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고 최숙현 선수 폭력 사건이 법원에서 다투어졌다면
[여성논단] 고 최숙현 선수 폭력 사건이 법원에서 다투어졌다면
  •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20.07.13 07:20
  • 수정 2020-07-13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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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선수의 유족은 고인의 사망 후 고인이 전 소속팀 경주시청에서 모욕 및 폭행을 당하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사진은 고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고 최숙현 선수 가족 제공.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선수의 유족은 고인의 사망 후 고인이 전 소속팀 경주시청에서 모욕 및 폭행을 당하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사진은 고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사진=고 최숙현 선수 가족 제공.

 

정부는 사건을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우리는 매번 사건이 주는 아픔으로 인해 먹먹함을 안고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또 다른 사건으로 그 사건을 잊는다.

고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발생한 조재범 사건은 체육계에 폭력과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그 일상성에는 지도자와 선수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위계적인 문화가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우리나라 체육계의 ‘스포츠 엘리트주의’와 ‘승리 지상주의’가 폭력 불감증을 가져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우리는 조재범 대신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던 최숙현의 죽음과 만난다.

필자가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으로 진행한 ‘스포츠 분야 폭력·성폭력 사건 판례 분석 및 구제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포츠 폭력은 우리의 예상대로 ‘학교체육’에서 ‘높은 발생률’을 보였다. 스포츠 폭력에 대한 판례 42건 중 학교체육은 27건, 생활체육은 8건, 전문체육은 7건으로 학교체육에서의 폭력 발생이 64%를 차지했다. 스포츠 성폭력 사건과 같이 학교체육, 즉 학교 운동부에서 폭행이나 상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스포츠 폭력의 대다수는 체육시설에서 훈련 중 기합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핸드볼 코치가 웨이트 장에서 여중생 핸드볼 팀원이 다리를 제대로 들어올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70cm의 나무막대기로 허벅지를 수회 때린다거나’,‘쇼트트랙 강사가 10세의 선수가 운동을 못한다는 이유로 선수대기실에 엎드리게 한 후 위험한 물건인 하키스틱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수회 때려 다발성 타박상을 입게’하는 사례 등이 전형적인 모습이다. 감독, 코치 등에 의한 폭력은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모욕이나 폭언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수들은 훈련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폭언에 대해 진로 등에서 불이익을 입지 않기 위해 훈련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폭력은 훈련이 된다.

선배에 의한 폭력은 감독, 코치보다 더 잔인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훈련뿐만 합숙 등 생활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숙소에서 가위 등 흉기로 폭행하거나 체육관에서 BB탄을 발사하고 쇠파이프(60cm)로 폭행’하거나,‘선배들이 공동하여 후배들을 야산으로 끌고 가 각목으로 폭행하고 소위 ‘정신교육’을 하는 등’폭행과 괴롭힘의 정도와 양태가 매우 심각하다.

가해자의 지위는 ‘교육자’가 가장 많고 피해자의 대다수가 미성년자였다. 스포츠 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수직적 위계 관계 하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폭행에 사용되는 폭행 도구는 신체를 이용한 폭행보다 도구를 이용한 폭행이 더 많아 상해 정도가 심각했다. 하키스틱, 야구방망이, 골프채 등 눈에 보이는 모든 도구는 폭행 도구가 되었다. 폭행 횟수 또한 1회 폭행한 사건은 전체의 약 7%에 불과했고,‘수회’가 40%,‘16회에서 20회 초과’도 14%에 이르렀다. 폭행이 지속 반복되었고, 상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스포츠 폭력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스포츠 폭력에 대해서‘피고인의 스포츠 분야에서의 지위와 가능성’,‘신체적 접촉이라는 훈련과정의 특성’,‘피고인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다른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고 있고’, ‘피고인이 오랜 기간 교육자로 아이들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지도하여 왔고’,‘피고인의 지도 노력 등에 따라 피해자들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고’,‘신체 접촉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경기의 특성 및 고된 훈련 과정에서 지나치게 성적 및 목표 달성의 의욕이 앞선 나머지 훈육의 목적에서 우발적으로 가한 범행’으로 보이는 점 등을 양형에 유리한 사유로 고려했다.

이런 사유들을 가해자 양형에 유리한 사유로 고려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교육자로서 책임감 있게 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성과를 거둔 점을 양형 사유로 하는 것은 스포츠 폭력이 매달 중심주의, 성과주의로 인해 발생되고 은폐되는 현실에서 성과가 있으면 폭력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는 것과 같다. 다른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는 것은 스포츠계의 생태계에서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 코치, 감독, 선수는 한 팀을 구성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 팀에 균열이 일어나면 아이의 장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기고, 주위의 압력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도자의 폭행이 '그동안 대물림된 관행', '훈육 차원의 행동',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행동'으로 보는 것 역시 문제다. 성폭력 사건의 감경 사유를‘가해자가 잘못된 성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동안 주위에서 성폭력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면?. 피해자가 장기간 가혹한 폭력 속에서 받았을 고통에 대한 감경 사유가 훈육이 필요하다는 잘못된 생각, 폭력의 대물림 등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그‘관점과 관행’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그 관점과 관행 때문에 감경하는 것으로 이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를 양형의 감경사유로 보는 한 스포츠 폭력은 근절되기 어렵다. 그런 관점과 관행은 스포츠 폭력 사건을 엄벌하는 것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

고 최숙현 선수 폭력 사건은 체육계 폭력 사건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이 법원에서 다투어졌을 경우를 상상하면, 어떤 결론이 나왔을 것인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동안 법원이 인정해 온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가 이 사건에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스포츠 폭력이 다른 일반 폭력 사건과 달리 위계적 관계에서 발생하고, 피해자가 체육계를 떠나기 어렵다는 조건이라는 것과 함께 피해자의 피해가 장기간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그 피해 회복이 어렵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또 스포츠 폭력 사건에서 탄원을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기 위해서는 스포츠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탄원의 진실성에 대한 판단 역시 필요하다.

그녀가 겪었을 일상의 공포와 고통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다. 폭력은 인간의 존엄과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어떤 폭력도 정당한 폭력은 없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그녀의 죽음에 우리 사회는 제대로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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