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로 가기 위해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 가족이 가재도구를 챙겨 강을 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월 방글라데시 팔롱 카일 인근에서 촬영된 로힝야 가족 모습. ©AP/뉴시스
방글라데시로 가기 위해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 가족이 가재도구를 챙겨 강을 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월 방글라데시 팔롱 카일 인근에서 촬영된 로힝야 가족 모습. ©AP/뉴시스

 

딱 작년 이맘때였다. 로힝야 난민 사업 수요조사 차 방글라데시 남쪽 국경도시인 콕스 바자르(Cox’s Bazaar)를 방문했다. 우기가 시작되어 방문 기간 내내 장대비가 쏟아졌고, 한낮 기온은 30도에 육박했다. 콕스 바자르에서도 차로 두세 시간을 더 가서 도착한 난민 캠프의 상황은 더욱더 열악했다. 캠프의 평균 인구밀도는 뉴욕시의 4배, 우한시의 8배에 달했으며, 인당 평균 사용 가능한 공간이 2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대나무에 타폴린을 얹어 만든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실내는 더위와 습도로 숨이 턱턱 막혔다. 길은 가축의 분뇨와 쓰레기로 범벅이 되어 진흙탕이었고, 곳곳이 침수되어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로힝야 난민들은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었다.

난민 캠프를 방문하는 동안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면담을 했다. 이들은 미얀마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성적폭력과 인권유린을 당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키우는 돌봄자로써, 지붕 위에 텃밭을 가꾸고, 재봉틀을 돌려 옷을 만들고, 간식을 만들어 팔고, 닭을 키워 달걀을 파는 생산자로써, 부녀회와 자조 그룹 활동을 통해 캠프 구석구석을 챙기는 지역사회 리더로써 다양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막막한 삶의 공간에 지난 5월 중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두어야 할 거리가 없고 씻을 수 있는 물이 모자라는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와 손 씻기는 한낮 구호에 불과할지 모른다. 학교 폐쇄와 이동 금지는 가족 구성원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었고, 이들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공간으로 간주되던 집에 남성들이 종일 머무르게 되면서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이동 제한으로 인해 산전 검진과 출산 등 여성들의 재생산 보건 서비스 이용이 어려워졌으며, 특히 폭력 피해 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담소 이용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성들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코로나는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금지하는 무슬림의 규율을 준수하지 않아 신이 벌을 내린 결과라는 인식이다. 이로 인해 로힝야 여성의 삶은 더 감시받고 더 통제되고 있다.

문득 그때 만났던 여성들이 생각났다. 잘 지내고 있을까. 어떠한 대응책도 충분치 않을 그곳에서, 그들은 오늘도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을 것이다. 구호 단체들의 소식에 의하면 로힝야 여성들은 캠프 내 코로나 대응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부녀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면서 가가호호 방문하여 코로나 대응을 위한 인식개선 및 방역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간 배운 재봉기술을 활용해 마스크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20일은 난민의 날이었다. 지구촌 저편의 난민 여성들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류애란 무엇인지, 자매애란 무엇인지. 과연 지금 이곳 여기의 우리의 삶과 지금 저곳 저기의 그녀들의 삶이 어떻게 연대하고 연결될 수 있을지. 왜냐하면 적어도 우리는 코로나가 여성들이 잘못해서 신이 내린 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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