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양극의 혐오 외에 각자의 견해는 존중한다... 이 모든 것은 자초한 일”
“한마디도 할 수 없는 페이스북은 떠나있겠다...참으로 세상은 끔찍하다”

서지현 검사가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지현 검사가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여성신문

국내 ‘미투’(#MeToo) 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혐의로 피소 당한 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한마디도 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13일 서 검사는 자신의 사회연결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저 역시 인권변호사로서 살아오신 고인과 개인적 인연이 가볍지 않았다”며 이렇게 올렸다.

그는 “애통하신 모든 분들이 그렇듯 개인적 충격과 일종의 원망만으로도 견뎌내기 힘들었다”며 “개인적 슬픔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한쪽에서는 함께 조문을 가자하고, 한쪽에서는 함께 피해자를 만나자 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지라 했고,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피해자가 용기 냈으니 책임지라 했다”며 “한마디도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숨쉬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고 글을 썼다.

서 검사는 자신을 향한 여러 비판에 혼란스러운 감정을 밝혔다. 그는 “어떤 분들은 고인에 대한 기본 예의도 없이 무죄추정도 모르고 명복을 빌 수 있는 게 부럽다는 소리를 하냐고 실망이라 했다”며 “저에게는 그리 저를 욕할 수 있는 것조차 얼마나 부러운 것인지 알지 못한 채...어떤 분들은 입장 바꿔 네 가해자가 그렇게 되었음 어땠을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제가 그런 경우를 상상 안 해봤을까봐...”라고 호소했다.

이어 “그 상상으로 인해 심장이 곤두박질치고 대책 없이 떨리고, 그런 상황이 너무 거지같아 숨이 조여드는 공황장애에 시달려보지 않았을까봐...”라며 “이 일이 어떤 트리거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치인도 국가기관도 아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들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여전히 계속 중인 제 자신의 송사조차 제대로 대응할 시간적 정신적 능력마저 부족함에도, 억울함을 도와 달라 개인적으로 도착하는 메시지들은 대부분 능력 밖에 있었다”며 “함께 만나달라는 피해자를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아냥 받고 의절을 당하기도 하고, 성직자의 부탁을 거절 못해 가졌던 만남으로 지탄을 받고 언론사와 분쟁을 겪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서 검사는 자신의 능력과 분수에 맞지 않게 많은 말을 해온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제가 기적처럼 살아남았다는 것이 제가 가해자와 공범들과 편견들 위에 단단히 자리 잡고 서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제가 뛰어내렸던 그 절벽 어디쯤에 우연히 튀어온 돌 뿌리 하나 기적적으로 붙들고 ‘저 미친X 3개월 내에 내쫓자’는 그들을 악행과 조롱을 견뎌내며, 내가 그대로 손을 놓아버리면 혹여나 누군가에게 절망이 될까봐, 내 소중한 이들을 지키지 못할까봐 그 상태로라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라 믿으며 죽을힘을 다해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다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게재했다.

또한 “극단적인 양극의 혐오 외에 각자의 견해는 존중한다”며 “이 모든 것은 모든 이들의 걱정을 무릎쓰고 제가 자초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며 “많은 기대를 해주시는 분들께 송구스럽게도 도져버린 공황장애를 추스르기 버거워 저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기 어렵습니다”고 호소했다.

이어 “한마디도 할 수 없는 페이스북은 떠나있겠다”며“참으로 세상은 끔찍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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