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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옷장을 열 때마다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분명 옷이 없는 건 아닌데도 매번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오늘 아침에도 혼잣말로 “아무래도 여름옷을 한 벌 장만해야 하나?”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얼른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중얼거리는 바로 그 순간, 지난 달 미국 LA에서 보았던 유인자 할머니의 옷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지난달에 미국 LA에 계시는 남편의 외가 쪽 아저씨를 찾아뵈었다. 아저씨는 겉으로는 일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건강해 보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깊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2년 전에 당시 65살이었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뜬 후에(사인이 하도 궁금해 부검까지 한 결과 칼슘을 흡수하지 못하는 특이체질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마운 칼슘이 독이 될 수 있다니…), 노모와 지금 살고 있는 노인주택단지로 이사했는데, 2년 전 아내가 사망했던 바로 그 날, 이번에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던 것이다. 향년 89세.

사실 나는 아저씨의 어머니인 유인자 할머니를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얘기로만 많이 들었을 뿐. 할머니에 대한 얘기는 한 많은 우리 할머니들의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주집안 출신의 남편이 납북된 후 외아들과 네 명의 손녀들에게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았다는 것. 굉장히 부지런하셨다는 것 정도. 좀 더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 이민이 흔하지 않던 1970년대 초반에 이민을 결행할 만큼 상당히 진취적이었으며, 유난히 건강하셨다는 정도일까. 아저씨는 후회가 많은 듯 했다.

“노인네가 어찌나 건강하신지 적어도 100살까지 사실 줄 알았어. 그래서 천천히 잘해드려야지 하고 생각했었지…”

자그마한 노인주택의 구석구석에는 할머니의 흔적이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 있었다. 요즘 한국의 웬만한 아파트에서도 보기 힘든 자개장식장, 오래된 재봉틀, 그리고 심지어 양은냄비들까지.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는 할머니가 직접 심고 키웠던 화초들이 어찌나 많은지, 물을 주는 데만 1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였다. 뒷마당에는 호박과 가지가 탐스럽게 열렸고, 그 한 가운데에는 무궁화가 피어있었다.

“노인네가 애국자였다구. 어디에 살든 꼭 무궁화를 심으셨단다.”

은퇴한 50대부터 90대까지의 백인 노인들이 주로 모여 산다는 노인주택단지의 한 구석에 꽃을 피우고 있는 무궁화를 보고 있노라니 쓸쓸하고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가 바로 저 무궁화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맞벌이하는 아들 며느리를 대신하여 가사를 도맡아 하고 손녀 네 명을 모두 키우면서 집안의 핵심인물로 사셨다고는 하나, 물 설고 말 다른 외국에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고국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런데, 정작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할머니의 옷장이었다. 할머니의 옷장에는 할머니가 직접 만든 블라우스며 원피스들이 하나 가득했다. 촉감 좋은 옷감에 바느질은 또 얼마나 얌전한지…. 색깔이 연해 때가 잘 탈 것 같은 옷들에는 직접 만든 옷 덮개까지 얌전히 덮여있었다. 나는 색깔 고운 블라우스 두개를 골라서 정성껏 싸 가지고 왔다. 비록 나를 위해 만드신 것은 아닐지라도 할머니를 기념하는 뜻에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옷장을 열었던 순간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옷장은 여느 부잣집 여자의 옷장처럼 부티가 나는 것도 아니었고, 탐욕적인 느낌과는 더더구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오히려 그 옷장에는 할머니의 외로움과 고독감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옷장을 처음 열었던 순간, 수많은 옷들이 주인을 잃고 방황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랬다. 그 옷들은 할머니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어느 날 버려지고 말 것들이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옷들을 만들고는, 어떻게 하라는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총총히 가신 것일까?

그 후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다시 LA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모하비사막을 경유하게 되었다. 나는 사막을 보면서 “젊을 때는 산을 바라보아야 하고, 나이가 들면 사막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막의 신기루는 되고 싶지 않다”던 정호승 시인의 글을 떠올렸다. 과연 끝없이 펼쳐진 모하비사막은 욕심을 버리라고,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크고 좋은 집, 아름다운 정원, 우아한 가구와 장식들, 갖가지 컬렉션 등등…. 이런 것을 다 가질 필요는 없다. 아니,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해서, 나는 이런 것들을 가진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우선 옷장을 열고, 필요 없는 옷부터 다 정리하고 한결 가뿐하게 살기로 결심했었다(게으른 탓에 아직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는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었던 것과의 오랜 갈등관계를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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