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법] 어떤 균형점
[모두의 법] 어떤 균형점
  •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 승인 2020.07.03 09:57
  • 수정 2020-07-08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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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확산된 ‘신림동 강간범 영상공개합니다’라는 제목의 1분30초짜리 동영상 화면.
온라인에 확산된 ‘신림동 강간범 영상공개합니다’라는 제목의 1분30초짜리 동영상 화면.

 

왕을 죽이고 모반을 획책한다. 마음속으로만. 그러나 근대 이전의 어느 시대에서였다면 이런 상상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경스러운 대역죄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생각의 형태로 담겨 있는 내용이 아니라 외부적으로 객관화된 행위만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잡히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근대적인 형사법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른바 ‘신림동강간미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얼마 전 있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강간이나 추행의 고의 말고는 다른 의도를 떠올릴 수가 없다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표현 내지 무언의 행동에 그치는 것만으로도 폭행이나 협박이 개시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상의 사례다. 어떤 남성이 정말로 누군가를 강간하려는 내심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는 칼이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것도 아니었고, 겉보기만큼은 아주 그윽하기 그지없는 낯빛을 띤 채로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외양만으로는 누구도 그가 강간할 마음을 품고 있다고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그리고 그 어떤 다른 행동도 하지 않은 채로 누군가의 집 문 앞에 서서 조용히 두 차례 노크를 했다. 그의 낯빛만큼은 참으로 얄미우리만치 평온했다. 하지만 집 주인인 여성은 문 밖의 남성을 보고서는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도 모르는 새 그만 문을 열어주고야 말았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그 남성은 겁에 질려 종잇장처럼 창백해진 집 주인의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던 것이었는지 금세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 여성의 면전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집을 나왔다.

이 남성은 이미 마음 속에서 한 여성을 간음했다. 어쩌면 문을 연 그 순간에 마음속 간음행위는 이미 완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강간이라는 무서운 범죄를 꿈꾸며 문을 두드린 순간, 도덕적인 비난가능성은 모두 충족되었다. 이 남성은 누가 뭐라 하건 나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나타난 행위 자체만을 놓고 보자. 이 남성이 마음속에서 음험하고 그릇된 욕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이 남성은 조용히 문을 두드렸고,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집 밖으로 나오는 행동만을 했다.

만일 평범하고 일상적인 표현이나 무언의 행동만으로도 폭행이나 협박의 개시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위 사례의 남성은 당연히 강간미수로 처벌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하지 않은가? 이는 머릿속에 생각의 형태로만 담겨 있는 내용까지도 남김없이 처벌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죄형법정주의, 그리고 객관적으로 현출된 행위에 대해서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원칙을 우리가 고수하는 한, 이번의 대법원 판결과 같은 결론을 뒤바꾸기는 어렵다. 그리고 위와 같은 법적 원칙들의 존재의의를 믿기에 필자는 이번 사건에서 피고인을 변론했다.

이러한 결론이 불만족스럽다면 법률 규정을 새로 만들면 될까? 유감이지만 필자는 이 사안에 관해서는 입법적 개선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범죄 구성요건은 모호해서는 아니 되며 최대한도에서 명확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마음속에만 담겨 있는 내용을 객관적으로 포착할 만한 구성요건을 구체적으로 명료하게 설정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사물의 본질상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필자의 견해에 분노를 느끼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냐고. 손 놓고 앉아서 피해가 현실화 되기만을 기다리자는 거냐고. 필자 역시 그렇고 그런 변호사들 중의 하나였을 뿐인 거냐고. 그런 생각을 가지는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맞다. 불충분해 보일 것이다. 다만,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악행에 대응할 방법이 없지만은 않다.

미흡한 점은 있지만 우리 법에는 ‘지속적 괴롭힘’을 경범죄로서 처벌하는 구성요건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주거침입 범행에 관한 양형기준을 설정하면서 위 규정을 참조하여 ‘상대방의 명시적 내지 추정적 의사에 반하여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함으로써 다른 추가적 범죄발생의 가능성을 유발한 경우’에는 이를 양형인자 상의 가중요소로서 참작한다는 것을 명시해 두고, 재판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요소를 중하게 고려하여 형량을 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주거침입은 3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가능한 범죄다. 그 법정형의 범위에서 가중사유를 참작하여 처벌수준을 높이는 것은 법리상으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놀랍게도 아직 주거침입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마련된 바가 없을 뿐더러, 주거침입죄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실무상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양형기준을 구체화해 이를 적용해 나간다면 사회적 필요성에 부응해 처벌의 공백을 줄여나가면서도 죄형법정주의 위반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유형의 범죄에 있어서 양형기준을 위와 같이 구체적으로 명시해 둔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원칙에 비춰 볼 때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법 규정에 현상을 억지로라도 끼워 맞추려 하는 충동이 생긴다면 이런 구절을 한 번 기억해 보면 좋겠다. ‘법규의 근본사상과 건전한 국민감정에 비추어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행위는 처벌한다. 행위에 대하여 직접 적용할 법규가 없을 때에는 그 행위에 가장 적합한 기본사상을 갖는 법규에 의하여 처벌한다.’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나치독일의 형법 제2조 조문이다. 악을 묵과할 수 없다는 당위만으로 우리가 기본적 원칙을 저버려서는 아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충분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우리는 여러 원칙들 아래에서 모종의 균형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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