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대상 돼 안도할 때
성차별 규범이 부여한
‘약자성’ 재확인하는
딜레마에 갇히는 여성들

‘여성 안심귀가 서비스’ 스카우트 박정이·강우경씨가 8일 밤 서울 약수동에서 귀가서비스 이용자의 집 앞까지 동행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 안심귀가 서비스’ 스카우트 박정이·강우경씨가 귀가서비스 이용자의 집 앞까지 동행하는 모습. ⓒ여성신문

 

늦은 밤, 전철역을 나오자 중년의 두 여성이 집까지 동행해주시겠다고 했다. “저는 괜찮은데 다른 학생들을…”하며 둘러 보았지만 아무도 없자, 150m 함께 길을 걷게 되었다. 야밤에 한 여성을 양쪽에서 호위하며 행진하듯 앞을 보고 걷는 세 여성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예외적 상황 때문인지 좀 코믹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안전동행을 제의한 분들은 서울시의 ‘안심귀가 스카우트’ 분들이다. 인터넷주소도 있다면서 신청하면 원할 때 동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집에 도착해서 동행보호를 받았다는 양식에 서명하고 기념사진을 제안했지만 사양하신다. 고맙단 인사를 드리고 집에 들어가니 노모가 늦은 귀가를 염려하며 기다리고 계셨다. ‘반딧불이’(안심귀가 스카우트) 동행을 받아 안전하게 왔다고 하자, “그럼 차라도 대접해야지”, 그냥 보내드렸냐고 하신다. 12시가 넘어 차 대접이라니 하면서도 90년 가까이 체화된 노모의 인정에서 어떤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안정감을 느껴졌다.

한 15분 정도 사이에 4명의 여성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는 친절함과 감사가 있었다. 하지만 귀가 보호를 받으면서 약간의 당혹감도 있었고 궁금증도 생겼다. 폭력에 더 민감한 지역에 주거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이같은 보호혜택을 받고 있을까? 안심귀가 서비스는 강남 3구와 관악구에서 호응이 좋고 특히 서초구에서 성공적이라는 기사를 보고 서울시 서비스가 안전 취약 지역에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든 당혹감은 서울시 보호대상이 된 ‘나는 누구인가’가 의식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여성’이었다.

‘보호대상’이 된 당혹감에서인지 여성에 대한 폭력과 범죄의 실상이 궁금해졌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살인, 강도, 방화와 강간 등 흉악한 강력범죄의 피해자중 86.2%의 피해자들이 여성이다. 2018년 범죄학자 이수정은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의 9명은 여성이라고 충격적인 사실을 재확인해준다. 그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 영국과 호주등 일반 서구사회에선 살인 피해자들의 70%가 남성인데 한국은 반대로 여성 피해자가 전체의 50%를 넘는다면서 이같은 대조적 현상은 국제 범죄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네다섯 배 더 안전불안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현실에 놓여있었다. 서울시는 이같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서 안심귀가 서비스를 마련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귀가 안전 서비스가 여성에 대한 폭력 발생을 얼마나 감소시켰는지 통계자료가 나오지 않아서인지 귀가 서비스 정책은 귀가 스카우트 여성 일자리 정책으로서 긍정성이 더 인지되는 면도 보였다.

안심귀가 서비스와 별도로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예방하는 안전장치나 보호서비스는 부재하다시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충격적이다. 2017년 통계를 보면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서 살해당한 여성들이 국가 전체 살인 피해자의 25%에 달한다. 여기에 데이트폭력이나 스토커 등 지인 남성들에 의한 살인미수와 상해, 또 신고로 파악되지 않는 폭력까지 가늠해본다면 여성들은 일상적 삶에서 만연한 폭력의 두려움을 떨치기 힘들고 행동에 주의하면서 자신을 점검 통제하면서 삶을 충만하게 확장시키지 못하고 위축되어 수축된 공간에 한정시키기 쉽다. 이처럼 폭력을 피하고자 위축된 자아가 되어 스스로 ‘보호’ 대상이 되어 안도할 때 여성은 성차별적 규범이 부여한 ‘약자성’을 스스로 재확인하는 딜레마에 갇히게 된다. 성폭력 효과이자 가부장제 유지에 필수적인 것은 여성을 ‘약자’로 확인하는 것인데 여성 스스로 보호 프레임을 환대할 때 역설적으로 성폭력을 고무시키는 역효과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되는 것이다.

‘보호’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성폭력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정의로운 경검 사법체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변화를 촉구하면서 지속적 교육이 면연히 진행되어야 한다. 그에 병행해서 여성들이 무엇보다도 ‘보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자기방어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의 ‘자기방어’ 역량강화를 돕기 위해서는 시와 국가의 다양한 공공서비스가 마련되어 여성들에게 접근성을 갖고 지원되어야 한다. 여성들의 자기 방어는 자신들을 급진적으로 돌보는 것과 같은 궤를 갖고 있다고 본다. 체련단련이나 무술등을 통한 물리적 자기돌봄 방어도 있고 심리적으로 내공을 키우고 내면의 안정을 찾아 폭력의 피해를 다스릴 수 있게 스스로 돌보는 방어도 있다. 문화적 활동 연대로 창의적 장소에서 함께 방어전략을 창조하는 연대적 방어도 필요하다. 여성들이 자기방어 역량을 강화해서 폭력에 무너지지 않고 방어에 성공을 거듭해 나가는 과정은 여성들이 자신의 만족스러운 자아를 지어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심신이 ‘무장’된 여성들의 자기 방어가 갖춰진다면 성범죄가 만연한 강간문화 속에서 여성을 영구적 피해자 ‘보호’ 대상 프레임에 가두는 구태적 폭력이 무력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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