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jpg

실제 조선 중기 여성은 재산 상속에 남녀 평등

<다모>, <대장금> 전문직 여성 발굴 새바람

역사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동거인 때문에 툴툴대며 KBS TV <역사 스페셜>을 보던 조은미씨는 깜짝 놀랐다. 신사임당(1504~1551) 이야기였다. 신사임당이 누구냐? 조선시대 율곡 이이의 어머니요, 현모양처의 대명사다. 위로는 남편을 받들고, 아래로는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인물이다. 조은미씨가 알기론 그랬다. 그런데 역사 스페셜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신사임당 친정 엄마가 원래 재산가였다. 또 친정 대대로 딸들에게 재산을 상속했다. 그 시절엔 딸들에게도 아들과 똑같이 재산을 물려줬다. 그 뿐만 아니었다. 여자가 시집갈 때 가져간 재산은 여자 스스로 관리하고 결정했다. 너무나 유명한 오죽헌은 사임당 친정의 별채였다. 사임당은 혼인 후에도 오랫동안 남편 이원수와 함께 강릉 친정에서 살았던 것. 또 신사임당은 죽으면서 남편에게 약조를 받았다. 나 죽은 후 절대 재혼하지 말 것.

최근 발간한 <한국생활사 박물관>(사계절)에도 그 사실이 등장한다. 16세기까지는 아들 딸 구별 없이 유산을 물려받았다. 제사도 돌려 가며 지냈다. 족보에도 남녀 자손을 함께 실었다. 태어난 순서대로 실었으며, 혼인한 딸의 후손도 같이 실었다. 지금 같은 가부장제 변화가 일어난 건 17세기였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사극 속 여성은 이런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암투를 일삼고, 청순가련하다. 왜 그런가?

조선시대 궁녀는 무조건 요부?

오는 가을에는 사극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 친다.

SBS TV는 <야인시대> 후속 프로로 사극 <왕의 여자>(김재형, 정효 공동연출, 윤정건 극본)를 결정했다. 총 78부작으로 10월 6일(월)부터 안방을 찾아갈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부터 광해군(재위 1608~1623)까지. 그 시대를 아우른 개똥이란 궁녀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개똥이였다가 김상궁이 된 이 여인은 조선시대 3대 요부 중 하나다. 연출을 맡은 김재형 PD는 <용의 눈물>, <여인천하>로 이어지는 사극 전문PD. 40여년 연출 경력에 6년을 뺀 기간이 모두 사극이었다.

MBC TV는 9월15일(월)부터 50부작 대하사극 <대장금>(이병훈 연출, 김영현 극본)을 방영한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궁녀로 들어가 궁중 최고의 요리사였던 인물,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의술을 공부해 조선조 유일한 임금 주치의까지 올랐던 장금이란 실존 인물 이야기다. 연출을 맡은 이병훈 PD 역시 <허준>, <상도>로 이어지는 사극 전문 PD다.

사극이지만 두 드라마 모두 여성의 성공 스토리다. 시대적 배경은 둘 다 조선 중기이고, 극중 배경도 둘 다 궁궐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 전개는 사뭇 다를 것으로 보인다.

김재형 PD는 궁중 암투의 대가다. 그가 연출한 사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권력을 향해 매진하는 불나방이었다. <여인천하>도 실제 여인천하를 이룬 문정왕후의 수렴첨정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가 보여준 건, 정난정과 문정왕후가 얼마나 간계를 잘 꾸미느냐였다. 이번 <왕의 여자>도 권력을 지닌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한 권력 암투가 주내용이다.

반면에 이병훈 PD가 연출한 사극 속 인물은 대개 권력 암투엔 관심이 없다. 그는 평민이 성공하는 스토리의 대가다. 또 그 주인공은 모두 휴머니스트였다. 다만 지금까지 남성이 주인공이었다면 이번엔 여성이다. <대장금> 기획의도도 “왕과 왕비, 후궁과 권신 중심의 권력쟁탈과 암투를 기본으로 엮는, 기존 궁중사극에서 벗어나, 미천한 신분의 주인공 장금(長今)을 중심으로 궁중 내의 하층민들의 갖가지 애환과 갈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사극이라도 누가 기획, 연출하고 누가 극본을 쓰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등 역사적 자료를 참조한다지만, 사극도 드라마는 드라마다. 등장인물의 말투, 행동, 생각 등 소소한 부분은 모두 작가의 머릿속에서 태어난다.

제작진 따라 사극 여성도 달라

현재 MBC TV에서 방영중인 사극 <다모>는 일단 새롭다. 사극 같지가 않다. 30대인 젊은 이재규 PD의 연출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여성 캐릭터가 우선 돋보인다. 기존 사극에서 전혀 볼 수 없던 여성이었다. 또 새로운 역사에 대한 놀라움도 컸다. <허준>으로 처음 ‘의녀’란 전문직 여성이 등장했다면, 이번엔 조선시대 여형사다.

이 <다모>에 꼬박 1년이 넘는 시간을 매달렸다는 정형수 작가에 따르면, ‘다모’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 3~4회 정도 나온다. 역모를 발각해 의금부에 넘긴 게 다모라는 언급이 있다. 이들이 지금으로 치면 스파이 노릇을 했다. 장시간 잠입해서 정보를 빼내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 또 규방 수사를 이들이 맡았다는 것. 그 단초를 갖고 만들어낸 게 드라마 <다모>다. 물론 단초일 뿐 나머진, 작가의 상상이다. 정작가는 중국이 원작인 조선시대 법의학서 <무원론>이란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시절에도 과학수사법이 있었다니? 그 책을 바탕으로 지금의 미국 법의학 드라마 C.S.I의 사극판 같은 <다모>가 탄생했다. 그 법의학의 중심에 채옥이 있다. 1회 때 채옥은 과학적인 지식과 지략까지 갖춘 여형사였다. 그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느 사극 속 여성들과 달리 당당한 채옥이란 인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방학기 만화 <다모>란 원작이 있다지만, 정형수 작가는 고심이 많았다. “채옥이 무예가 출중한 건 원작인 방학기 만화 <다모> 그대로다. 그러나 채옥이 평민으로 광대패에 있던 원작 내용을 관비로 바꾸었다. 채옥이 지금도 자주적일 수는 없는 입장이긴 하다. 관비니까. 하지만 산에서 황보윤의 보살핌을 받으며 오누이처럼 자란 걸로 설정했다. 그렇게 사회와 동떨어져 자랐기에, 관비 신분이지만 똑바로 대들고 할 말 다하는 인물이 가능했다. 그래서 자기 주장이 있는 캐릭터가 가능했다.”

사극에서 주체적이고 자기 직업이 있는 여성 캐릭터의 단초는 <대망>이었다. <대망>의 여성 캐릭터들은 기존 사극과 달랐다. 동희(손예진)나 여성 무사 자연(유선), 단애(조민수) 등 사극에서도 자기 일을 가지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사방에 포진해 있었다. <대망>은 <모래시계>로 유명한 송지나 극본이었다.

결국 사극도 관점이 문제다. 아무리 드라마가 허구라 해도, 사극을 보면서 허구를 떠올리는 시청자가 몇이나 될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극이야말로 필요한 게 있다. 여남평등 역사관이다. 사극에도 차별 받는 여성을 위한 여성부가 필요하다.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