서 직장내 성희롱 발생시 주요한 대응방법은 2가지이다. 성희롱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인정한다면 가해자 개인의 문제라는 것. 그래서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책임을 강화해 성희롱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바꿔나가는 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만을 문제시하고 징계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문제는 이러한 해결방식이 성희롱에 대한 공포를 낳을 뿐 언제든지 성희롱이 발생할 수 있는 조직문화는 그대로 방치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조직 안에서 성희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박원순 성희롱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비서실 조직문화는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올해 4월 비서실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비서실 내 조직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는 박원순 시장의 성희롱에 대해 내부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그럴 리 없다’, ‘실수다’, ‘비서일의 일부이다’ 식의 피해를 사소화하는 충고로 돌아왔다. 만약, 비서실 조직문화가 성희롱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관점을 갖고 있었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었던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를 변호했던 박원순 변호사. 그랬던 그 마저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현재는 과연 지금 직장내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 일단 선출직 단체장들의 비서실에 대한 조직문화 점검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제왕적 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단체장의 비리 및 성희롱 사건을 담당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가 제대로, 신속하게 설치되어 권력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양지영 여성학자
김양지영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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