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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학교수업, 선생님의 가르침 만으로도 미래가 보장되는 사회를 원한다. 사진은 아침 조회시간 강당으로 향하는 여고생들의 밝은 모습. <사진·민원기 기자>

이달 초 정부가 출범시킨 교육혁신위원회의 전성은 위원장은 당장 역점에 둘 교육개혁의 방향을 사회통합으로 제시했다. 구체적 역점 사업으로 장애아교육, 지방교육과 더불어 실업계 교육을 언급했다. 이같이 교육혁신위의 1순위 역점 사업으로 실업계 교육이 선정된 것은 그만큼 실업계 교육의 붕괴가 심각함을 말해준다. 실업계 고등학교 교육의 붕괴는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될 수 있겠지만, 나는 실업 교육의 부실 내지 붕괴와 원조교제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사실 이제까지 연구와 심층 관찰에 근거해 기술했던 이전의 주제들과 달리 이 문제는 내가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쓰기 때문에 객관적 타당성보다는 개연적 타당성에 근거해 기술한다. 개연적 수준에서이지만 이 글을 쓰는 것은 나 역시 혁신위의 진단처럼 이 문제가 도외시될 수 없는 중요한 교육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업고 현장실습은 노예실습 장소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지난 해 12월 발표한 <성매수 대상 청소년 심층조사 연구>에 의하면 연구 대상 청소년들이 성매매를 하게 된 동기는 51.5%가 '용돈이나 유흥비 마련을 위해'라고 답을 하고 있다. 반면에 숙식 해결 등을 위한 생계형은 27.4%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는 연구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청소년 성매매나 원조 교제의 일차적 원인은 청소년의 윤리 의식 마비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나는 청소년 원조교제의 일차적 원인은 무엇보다도 실업고등교육의 붕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실업 고등학교의 붕괴는 지난 6월 12일 참여연대와 전교조가 현장실습제를 인권위에 진정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참여연대가 지난 2월 졸업한 전국 실업고생 75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9%는 현장실습 기간에 학교를 한 번도 나가지 않았고, 35%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월 6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었다. 참여연대는 지난 6월 10일 인권위 제소의 증거로 임금 현황, 4대 보험 비가입, 용역업체를 통한 중간 착취, 산재사고 무방비, 성폭행, 실습생의 구사대 동원 등을 제출했다.

이는 실업 고등학교의 교육 핵심인 현장실습이 비효율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인권위에 제소될 만큼 인권 유린의 현장이 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월 6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거기다 성희롱, 성폭행까지 당하는 게 현장 실습이다. 1970년대 초반 우리 세대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면, 이런 야만도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자행하면 '그런가 보다'하고 수용하는 청소년들을 찾아볼 수 있을까?

지금의 청소년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말도 안 되는 저임금과 성희롱, 성폭행을 수반하는 현장 실습이 단란 주점에서 일하고 남자들과 한 번 놀고 돈 받는 것보다 더 건강한 것도 아니고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판단하는 순간, 선택은 결정된 거 아닌가? 이미 1997년경부터 실업 여고의 경우 한 반 50여명 중 20~30명이 원조교제를 하고 학교 끝난 후 단란주점에서 일한다는 실태가 신문지상으로 보도돼 오고 있다. 현장 실습이라는 명분으로 자기를 노예처럼 부리려는 어른들보다 자기 행동이 더 나쁜 건 아니라는,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이 판단이 아마도 청소년들이 표현해내고 있지 못한, '용돈이나 유흥비 마련'이라는 그들의 표현된 동기 너머의 진짜 동기는 아닐까?

나는 이런 심중에서 청소년의 원조교제를 위시한 다양한 성매매를 성교육이나 자기에 대한 책임성 교육, 성구매자 남자 어른들의 신상 폭로 같은 조처로만 접근해서는 획기적인 감소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조처들은 필요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 수업, 선생님의 가르침만 따라가면 그들에게 살 만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학교 현장과 실업고 졸업생의 진로에 획기적 변화 없이는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인다.

전문대 정원의 70% 실업고에 할당해야

이런 면에서 나는 교육혁신위가 실업고의 문제를 중점 사업으로 들고 나온 것을 반갑게 생각하며(여전히 사교육 문제는 뒷전인 듯 해,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취해지는 조처가 폭증하는 청소년 성매매가 획기적으로 감소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혁신위의 작업은 그 명칭만큼 혁신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작업을 교육혁신위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실업고 교육의 붕괴는 우선 우리 사회의 잉여 대입위주 교육과 깊이 맞물려 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일자리를 가지고 사는 데 별 문제가 없는 유럽 각국의 대학 진학률은 30~40% 정도인 반면에 우리 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80%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 졸업생들의 순수 취업률은 50%가 안 되고 여기에 굳이 대학을 안 나와도 되는 단순노무직이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각 대학이 보고하는 순수 취업률은 50~60%이지만, 이 수치는 사회적 평판을 의식한 대학들의 경우 장기적 전망 없는 임시 취업이나 고시나 언론사 입시 준비생 등 대기 취업자까지 포함된 것이므로 실질 취업률은 그 이하일 것이다. 또한 2000년 3/4분기 한국고용동향에 따르면 대졸 이상 고학력자들의 31%가 건설일용직 등 단순노무자로 취업했다.

실업고 소생의 기획은 한국의 입시위주 교육이 양산한, 이런 부실한 잉여 대학을 구조조정해 고등학교만 나와도 지금 대졸 취업보다 나은 조건으로 취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과도 맞물려 있다고 보인다. 또한 실업고 교육의 붕괴는 사회가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기존의 직종이 대거 사라지고 새로운 직종 분야가 생겨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도 보인다.

따라서 현실적인 실업고 소생 기획은 경제 변화의 큰 흐름을 읽고, 필요한 중간 기술 노동력 수요의 성격을 제대로 진단해낼 수 있는 현장 전문가 그룹과의 공동 작업에서 그려질 수 있으며, 길러낸 인력을 직업 현장이나 전문대 등으로 연계해 줄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전문대는 정원의 70% 이상을 실업고 졸업생으로 채워야 한다는 조처는 어떤가? 물론 거기에 성할당제가 준수된다는 조건으로.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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