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오전 대구 동구 봉무동 영신초등학교 교실 앞에서 어린이가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뉴시스
6월 3일 오전 대구 동구 봉무동 영신초등학교 교실 앞에서 어린이가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예루야, 엄마 아빠가 자꾸만 게임을 못 하게 해서 서운하지? 게임을 너무 오래 하면 다른 걸 할 시간이 줄어들어서 그러는 거니까 네가 이해하려무나. 어릴 때는 밖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시간도 필요하거든. 게임에 열중하다 보면 그런 걸 할 시간이 없어져 버려.

다만 조금 아쉬운 건, 네가 게임 속에서 어떻게 노는지를 알면 엄마 아빠도 무턱대고 금지만 하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해. 사실 너는 마을 만들기 연습을 하는 거잖아. 소꿉장난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놀이를 하는 것이지. 소꿉장난할 때는 아는 친구 네댓 명이 모여 가족 놀이를 하지만 온라인 게임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수백 명과 함께 커뮤니티(마을)를 만들어나가잖아. 엄마 아빠가 너의 커뮤니티에 들어와 봤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엔 너무 바쁘신 것 같다. 그나마 삼촌이 주말에 접속하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렴.

그런데 며칠 전에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 십 수 명이 한 친구를 에워싸고 ‘코로나’라고 부르면서 괴롭히고 있더라. 어린 친구들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너희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이런 식으로 친구를 괴롭히는 건 너희들의 심성이 못돼서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너희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거든. 어른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똑같이 행동해.

원래 사람은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가 닥치면 비합리적인 행동을 보이곤 해.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못 본 척하려는 것이지. 예를 들어,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이 원인이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는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보다는 ‘범인이 누굴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기 쉬워.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누구만 없으면 다 해결된다’ 같은 생각에 빠져 버리는 것이지. 이런 생각을 그냥 내버려 두면 서로 죽고 죽이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어.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불안을 적절히 풀어주는 여러 장치를 만들어 냈어. 예를 들어, 오랫동안 비가 안 와서 농사짓기가 힘들어지면 다 함께 모여 떠들썩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일부러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마을에 뿌리거나, 산에 불을 지르거나 하는 식으로 ‘굿판’을 벌였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검증된 안전한 방법으로 불안을 없애려고 한 거야.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이렇게 굿판을 벌이는 것은 사람들이 꼭 어떤 신비한 존재를 믿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야.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내버려 두면 마을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굿판을 벌이는 거야. 옛날 사람들이라고 모두가 미신을 믿었던 것은 아니란다.

‘왕따’는 어쩌면 미개한 수준의 굿판, 안전해지기 전의 굿판인지도 모르겠다. 굿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면서 개인을 희생시켜 제물로 바치기도 했거든. 왕따 역시 당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해칠 수 있어. 어떤 친구를 ‘코로나’라고 놀리고 따돌리면, 그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평생 괴로워하게 될 거야.

게임 속 마을에도 ‘굿판’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너희들이 홀로 불안과 싸우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삼촌도 궁리해보겠지만 아마 삼촌 머릿속에서 나온 굿판보다 너희가 만들어 낸 것이 더 나을 거야. 삼촌이 보기에 너희는 이미 좋은 굿판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거든. 마을 놀이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선택하는 연습을 많이 했잖아. 어른들은 너희가 그런 연습을 계속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될 것 같아. 앞으로도 많이 놀고 많이 대화하고 많이 생각해 보길.

이런, 또 게임 오래 한다고 엄마 아빠한테 혼나겠다. 틈틈이 책도 읽고 뛰어놀기도 하고 적당히 눈치도 보면서 그러면서 마을 놀이를 계속해 주길. 

 

*필자 나일등 :&nbsp;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필자 나일등 :&nbsp;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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