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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신 잘하기(How to Deal)>

너무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주인공

10대 소녀 소비자 파워가 만들어낸 결과

10대 소녀들이 할리우드의 새로운 파워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할리우드 여름 흥행작의 주타깃 13세에서 20세 사이의 남자 청소년층. 화려한 컴퓨터 특수효과를 동원한 액션 위주의 블록버스터들은 대부분 13세 이상 관람가 등급에 집중되어 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이 층에 특히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극장에 찾아가 볼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정열도 없는 성인층에 비해 이들은 신나는 영화는 두 번, 세 번이라도 극장에 가서 반복적으로 보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 따라서 여름방학 기간에 이들이 할리우드의 가장 큰 고객층을 이루는 것은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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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다이어리>▶

그래서 여름만 되면 미극장가는 귀가 따가울 정도의 굉음이 넘치는 액션영화들로 가득 차기 마련. 올해도 그 같은 대세엔 변함이 없지만 약간의 변화가 보이고 있긴 하다.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영화들이 하나 둘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금발이 너무해 2>가 2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라면 지난 주 개봉한 <처신 잘하기 (원제 How to Deal)>를 비롯, 초여름 시즌에 개봉한 <리지 맥과이어 무비 (Lizzy McGuire Movie)> 등이 모두 10대 소녀들이 흔히 지니는 로맨틱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영화들이다. <리지 맥과이어 무비>는 TV에서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을 영화로 만든 것. 그 전에는 또 <왓 위민 원트 What Women Want>의 소녀판인 <왓 어 걸 원츠 What a Girl Wants>가 개봉돼 화제를 모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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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어 걸 원츠>

이처럼 10대 소녀를 타깃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엔 일정한 공식이 있어 소위 ‘걸 무비’ (Girl Movie)가 하나의 새로운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너무 예쁘지도, 너무 똑똑하지도 않다는 것. 주인공들은 예쁘긴 하지만 약간 얼빠진 구석이 있다거나 아니면 괴짜 기질이 있어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는 등 사회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친아버지를 모르고 지내는 등 소위 결손가정에 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들 주인공들은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혈육을 찾는다든지, 사랑에 빠져 동급생들과 잘 어울리게 되고, 그런 화해 후엔 졸업파티에서 여왕으로 뽑히고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과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반은 현실적, 반은 환상적인 그런 줄거리가 기둥을 이룬다.

이 같은 ‘걸 무비’의 붐을 시작한 영화는 게리 마셜 감독이 만들어 2001년 의외의 히트를 기록한 <프린세스 다이어리 The Princess Diaries>. 샌프란시스코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여주인공 (앤 헤더웨이가 이 영화로 떠서 스타가 됐고, 속편이 내년 개봉 예정이다)이 어느 날 자신이 유럽 작은 섬나라의 공주로 왕위계승자임을 알게 되면서 학교의 놀림대상 털털이 소녀에서 세련되고 마음씨 착한 공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다. 물론 공주가 되기 전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해 주었던 남학생과 사랑도 맺는다.

줄리 앤드류스가 여왕인 할머니로 등장하는 <프린세스 다이어리>는 작은 영화가 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1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올린 것. <리지 맥과이어 무비> 역시 1700만 달러 제작비를 들여 미국 내에서만 42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니까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10대 소녀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들이 남학생들 영화에 밀려 여름에 볼 것이 없을까봐 배려해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인 셈이다.

실제로 195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8~18세 소녀의 소비지출은 2001년 1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곧바로 할리우드에는 흥행 청신호를 울렸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붐에 힘입어 요즘 떠오르는 10대 스타는 <리지 맥과이어 무비>의 힐러리 더프(15), <왓 어 걸 원츠>의 아만다 바인즈 (17), <처신 잘 하기>의 맨디 무어(19)와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앤 헤더웨이(20) 등이다.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주인공을 괴롭히고 놀리는 못된 치어 리더로 나왔던 맨디 무어는 가수이기도 한데 MTV의 시트콤 <맨디 무어 쇼>로 인기를 모았고, 가을에는 <구원 (Saved)>이란 코미디가 개봉 예정이고, 내년 2월에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소녀들을 겨냥해 만드는 연쇄살인 공포영화에도 등장한다.

소비자로서 10대 소녀들의 파워는 이들 영화와 관련된 의류 등 라이센스 브랜드가 대부분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10대 소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스크린 주인공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주는 데 주력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비슷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관객층이 여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선 주인공이 너무 예쁘거나 인기 짱이거나 무지 똑똑한 ‘먼 곳의 사람’이 아니라 리지 맥과이어나 <프린세스 다이어리> 주인공처럼 알고 보면 매력적인 사람인데 실수투성이 괴짜라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결함 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남/ USC 영화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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