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여행·회의 금지된 시대
우연한 관계와 접촉을 통해
배우고 얻을 기회 사라져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을 위해 학교에 갔다. 대면 수업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온라인으로나마 학생들에게 학교를 보여주고 싶었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교정의 이곳 저곳을 카메라와 걷기 시작하자 학생들의 반응이 급격히 활발해졌다. 교내 동산을 가보라던가, 식당이 보고싶다던가, 도서관을 보여달라는 등 요구도 많았다. 학교를 한 번도 본적 없어서 너무 반갑다는 1학년의 댓글이 마음에 남았다. 학교는 때로 지긋지긋하고, 나를 밀어내는 공간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양한 감정과 관계를 품은 장소이기도 하다. 올해 새내기들은 이런 장소를 만들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이 한 번도 학교에 와보지 못한 채로 1학기가 끝났다.

한 번도 학교에 올 수 없다는 것이, 단순히 학교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뜻 만은 아니다. 사회를 만나고 접촉하고, 알아갈 기회가 극히 좁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20대들이 학교만 들어갈 수 없던 것도 아니다. 코로나19와 함께 신입사원 채용 역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보수적 인력운영으로 기존의 취업자보다 취업 예비자들이 더 큰 경제적 위기를 겪을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이미 20대는 3월에 가장 높은 대출율과 연체율을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와 함께 고용이 급격히 줄어들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집단은 20대 여성이다. 노동성원권이 아닌 사회성원권에 대한 상상이 활발해 지는 시기이지만, 여전히 일터와 학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에 한 발 들여놓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회에 진입함으로써 인간은 복합적인 장면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운다. 코로나19는 이 공간들을 오프라인에서 삭제했다.

물론 온라인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 수업의 아쉬움은 의도적인 만남 이외에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단 수업이 끝나고 화면이 꺼지면, 학생들은 의도적이고 공식적인 접촉이 이외에 나를 만날 기회가 없다. 강의 후 자료를 챙기며 수업에 대한 감상을 나눌 일도, 복도에서의 대화를 넘겨 들으며 배우는 일도,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커피를 얻어마시는 일도 없다. 우연한 관계와 접촉을 통해 배우고 얻을 기회들이 없다. 화상회의는 목적과 목표가 있는, 이미 연결된 관계에서, 주소와 비밀번호와 함께 시작된다. 안건이 종료되면 화면은 꺼진다. 회의실 구석에서 남은 간식을 먹으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할 일이 없다. 불필요한 여행과 회의가 금지된 시대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한국 사회가 ‘불필요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여긴 적은 그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꾸준히 ‘생산성 없는'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해왔다. 남의 얘기를 들어주느라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하나라도 ‘쓸모 있는' 일을 하라는 말, 익숙하지 않은가. 기성세대의 가치를 충분히 습득한 20대들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도 받지 않는다. 알바몬과 잡코리아의 조사에서 성인 10명 중 5명이 음성통화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한다. 전공 배경이 다양한 교양 수업에서 물었을 때, 친구의 전화가 끊어지길 기다렸다가 메시지로 ‘왜?’라고 묻는다는 사람이 수강생의 60%를 넘었다.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메시지는 효율적이다. 우연한 주고받음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음성통화와 달리 내가 편집할 수 있다. 긴 대화는 에너지를 소모시키며, 해야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 할 일은 늘 쌓여있고, 대화는 피곤한 일이다. 그렇지만 통화로 바쁘다고 말하는 건 친구를 잃을까 불안하다. 관계에는 최대한 낮은 에너지를, 업적에 최대한 높은 에너지를 쓰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욕망이다.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끊어져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전화는 받지 않는 20대들이 라방(온라인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라이브 방송의 줄임말)은 즐겨 참여한다는 점이다. 날 것의, 우연한, 비공식적인 ‘진정성’을 경험하기 위해 이들은 라방을 본다. 폭발적인 상호작용도 그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일반 동영상보다 라이브 방송에 상호작용이 10배 증가했다고 한다.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신구술문화세대들은 보정되고 편집된 1인칭의 영상이 아닌, 날 것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위하여 라이브 방송을 만들고 본다. 이 곳에서 우연한 사회적 장면들이 발생한다. 진행자가 계획하지 않은 질문에 의해 이야기 흐름이 변화하고, 다른 장면에의 요구로 화면은 달라진다. 그리고 함께 보는 사람들이 있다. 화면 속에서 함께 감탄하기도 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대화는 계속 된다.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은 라방이 코로나 시대 유일하게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장소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전환은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통로를 요청한다. 없어진 것들과 이미 있어온 것들을 이해하는 일은 계속 될 것이다.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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