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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이 전업주부에 대한 신용카드 발급을 제한하면서 주부의 경제활동을 남편에 종속시키고 가계 수입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란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사>

전업주부가 카드 부실의 원인?

남편 관리 가족카드만 사용하라니

국민은행이 전업주부에 대한 신용카드 발급을 제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 측은 통합관리를 통해 가계 부실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일상화된 경제활동인 신용카드 사용에서 주부를 남편에 종속시키는 제도라는 여성들의 비난이 거세다.

기존에는 전업주부가 남편의 소득 증빙 서류를 제출하면 사실 확인 후 본인 명의의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지난 6일부터 전업주부 등 소득이 불확실한 직업군에 카드 신규 발급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신용카드 신규 회원 자격기준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주부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거래 실적이나 예금이 없을 경우 더 이상 카드를 발급받지 못한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결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원칙을 지킨 것”이라며 “남편의 실질 소득 내에서 카드 사용을 통합 관리해 가계 부실을 막을 수 있다”고 자격 강화의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이 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전업주부의 연체율 자료를 대외에 공개할 수 없다”며 “하지만 다른 직업군이나 연령층과 비교해 주부의 연체율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카드 이용자 중 전업주부는 10%에도 못 미친다. 10% 이하의 전업주부 카드 고객, 그 중 일부 주부의 연체율이 “평균보다 조금 높게”나타난 것이 카드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전업주부 전체의 카드 발급 제한을 실시한 배경이 됐다.

은행 측은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본인 명의의 재산이 있거나 은행 단골고객으로 일정한 수준의 거래실적과 계좌 잔고가 있는 사람은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남편의 가족카드를 여러 장 발급받아 사용할 수 있어 전업 주부들의 불편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부 카드 발급 제한을 바라보는 여성단체의 입장은 다르다. 여성민우회 여성환경센터 명진숙 사무국장은 “카드사의 방만한 운영에 따른 카드 부실 책임을 전업주부에게 돌리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은행의 가족카드 사용 제안은 “전업주부의 특수성을 무시한 기업 편의적인 사고”라고 지적했다.

가족카드는 소득이 있는 남편 본인의 신청으로만 발급 가능하고 사용일자, 사용처, 사용금액 등이 모두 결제자인 남편에게 통보된다. 신용카드 사용이 일상화된 시대에 전업주부의 주요한 경제활동은 남편의 허락 하에서만 시작될 수 있고 그 경제활동도 남편의 보호와 관리에 놓이게 된 것이다.

명진숙 사무국장은 “재생산과 가사 노동을 통해 주부가 가계에 기여한다는 사회적 인정을 뒤엎고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라며 “가정의 불평등한 부부관계와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를 고착화시키는 제도”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업주부가 사용한 가족카드 거래 실적이 모두 남편의 신용으로 쌓인다는 점이 문제다. 신용카드 사용 등 거래 실적이 이후 신용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이 되는 현실에 비춰볼 때 직업사회에서 배제된 전업주부들은 신용사회에서도 배제되고 마는 것이다.

명진숙 국장은 “이용에 대한 권리만 있을 뿐 신용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고 전업주부들의 경제활동은 잊혀지고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신용묵 금융팀장 역시 “카드 발급 제한 대상에 전업주부를 포함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가계 부실을 문제 삼는다면 전업주부나 남편에게 가계 수입의 50%에 해당되는 신용 한도를 부여하면 될 일이지, 카드 발급 자체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집안 살림을 꾸리기 위한 전업주부의 카드 사용은 ‘일상가사대리권’에 적용 받으므로 카드 대금이 연체될 경우 채권 회수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신 팀장은 “수입이 있는 사람에게 카드를 발급한다는 기본 원칙도 중요하다”고 밝힌 후 “하지만 이 원칙이 가계 수입 절반의 권한이 있는 전업주부나 전업남편을 카드 발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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