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성범죄 의사 611명
자격 정지 처분은 단 4명 뿐
면허취소 후 재교부 승인율 97%

살인·성폭행·강도·인신매매 등으로
실형 선고받아도 의사면허 유지
권칠승 의원 “강력범죄 저지르면
의사면허 박탈해야” 법안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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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의사 성범죄 검거현황’을 보면 2014~2019년까지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611명이었다. 2014년부터 2019년 6월까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자격을 정지당한 의사는 총 74명이었으나, 이 가운데 성범죄가 사유인 경우는 4명에 불과했다. 처분은 전부 자격정지 1개월이었다. ©pexels.com

 

의사는 성범죄를 저질러도 의사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환자들은 자신을 진료하는 의사가 성범죄 전과자인지 알 방법도 없어 ‘철옹성’ 같은 의사면허 관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2007년 경남 통영의 의사가 수면내시경 치료를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성폭행해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의사면허가 유지돼 현재 다른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1년 서울에서는 여성을 성폭행하고 위협을 가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의사가 여전히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성범죄 의사 2014년 83명→2018년 163명 2배 증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경찰청에서 받은 ‘최근 5년간 의사 성범죄 검거현황’을 보면 2014~2019년까지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611명이었다. ‘강간·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성범죄자가 539명(88.2%)으로 가장 많았고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57명(9.3%),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14명(2.3%), ‘성적목적 공공장소 침입’ 1명(0.2%) 순이었다.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2014년 83명, 2015년 109명, 2016년 119명, 2017년 137명, 2018년 163명 등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환자를 상대로 진료를 하고 있다.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9년 6월까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자격을 정지당한 의사는 총 74명이었으나, 이 가운데 성범죄가 사유인 경우는 4명에 불과했다. 처분은 전부 자격정지 1개월이었다.

어렵게 의사면허가 취소돼도 1~3년 안에 재교부 신청을 하면 대부분 다시 복구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면허 재교부 신청한 의사 109명 중 106명(97.3%)이 면허를 회복했다.

 

성범죄는 쏙 빠진 ‘바늘구멍’ 의사면허 취소 사유

의사가 성폭행이나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지난 2000년 국민의 의료 이용 편의와 의료 서비스의 효율화를 이유로, 의사면허 취소 기준이 의료법 위반에 한정하도록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행 의료법상 의사면허 취소 사유는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및 진료비 부당 청구 등 일부 범죄에만 한정되어 있어 의사가 살인, 강도, 성폭행 등으로 처벌을 받아도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잇따르자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제66조와 의료법 시행령 제32조상 자격정지 사유인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따른 ‘의료인의 품위 손상’에 성범죄를 포함 해석해, 의사 자격 정지 기간을 1개월에서 1년으로 강화했다. 하지만 처벌 대상이 성폭력특례법상 강간, 강제추행, 미성년자 간음 추행 등으로 한정된다. 불법촬영이나 진료실 밖 성범죄는 해당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중대한 의료사고를 내 면허 정지나 취소가 되었다 하더라도, 현재 징계 의료인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환자는 자신을 진료하는 의사가 범법자인지 확인한 길이 전혀 없는 것이다. 반면 변호사, 법무사, 공인중개사 등 다른 전문직의 경우 원칙적으로 범죄 유형에 관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변호사와 세무사의 경우, 단순 징계를 받아도 실명과 내역 등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의사면허 정비 법안 20대 국회서 폐기, 의협 “반대”

권칠승 의원은 23일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고 징계 내용을 공개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20대 국회 때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검토보고서를 보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권 의원의 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헌법상 평등원칙을 과도하게 침해하면서 특정 직업군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과잉규제”라고 밝혔고, 대한병원협회는 “의료인의 면허취소·징벌적 공표행위가 개인 명예실추 등 과도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측면 등을 고려해 의료정책적 관점에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일본의 경우 벌금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형의 경중에 따라 의사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되고, 미국 역시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유죄 전력이 있는 의사는 면허를 받을 수 없고 이러한 정보도 공개하고 있다”며 “면허 정지나 취소된 의료인의 정보를 모르고 진료를 받는 것은 환자 권리가 침해되는 것으로, 우리나라도 의료인 면허 규제와 징계정보 공개를 통해 의사를 비롯한 국민 모두 생명과 안전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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