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여고 재학생들 포스트잇 공론화 이후
2년2개월 만에 성폭력 가해자 첫 공판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는 "법원은 #스쿨미투에 제대로 응답하라"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한국여성의전화 등 44개 여성단체가 주최한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법원은 #스쿨미투에 제대로 응답하라"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용화여고 #스쿨미투 이후 2년2개월 만에 성폭력 가해자의 첫 재판이 23일 열린다. 시민들은 "법원은 #스쿨미투에 제대로 응답하라"며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44개 여성단체는 23일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피해당사자와 시민들의 분노가, 용기가, 직접적인 행동이 가해자를 교실에서 경찰서에, 검찰청에, 그리고 법정에 세웠다”라며 “이제는 법원이 응답할 차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 스쿨미투를 대표하는 중요한 재판”이라며 “법원은 학내 성폭력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 학내 성폭력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는 정의로운 판결로 응답하길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스쿨미투는 2018년 3월 용화여고 졸업생 10여명이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위원회’를 결성하면서 들불처럼 번졌다. 당시 용화여고 졸업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설문조사를 실시해 교사들의 성폭력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337건의 응답 중 ‘성폭력을 직접 경험했다’는 응답이 175건으로 절반이 넘었다. 재학생들도 학교 창문에 스쿨미투에 동참하는 뜻을 담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잘못 저지른 사람은 마땅한 책임져야 한다는 상식 지켜라”
손문숙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팀장은 “스쿨 미투 이후 관련 교사 대부분은 가벼운 징계처분을 받은 후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라며 “서울 용화여고의 경우 18명 중 파면과 해밍 각 1명, 계약해지 1명 외 정직과 견책 등 징계를 받았지만 현재 15명의 교사가 학교로 복귀했다”라고 밝혔다. 

손 상담팀장은 “2019년 교육부는 ‘성희롱 관련 종합지침’을 발표했지만 17개 시도교육청은 스쿨미투 처리 과정조차 숨기며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등 2년이 지나도록 스쿨미투는 제대로 된 해결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라며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상식을 얼마나 더 알려줘야 하냐”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 기자회견에서 한 아이가 '나쁜사람' 이라고 쓰여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한국여성의전화 등 44개 여성단체가 주최한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 기자회견에서 한 어린이가 직접 쓴 '나쁜사람' 이라고 쓰여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미투, 이 싸움의 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닮아 있을 것”
양지혜 청소년페미니스트 위티 공동대표는 “미투, 이 싸움의 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닮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공동대표는 “학내 성폭력 고발은 학교 담장을 넘어 세계로 뻗어갔다”라며 “작년 10월 국제사회는 성차별적인 성교육 표준안 폐지부터 성별관점을 반영한 학교폭력 대응지침 개정 등 스쿨미투 고발자들의 요구안을 고스란히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듯 스쿨미투 고발은 세계적인 지지를 받는 운동으로 성장했다”라며 “그러나 동시에 스쿨미투는 ‘작은 미투’였다”라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공론화를 막으려 했고, 전수조사 과정에서 고발자의 신별이 유출되는 사건도 있었다”라며 “고발로 지목된 가해교사는 대부분 제대로 된 징계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고발자들이 고발 이후 사안처리결과에 대해 제대로 공유받지 못했고 진실을 밝힐 권리, 정의를 실현할 권리, 그동안의 피해에 대한 보상과 배상을 받을 권리,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 피해자로써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징계 받은 교사들이 교실로 돌아온 것은 가벼운 처벌 때문”
김정덕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2018년 스쿨미투 학교성폭력 고발운동이 일어나고 징계를 받았던 교사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가벼운 처벌 때문이었다”라며 “성추행 피해자들의 진술은 180여명 학생들의 175건 성추행 고발의 일부”라고 말했다. 

김 공동대표는 “검찰이 증거불충분 혐의없음으로 묵살했던 명백한 증언들은 피해자들과 그들과 함께 선 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있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가해교사다. 학교와 서울시교육청은 아동학대 고발 신고의무자로서 투명한 행정처리 결과를 신속히 공개해 학교와 학생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과 용화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고소인 당사자는 대독으로 발언을 진행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미온적 태도가 교사 성폭력을 대물림 한다”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은 “피해생존자들은 스쿨미투 운동 이후 1심 재판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오롯이 혼자서 감내했다”라며 “1심 판결이 나왔지만 재판에 참여한 생존자들과 재학생, 졸업생들은 마음껏 일상에 복귀할 수 없다고 전한다”라고 했다. 

이들은 “‘교사 한 두 명 처벌 받는다고 나아질 것 없다’라는 비판적인 이야기도 한다. 이는 학생들이 SNS·교육당국·수사기관을 통해 고발한 교사 중 극히 일부만 법의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3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복부지방법원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가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3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복부지방법원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가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스쿨미투가 우리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용화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고소인 당사자는 “나는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나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가보려는 것”이라며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해서 회의에 참여하고 법적 절차를 밟아 온 것, 이러한 시도가 혹여 개인적인 원한을 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 등 지금 새삼스레 두렵고 무거운 마음이 든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미투가 아닌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을까? 과거에 답이 있다”라며 “다른 방법들이 통하지 않았기에 터져 나온 것이 바로 미투 운동이다”라고 했다. 

이어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을지라도 그때로서는 이것이 우리의 최선이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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