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들』 (시노다 세츠코 지음, 안지나 옮김, 이음 펴냄)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진행자 재재와 조연출 야니가 ‘패트와 매트’로 분해 부른 패러디 곡 ‘유교걸’ 영상의 한 장면. 이 곡에서 화자인 ‘K-장녀’는 제삿날 부름에 “족보에도 못 올라가는 댓 걸~~재산은 따로 줄게 없는 걸~~ 부모님은 부양해라 베이비 걸~~” 노래하며 “ “이제부터 솔직하게, 이제부터 당당하게” 거부하라고 말한다. ©문명특급 유튜브 캡쳐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진행자 재재와 조연출 야니가 부른 패러디 곡 ‘유교걸’ 영상의 한 장면. ©문명특급 유튜브 캡쳐

 

제목에 훅, 낚였다.

『장녀들』이라니. 일본 작가가 쓴 세 편의 짧은 장녀들 이야기다. 장녀들, 문제적 장녀들.

우리 속담에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있다. 자녀들의 노동력이 자산이었던 농경 사회에서 장녀들은 결혼할 때 까지 어머니의 보조자로 집안일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다 결혼 후에는 그 자신이 어머니가 되어 가족과 가정 경제의 재생산을 담당했다. 산업사회에 들어서는 똑똑한 맏딸이 가족을 부양하거나 남동생(들)을 교육시키고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디딤돌로 희생되기도 했다.

최근 온라인에 나타나는 ‘K-장녀’는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 한 현상이다. K-팝, K-뷰티 할 때의 그 K로, 한국의 장녀들이다. 가수 이효리의 ‘유 고 걸(U-Go-Girl)’을 패러디한 ‘유교걸’은 장녀가 화자. 제삿날 부름에 그는 “족보에도 못 올라가는 댓 걸~~재산은 따로 줄게 없는 걸~~ 부모님은 부양해라 베이비 걸~~” 노래하며 “이제부터 솔직하게, 이제부터 당당하게” 거부하라고 말한다. 조회 수 90만회를 기록한 유튜브 영상 댓글창에는 ‘내가 대한장녀인지 대환장녀인지 구분이 안된다’ ‘찐 장녀는 경상도 장녀’ 등의 댓글이 달렸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독립영화 ‘이장’ 등에서 K-장녀를 읽어낸 한 칼럼은 K-장녀의 특성으로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를 꼽기도 했다.

『장녀들』 (시노다 세츠코 지음, 안지나 옮김, 이음 펴냄)
『장녀들』 (시노다 세츠코 지음, 안지나 옮김, 이음 펴냄)

 

책으로 돌아가 보자. K-장녀의 문제의식으로 무장하고 세 편을 읽는다. 첫 편 ‘집 지키는 딸’은 아버지가 물려준 저택에서 치매와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이혼녀가 문제의 장녀다. 그는 이혼하고 홀로 어머니를 돌본다. 여동생이 있지만 자기 가족 돌보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는 장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간병인도 거부하고 딸에게만 모든 돌봄을 요구한다. 헛것을 보는 어머니는 딸의 딸인 유키를 찾는데, 유키의 정체는 이야기 말미에 드러난다. 어머니의 언니, 한 세대 전의 장녀가 이야기에 소환된다.

두 번 째 이야기 ‘퍼스트레이디’는 점잖은 집안 출신 의사 아버지의 장녀 유리코 이야기다. 당뇨병을 앓는 어머니는 젊어서 건강할 때부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았다. 장녀가 아버지를 도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도맡았다. 결혼도 못 했다. 의사인 아버지도, 역시 의사인 남동생도 어머니를 존중하지 않는다. 신장 이식을 해야한다는 말에 장녀는 자기 신장을 주려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뜻밖이다. “죽이거나 도망치거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세 번째 이야기 ‘미션’은 무대를 히말라야로 옮겨간다. 난소암 투병으로 세상을 떠난 의사의 영향으로 의사가 된 요리코는 그 의사가 봉사하다 세상을 떠난 네팔의 오지 마을에 후임으로 부임한다. 어머니를 대신해야 하는 장녀이자 누나로 살았던 그는 마을을 돌보는 장녀 노릇을 하려든 셈이지만, 마을의 세계관은 그를 죽음 직전으로 몰고 간다.

『장녀들』이라는 제목의 이야기 세 편은 ‘유교걸’이 던지는 치열하고 거친 ‘장녀되기 거부’에 비하면 너무도 느리고, 두루뭉술하다. 아마도 주인공들이 유교걸보다 훨씬 나이 많은 30-40대 중반 여성이어서 일까, 아니면 한일 간의 문화 차이 때문일까. 소설 『장녀들』은 장녀에게 지워진 (불공평한) 기회와 책임의 문제의식보다, 초고령화 사회 일본의 개호(가족 간호)문제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하지만, 노부모를 돌보는 책임이 비혼인 딸에게 쏠리는 문제는 분명 공유할만 하다. 한국의 장녀들에 대한 연구와 창작이 더 많이 쏟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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