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제정 72년 흘렀지만
여성 피해 ‘역사’로 기록되지 못해
8월25~9월29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서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국가보안법의 폐해로 피해를 입었으나 ‘역사’로서 온전히 기록되지 못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원회(추진위)는 오는 8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를 연다고 밝혔다. 민주인권기념관은 과거 간첩과 국가보안법 사건 수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세워졌다. 정식 개관은 2022년이다. 추진위는 양심수후원회, 민주노총, 민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등이 제정 72년이 된 국가보안법을 역사 속으로 보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국가보안법 피해 여성들의 구술을 채록하고 전시의 형태로 국가보안법 의제를 다시금 사회적으로 환기하기 위해 마련됐다. 추진위는 “국가보안법에 맞서온 사회운동에서 여성은 어떤 위치와 조건에 놓여 있었는지 성찰하고, ‘지금-여기’ 여성들을 연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포스터.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포스터.

 

여성에게 국가보안법의 피해는
역사도, 경력도 되지 못했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여성들의 서사는 ‘옥바라지’가 전부는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무고하게 간첩 혹은 위반자로 조작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그저 국가보안법 피해 ‘남성’의 어머니, 아내, 여동생, 딸로 만 호명되는 경우도 많다. 여성들의 증언이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탓이다. 여성들은 이렇게 외친다.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면 남성은 공적인 자리에서 그 피해가 이야기 되고, 경력이 되기도 하고, 역사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여성은 그렇게 이야기 되고 있나요?”

추진위는 이번 전시에서 “국가보안법이 한 인간의 존엄, 일상, 관계를 어떻게 파괴해왔는지 전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돌아보면 저는 중성적으로 살았어요. 여성적 이미지는 학생 운동할 때 어느 정도 버려야 했으니까요. 주변을 보면 국가보안법으로 수배되는 남성들이 많았어요. 그럼 여성들이 다 옥바라지 했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나요? 왜 그 여성들의 입으로는 국가보안법의 피해가 말해지지 않았나요?” (유해정)

“체포되고 들어갔을 때, 죽음보다 다른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큰 거예요. 내가 여자니까 혹시 나한테…. 내가 여기 잡혀왔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혹시 이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우리는 경력이 되지도 못하고 역사가 되지도 못하고 이렇게 사는 것 같아요.” (양은영)

“우리 딸은 박종철 추모제 주동했다고 징벌방에 넣은 거야. 그래서 내가 날마다 찾아갔어. 자꾸 가니깐 어느 날은 소장이 딸을 풀어줄 테니 조용히 가래. 그래서 내가 말했지. 무슨 죄가 있다고 여자애를 일곱 명이나 가둬 놓냐? 우리 딸은 주동했다 쳐도 다른 애들은 왜 가두냐. 내 딸만 위해서 나는 여기 와서 싸우는 게 아니다. 딸한테도 말했어. 소장이 너만 풀어놓고 애들은 안 풀어준단다. 그러니깐 넌 거기서 싸우고 난 여기서 싸우자.” (정순녀)

 

이번 전시에는 김은혜·안소희·유가려·유숙렬·정순녀 등 여성 11명의 이야기 담은 도서도 발간 11명의 여성을 만나 증언을 기록한 인권기록활동가 홍세미, 이호연, 유해정, 박희정, 강곤씨와 사진작가 정택용씨가 참여했고 권은비씨가 전시 감독을 맡았다.

추진위는 ‘국가보안법과 여성 서사’라는 의제를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기 텀블벅 모금 페이지를 열었다. △텀블벅 모금 페이지 https://tumblbug.com/nsa_museum/story

펀딩 금액은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전시회 설치물 제작, 포스터 및 홍보물 인쇄, 티셔츠 및 도록 등 리워드 제작, 배송비 등에 쓰인다.

모금에 참여하면 금액별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티셔츠, 전시 도록, 『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가제) 도서, 작가 해설권·찾아가는 특강 등을 리워드(reward·후원에 대한 답례의 의미로 제공하는 선물)가 제공된다.

추진위는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와, 사유를 통해 길어 올려진 언어들이 여성의 존엄과 자존을 회복하는 기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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