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사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
우리 앞에 정의로운 사법 시스템 같은 것은 없다
권력 집단의 본질을 알면서도 여성 주체의 권력 쟁취를 통한 시스템 변화에 소홀
시스템과 현실 사회를 바꿀 새로운 운동을 계획해야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6일 오후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0.07.06. ⓒ뉴시스·여성신문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6일 오후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0.07.06. ⓒ뉴시스·여성신문

한 여성이 일하러 가는 아침에 반쯤 얼어 죽어가는 뱀을 발견하고 불쌍한 마음에 집으로 데려와 난롯가에 눕힌다. 살아난 뱀은 고마워하는 대신 생명의 은인을 물어버린다. 뱀에 물린 여성은 너를 구했는데 왜 나를 물어 죽이려고 하느냐 소리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뱀의 조롱 섞인 말이었다.
“입 닥쳐, 멍청한 여자야. 너는 나를 데려올 때 내가 뱀이란 걸 알고 있었잖아.”

미국 민권 운동가이자 작곡가 오스카 브라운(Oscar Brown)이 만들고, 알 윌슨(Al Wilson)이 부른 ‘The Snake’라는 노래의 내용이다. 이 노래는 그리스의 작가 이솝의 우화 ‘농부와 독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으로, 한국에서는 ‘최진사댁 셋째 딸’로 번안돼 알려지기도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미국 대선 유세 과정 중에 이 노래의 가사를 몇 차례 언급했다. 이민자들은 언제든 미국인들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며 말이다. 그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 장벽 구축의 근거이기도 했다. 이렇게 타인과 인종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내세웠던 트럼프였지만 미국의 45대 대통령이 됐다.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미국은 어떤가. 매일 5만 명이 넘는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고, 누적 집계로 따지면 1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죠지 플로이드 사망 사고로 인해 미국 주요 도시에는 주방위군이 배치되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제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을까? 전염병이 시시각각 퍼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무능하고 무지한 태도로 일관하고, 사회를 조각조각 분열시키고 있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탄식하고 있다.

그런 그들을 보며 트럼프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닥쳐, 멍청한 인간들아. 너희들은 나를 뽑을 때부터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알고 있었잖아.

The Snake 에 빗대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풍자하는 합성 이미지 ⓒ구글 이미지 검색
The Snake 에 빗대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풍자하는 합성 이미지 ⓒ구글 이미지 검색

 

지난 6일 서울고법 형사20부 강영수 부장판사는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범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불허했다. 불허 결정의 이유는 “범죄인을 더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범죄인 인도 제도의 취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손정우는 1년 6개월의 실형을 살고 자유의 몸이 됐다. 

아동대상 성범죄에 대해 구형량을 대폭 늘이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는 다르게 ‘K-판결‘의 형량 논리는 온정적이고 기계적인 경우가 많다. 판사는 가해자가 초범이고 충동적이었으며, 반성의 의지가 보인다는 이유를 앞세워 감형했다.

검찰이라고 이번 문제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대한민국 검찰은 4개국이 2년 넘게 협조하여 잡은 최악의 범죄자에게 2년을 구형했고, 사이트 이용자 235명 가운데 43명 만을 기소했다. 게다가 기소된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징역형을 받지 않았다.

이번 판결에 시민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40만 넘는 사람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강영수 판사의 대법관 후보 박탈을 요구하고 있고, 법원 앞에서는 판결의 부당함을 알리는 1인 시위와 단체들의 성명 발표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져 온 사법부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당하고 말았다. 독사인 것을 알면서도 가슴에 품어준 이야기 속 여성처럼.

 

ⓒ구글 이미지 검색
책 'Woe unto you, lawyers' ⓒ 구글 이미지 검색

법학자 프레드 로델(Fred Rodell)은 그의 저서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Woe unto you, lawyers)’에서 ‘인간 분쟁의 질서 있는 처리에서 확실성과 일관성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므로, 현명한 방책은 구체적인 개별 문제의 해결에서 우직하게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의라는 것 역시 분명히 형태가 없고 불확실한 이념’이며 ‘어떤 사람의 정의가 다른 사람에게는 독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제정된 성문법’이 여기에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진 집단의 본질을 알면서도 권력 쟁취를 통한 시스템의 변화에 소홀했다. 이제 우리 앞에 정의로운 사법 시스템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일을 계획하자.
그 첫 번째 페이지에 적혀야 할 내용은 성범죄 관련 일체의 법률을 처벌효력이 있는 수준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이버 성착취를 비롯한 성범죄는 한 때의 호기심에서 비롯한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는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누구나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범죄는 곧 삶의 포기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사법 체계 시스템 운영과정에 법률가 개인의 의지가 반영될 여지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에 장착시켜야 한다. 성범죄 사건의 기소에서 판결까지피해자는 보호받고 범죄자는 더욱 엄중하게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판사 한 사람에게 정의를 구걸하지 말고, 민주적인 절차 안에서 시민들의 일상이 보호받을 수 있는 운동을 펼쳐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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