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맘’이 붙는 성차별적 표현들이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세아 기자
‘엄마’, ‘맘’이 붙는 성차별적 육아 표현들이 여전히 학교 안팎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세아 기자

녹색어머니회, 마미캅, 조이맘.... 아이들의 안전과 학습을 위해 양육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든 제도들이다. 그런데 왜 항상 ‘엄마’만 등장할까?

‘엄마’, ‘맘’이 붙는 표현들이 언어 성차별 사례로 수차례 지목됐지만, 여전히 학교 안팎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교육청에서마저 공식 제도 명칭으로 채택하고 있다.

 


 

#1. 종로구는 이달 초 혜화초등학교 앞에 ‘맘스 스테이션(MOM’S STATION)’을 설치했다. 아이들 등하교 시 이용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종로구가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혜화초등학교 앞 아동친화거리 조성 프로젝트’의 하나다.

한 시민은 지난 6일 종로구 혜화초 앞 맘스스테이션을 두고 “육아를 여성과 엄마의 영역에 제한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트윗을 썼다. ⓒ트위터 화면 캡처
한 시민은 지난 6일 종로구 혜화초 앞 맘스스테이션을 두고 “육아를 여성과 엄마의 영역에 제한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트윗을 썼다. 이후 이 간판은 내려졌다. ⓒ트위터 화면 캡처

며칠 지나지 않아 종로구는 ‘맘스 스테이션’ 간판을 내렸다. 비판 여론 때문이다. 한 여성이 지난 6일 “영어로 쓰여있는 것도 모자라, 육아를 여성과 엄마의 영역에 제한하는 전근대적이고 못난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트윗을 올리면서, 이 여성을 포함해 몇몇 시민들이 종로구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 사업 담당인 배기량 종로구청 도로과 주무관은 “(맘스 스테이션이) 친숙한 표현이라서 사용했는데, 시민들의 문제 제기에 공감해 떼어냈다. 차별 등 문제가 없는 새로운 이름을 공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초등학교 앞 정류장에 얼마 전 쓰여 있던 'MOM'S STATION'이 논란이 되자 글자가 없어진 상태이다. ⓒ홍수형 기자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초등학교 앞 정류장에 얼마 전 쓰여 있던 'MOM'S STATION'이 논란이 되자 글자가 없어진 상태이다. ⓒ홍수형 기자

‘맘스 스테이션’은 몇 년 전부터 전국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양육자들이 맘스 스테이션이 있는 아파트를 선호해 분양 업체에서도 주요 홍보 요소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성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오거나, 이를 고려해 명칭을 변경했다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2. “방과 후 학부모 학교지킴이(마미캅) 회원을 모집합니다.” 경기도 평택시 송화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김모(39) 씨가 최근 받은 교육통신문이다. ‘학부모’를 모집한다면서 ‘마미캅’이라고 표기해 “성차별적”이라고 느꼈다는 김 씨는 “육아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하는 것인데 이런 사소한 표기에서부터 아직도 여성이 육아를 전담한다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기도 평택시 송화초등학교에서 최근 발송한 교육통신문. ⓒ송화초등학교
경기도 평택시 송화초등학교에서 최근 발송한 교육통신문. ⓒ송화초등학교
최근 서울 문백초등학교의 마미캅 활동 모습. ⓒ유튜브 영상 캡처
최근 서울 문백초등학교의 마미캅 활동 모습. ⓒ유튜브 영상 캡처

이 학교만이 아니다. 전국 여러 학교에서는 학교 주변을 순찰하는 ‘마미캅(어머니 폴리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화맘(리딩맘)’ 등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성별 제한 없이 아이들 ‘양육자’ 누구나 참여하는 제도인데, 하나같이 엄마들만 호출한다.

세종시교육청의 교육자원봉사자 ‘조이맘’ 제도도 마찬가지다. 조이맘이란 “조카를 사랑하는 이모의 마음”의 줄임말이다. 세종시교육청의 올해 주요 업무 계획 발표 중 조이맘 제도 소개란에는 아이를 돌보는 여성의 그림만 실렸다. 2018년 세종시교육청 블로그에 올라온 실제 활동사진을 봐도 여성들 뿐이다. 

세종시교육청의 2020년 주요 업무 계획 발표 내용 중 조이맘 제도 소개 부분. 아이를 돌보는 여성 그림도 함께 넣었다. ⓒ세종시교육청 블로그 캡처
세종시교육청의 2020년 주요 업무 계획 발표 내용 중 조이맘 제도 소개 부분. 아이를 돌보는 여성 그림도 함께 넣었다. ⓒ세종시교육청 블로그 캡처
2018년 세종시교육청 블로그에 올라온 조이맘 활동사진에는 여성 봉사자들만 있다. ⓒ세종시교육청 블로그 화면 캡처
2018년 세종시교육청 블로그에 올라온 조이맘 활동사진에는 여성 봉사자들만 있다. ⓒ세종시교육청 블로그 화면 캡처

이민정 세종시교육청 장학사는 “조이맘은 친근한 표현일 뿐이다. 이모뿐 아니라 삼촌들도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남성들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종시민 신모 씨는 “평등의 가치를 가르치는 데 앞장서야 할 교육청이 육아를 여성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낡은 관습을 따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모 초등학교 ‘솔리’ 교사는 “교육부, 교육청 차원에서 ‘양육자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 때 성별 지칭 단어를 지양하라’는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이들 등하교 교통안전을 돕는 ‘녹색어머니회’가 성차별적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1969년 ‘자모(姉母)교통지도반’으로 시작해 1972년 녹색어머니회로 바뀐 이래로 쭉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회원자격도 어머니로 명시하고 있어 남성 가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최윤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장은 “그간 학교 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요즘 ‘어머니회’ 대신 ‘학부모회’를 쓰는 곳들이 늘었다. 하지만 녹색어머니회, 새마을어머니회 같은 학교 밖 단체 명칭은 교육부나 학교 차원에서 바꾸기 어려운 현실이다”라고 했다.

이어보기▶ 조이맘·마미캅 대신 명예교사·아이안전지킴이 어때요 https://bit.ly/31elT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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