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캣맘의 보통날] (끝) 여섯 고양이와 한 사람
[사직동 캣맘의 보통날] (끝) 여섯 고양이와 한 사람
  • 조은 작가
  • 승인 2020.06.27 10:34
  • 수정 2020-06-27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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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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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고양이가 있는 내 공간은 포근하다. 과거 한 마리 개와 같이 살 때는, 아픈 그 녀석에게 묶여 늘 허덕거렸기 때문인지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살던 녀석이 죽었을 때 나는 무지 슬픈 한편 홀가분했고,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 지도를 펼쳐 놓고 훌쩍 떠나버릴 장소를 고르기 시작했다.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며 시간을 보냈다. 짧은 행복이었다.

몇 달 안 되어 만삭의 고양이가 마당에 나타났다. 한 마리가 아홉 마리가 되는 데 여섯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내게 고양이가 바글거리는 집은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버티고 있는 공간이었는데, 놀랍게도 캣맘이 되어버렸다.

개가 살아 있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캣맘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모두 갑작스러웠다. 어머니는 의사의 예상보다 최소 20년은 넘게 살았고, 무척 건강했던 아버지는 어느 날 새벽 집에서 조용히 임종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저녁, 통화를 했다. 내일 집에 갈게요, 라는 내 말에 아버지는 바쁠 텐데 뭣하러 와, 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새벽, 믿어지지 않는 소식을 받고 서둘러 길고양이 급식처를 돌았다. 나는 충격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3일 분의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었다. 아니, 주려고 애썼다. 밥그릇은 자꾸 엎질러졌고, 물그릇의 물은 바닥에 닿는 순간 반도 남지 않았다. 허둥대는 등 뒤에서 새벽잠이 없는 한 이웃이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었다. 부친이 우리나라의 첫 수의사였다는 그 역시 동물을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하자 숨통이 좀 트이는 것도 같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노인은 부의금이 든 봉투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등 뒤로 들으며 걷다 어딘가에다 그 봉투를 떨어뜨렸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바로 옆방에서 자고 있는 잠귀 밝은 아들을 깨우지 않은 채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홑이불을 깔고 반듯이 누워 숨을 거두었다. 얼굴이 아주 평온했다. 평소 아버지는 “나는 절대로 병원에서 죽지 않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러니 아버지는 4시간 전에 늦은 밤 인사를 나눴던 아들을 깨워 굳이 연명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다는 점만 빼면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바라는 죽음이기도 했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딸인 내가 불쌍한 생명들을 돌봤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처럼 편히 떠난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우리 집에 들어와 있는 하니와 써니, 복이 이야기만 했다. 참깨와 로미 이야기를 다 하기도 전에 들개에게 물린 젠틀맨이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그랬다. 로미는 하니와 써니의 엄마이자 나의 1호 고양이다. 내겐 가장 애틋한 1호이지만 녀석은 7년 만에 실내로 들어왔다. 친구가 미리 로미라는 이름까지 지어놓고 데리고 가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다. 로미보다 먼저 집에 들인 참깨는 공터에서 단풍나무를 타고 두 여름을 나며 발랄하게 놀던 녀석인데,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7, 8차례의 수술을 견디며 석 달 넘게 병원치레를 한 뒤 목 카라를 한 채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시내 한복판이지만 바로 옆에는 인왕산이 있고 오래된 동네라 길고양이가 좋아하는 골목골목이 이어진다. 그런데 종로구는 서울시의 다른 자치구에 비해 동물 복지 수준이 가장 낮다고 한다. 서울의 얼굴로 통하는 종로가 길고양이에게 최악의 환경이라는 사실이 늘 가슴 아프다.

내 부모님은 늘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 했는데, 나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싸움 기록을 경신하며 산다. 엊그제 만나고 온 왕자냥과 공주냥이 나의 싸움에 힘을 준다. 인왕산 들개에 쫒기며 꾀죄죄하던 녀석들을 잡아 입양을 보냈는데, 아주 당당하고 아름다운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멀리서 눈인사만 하던 녀석들이 밥 주던 나를 알아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 지면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나를 도와준 따뜻한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인간의 자만심을 걱정하며 지구 환경을 생각하고, 조용히 행동하는 그들과의 인연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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