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사고 나라별 환전하고
삼엄한 국경 통관 절차 밟던
30년 전 자동차 유럽 여럽
1일 유럽 여행 빗장 풀렸지만
아직은 ‘그림의 떡’

지난 4월 6일 코로나19로 프랑스가 봉쇄된 가운데 파리 에펠탑 앞 텅 빈 광장을 한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고 있다. ©파리=AP/뉴시스
지난 4월 6일 코로나19로 프랑스가 봉쇄된 가운데 파리 에펠탑 앞 텅 빈 광장을 한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고 있다. ©파리=AP/뉴시스

 

얼마 전 장롱을 정리하다가 상자에 보관된 유럽의 옛 지폐와 동전을 발견했다. 유로화가 사용되는 지금에야 필요가 없지만, 예전에는 유럽여행을 하려면 가장 먼저 각국 화폐로 환전부터 하는 것이 필수였다. 여행 후 남은 화폐들이 지금은 옛 여행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31년 전 자동차로 유럽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다. 덴마크, 서독(1991년 11월 독일 통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태리, 네덜란드, 벨기에 등 8개국을 다녀오는 첫 여행이라 준비할 것도 많았다. 루트를 점검하기 위해 큰 지도부터 구입했다. 도서관에서 각 국 여행정보 책자를 빌려 꼼꼼히 통과하는 지역과 도시들의 숙박시설, 유적, 그리고 식당들을 점검하며 계획을 세우며 마음은 벌써 유럽을 행해 운전하는 흥분에 들 떠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은행에 가서 나라별로 다른 화폐를 바꾸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얼마를 쓰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통과하는 나라에 머무는 날짜만큼 계산해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끝나면 미쉘린 책자에 나온 숙박지에 팩스나 전화로 유스호스텔과 캠핑오두막집 등을 예약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할 일은 많았지만, 여행을 곧 하게 된다는 기대감에 잠을 설쳐가며 계획을 세우던 추억이 어제 일처럼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5개국 노르딕 국가간 맺어진 여행자유화 협약으로 통과하는데 큰 제약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유럽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헬싱보리에서 헬싱외르를 연결하는 배에 차를 실고 넘어 갔고, 덴마크와 당시 서독은 쉴레스빅-홀스타인 지방으로 돌아가던지, 짧은 길로 배로 넘어가는 방법이 있었다. 덴마크와 독일의 전쟁이 있었던 곳을 보고 싶어 홀스타인 지역 육로를 택했다. 그런데 독일로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국경에 설치된 검사대 통과는 중요한 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통과하는 시간에 따라 차이기 나지만 낮에는 검사를 받기 위해 몇 킬로미터 늘어선 차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통과를 위해서만 꼬박 4~5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멋진 여행을 위해서는 꼭 치러야 할 댓가였다고나 할까?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 통과, 프랑스에서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태리 등의 국경 통과는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비슷한 절차와 시간이 소요되었다. 국경 통관 절차는 삼엄했다. 마약 운반 의심자가 통과한다는 제보가 있을 때는 마약탐지견까지 동원되는 터라 살벌하고 긴장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긴장과 기다림의 지침은 통과되어 빠져 나올 때마다 또 다른 희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내가 잡은 핸들이 꺽이는 곳으로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자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첫 여행은 나에게 유럽이라는 개념의 환상에서 눈과 귀, 그리고 코로 느낄 수 있게 한 실체로 가슴에 간직되었다.

이렇게 다녀온 유럽여행이 코로나 이전까지는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으로 호텔 예약이 가능하고 모든 정보와 지도는 핸드폰 안으로 들어와 있다. 항공료가 워낙 저렴했기 때문에 현지에 도착해 차를 렌트해 주위를 여행하는 것이 더 편하고 저렴한 여행이 되었다.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이제는 유로 단일화폐를 쓰니 환전으로부터 해방된 것만으로도 여행은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진 셈이다.

7월 1일부터 전 유럽이 조심스럽게 여행 개방을 단행했다. 코로나로 굳게 닫혀 있었던 국경도 열리게 되었고, 자동차 여행도 가능해졌다. 올해는 스웨덴과 덴마크를 연결한 외레순드 다리 (Öresund bridge)를 건설한지 20년이 된 해다. 양국 간의 왕자와 공주가 만나 악수를 하며 유럽 대륙을 북유럽까지 연결한 이 다리로 유럽은 한 땅덩어리가 되었다고 들떴던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유럽은 개방했지만 스웨덴은 아직 코로나로 계속 희생자가 늘고 있고, 확진자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유럽은 조심스럽게 국경을 열어 제쳤지만,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절은 이제 지났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언제든 다시 전염될 수 있는 상황이라 여행 자체가 조심스럽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색다른 문화를 접촉하는 것이 여행 본연의 목적인데 이제는 사람 만나는 것이 조심스럽고 언제 동양인이라고 공격할 지 모르는 두려움이 상시 존재한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던 자유여행이 제한되어 우리는 새장에 갇힌 새의 신세가 된 셈이다. 스웨덴 농부들이 요즘 신이 났다고 한다. 매년 해외로 빠져 나갔던 여행객들이 올해는 나갈 수가 없어 식당과 호텔이 다시 살아나고 전국의 트래킹 코스와 캠핑이 유행이라 고기 소비와 야채 소비가 많아졌다고 한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값이 2차대전 이후 최고 높은 가격으로 올라 농민들은 힘든 시간을 그래도 일하는 보람을 이겨내고 있다고 한다.

지금 유럽의 모습을 보면서 30년 전의 시간여행을 한듯한 착각에 빠진다. 언젠가 다시 유럽과 세계가 활짝 열릴 때 다시 한번 맘껏 만끽하고 싶은 것은 나만의 꿈은 아닐 것 같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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