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게임업계 ‘페미니즘 검열’은 혐오·차별”
인권위 “게임업계 ‘페미니즘 검열’은 혐오·차별”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0.07.09 12:06
  • 수정 2020-07-15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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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페미니즘 검열’ 피해자 6인 진정에
인권위 “사상 및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여성 작가 배제 관행은 차별”
문체부·콘진원에 개선 노력 권고도
여성·시민단체가 23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사상 등을 이유로 계약 체결을 거부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여성·시민단체가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사상 등을 이유로 계약 체결을 거부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2016년 7월 게임회사 넥슨이 자사 게임 캐릭터 성우가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부당 교체한 사건, 같은 해 11월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 제작사 넥스트 플로어가 페미니즘을 공개 지지했다는 이유로 일러스트 작가 송미나 씨의 작업을 삭제한 사건, 지난해 모바일 게임 제작사가 페미니즘 지지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외주 일러스트 작가의 작업물을 내린 사건...

이처럼 페미니즘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온라인상 괴롭힘을 당하고 업계에서 퇴출당하는 현상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게임 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적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인권위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게임업체들에도 구체적인 개선 노력을 하라고 권고했다.

온라인 게임, SNS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여성혐오 표현을 그냥 내버려둬야 할까? 이런 표현이 여성들에게 분노, 우울, 물리적 고통을 동반한 트라우마 등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규영 웹디자이너
온라인 게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여성혐오 표현. 이런 표현들이 여성들에게 분노, 우울, 물리적 고통을 동반한 트라우마 등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여성신문

남성 중심·성차별적 게임업계
여성 제작·배급 노동자는 약 30%뿐
대부분 비정규직에 ‘예술인’ 권리 인정 못 받아
최근 페미니스트 노동자 낙인 찍기에
업계 퇴출 요구 이어져...인권위 “혐오”

게임산업은 대표적인 남초 산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9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8년 게임산업 종사자 8만5492명 중 게임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수는 3만 7035명이고, 이 중 여성은 29.9%뿐이다. 개발 58.9%, 디자인 18.2%, 마케팅 10.3% 등 여성 종사자는 성별·직종별 구성비에서 모두 소수다. 게임문화를 보면 여전히 성별 고정관념, 여성의 성적 대상화 문제가 심각하며, 일부 남성 게이머들이 과대 대표되면서 성희롱이나 성차별도 빈번하다(여성가족부, ‘게임문화산업 특정 성별영향평가’, 2018)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메갈사냥’이라고 불리는 게임 업계 내 페미니즘에 대한 낙인과 배제 흐름이 최근 4년간 이어졌다. 그간 피해자 6명이 인권위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이들의 진정을 인권위법상 조사대상이 아니거나 진정 가능 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했지만, 피해자들이 겪은 일은“혐오”,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또한 진정인들 같은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웹툰 작가는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비정규직·프리랜서 신분인 경우가 대다수라서 게임 이용자들의 퇴출 요구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게임 개발에 참여한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음악가들이 현행법상 예술인의 권리를 인정·보호받을 수 없는 것도 문제다. 현행 문화예술진흥법은 ‘문학, 미술(응용미술 포함),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 및 만화’만을 ‘문화예술’로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에게 불이익을 준 게임회사들 대부분은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일 뿐, 작가들의 사상이나 온라인상 퇴출 요구와는 관계없다”고 해명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 등의 영향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회사들도 “게임이용자들의 요구와 반응을 반영했을 뿐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상,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차별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기업의 인권존중 의무”를 강조했다.“기업의 중요한 목적이 이윤추구라고 해도, 소비자의 요구가 인권·정의와 같은 기본적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면 무시하거나, 소비자를 설득·제재하는 것이 책임 있는 기업의 모습”이라며, “게임 이용자의 부당한 종사자 퇴출 요구에 동조하지 않거나, 혐오표현 및 부당한 종사자 퇴출 요구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혐오의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들이 관련 업계에서 다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문체부·콘진원에 개선 노력 권고도

또 인권위는 문체부 장관에게 △게임업계 내 여성혐오 및 차별에 대한 관행을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실시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관행 개선 방안 마련 △게임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호를 위해 「문화예술진흥법」상 ‘문화예술’의 범위를 ‘게임’ 분야까지 확장하는 법률 개정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도 게임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의 업체 선정기준을 개선하는 등 여성혐오 및 차별 관행 근절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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