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도 고통 호소하지만
도움 받을 곳 어디에도 없어

전문가들은 국내 청년층(10~20대) 은둔형 외톨이의 수를 2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을 책임지는 것은 온전히 부모의 몫으로 떠넘겨지고 있다. ⓒ여성신문
전문가들은 국내 청년층(10~20대) 은둔형 외톨이의 수를 2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을 책임지는 것은 온전히 부모의 몫으로 떠넘겨지고 있다. ⓒ여성신문

지난 13일 8,9급 지방공무원과 교육청 공무원을 선발하는 대규모 임용시험이 치러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4만531명이 시험을 신청했고 이 가운데 16만240명이 응시해 66.61%의 응시율을 기록했다. 응시하지 않은 33%의 사람 중에 감귤(닉네임,34)씨와 같은 ‘은둔형 외톨이’가 있다.

감귤씨는 2013년부터 ‘공시판’에 뛰어들고 이번 시험까지 매년 시험을 신청했지만 실제로 시험을 본 것은 2017년이 마지막이다. “자기 전에 운석이 떨어져서 지구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는 감귤씨의 마지막 외출은 7개월 전, 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은둔형 외톨이가 늘고 있다. 생계 활동을 포기한 이들을 먹여 살리는 가족도, 방문을 잠근 채 틀어박혀 버린 은둔형 외톨이도 괴롭도 괴롭다.

은둔형 외톨이는 6개월 이상 집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접촉을 기피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 처음 알려진 후 큰 사회 문제로 떠올라 2000년대 초반 한국에까지 알려졌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지원단체인 ‘KHJ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가 조사한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 히키코모리의 평균나이는 34.4세, 29.2%는 4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일본 내 히키코모리의 수를 100만명 이상으로 내다봤다. 1명 이상 교류하는 외부인이 있으면서 은둔생활 3개월 이하인 경우는 니트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은둔형 외톨이를 ‘고립청년’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은둔을 시작하는 연령이 1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넓게 퍼져있고 중년층 이후까지 은둔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다.

오래 전부터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적 문제가 된 일본은 다양한 지원을 펼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를 청소년, 청년, 중장년, 노년으로 세분화 하고 지역 연계 네트워크를 펼친다. 은둔형 외톨이의 가족에 대해서도 정신적, 경제적 지원을 하며 가족 상황을 살핀다. 방문 지원 때는 5단계에 걸쳐 △정보 수집 및 당사자·가족과 관계 형성 △목표 명확화 △가족 및 당사자에 사전 연락 △철저한 계획 수립 △관계기관과 면밀한 정보 교환 등을 거치고 있다.

일본이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지원에 나서는 것은 이들의 칩거로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 탓도 있지만 연이어 일어난 범죄 탓도 있다. 은둔이 일부 정신 이상자의 치료시기를 놓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국내 은둔형 외톨이 수, 알 수 없어
기초 실태조사도 안된 상황
전문가 추정 20만 이상
광주시에서 지난해 처음 지원 조례 통과

지난해 9월 광주시의회는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조례안은 시장이 5년마다 지원 기본 계획을 세우고 지원 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보다 앞서 2018년 서울시의회에서도 지원 조례안이 발의됐었지만 실패했다. 현재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 지자체는 광주시가 유일하다. 정책의 기초가 될 최소한의 통계조사 자료도 없다. 국내학술논문 통합검색사이트(riss.kr)에 등재된 논문은 32건에 불과하다. 정치권에서 언급된 사례는 지난 2018년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전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하고 지난해 자료집을 낸 것이 전부다.

전문가들은 국내 청년층(10대~20대) 은둔형 외톨이의 수를 20만 명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성준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정신병 측면으로만 접근해 치료하기는 어렵고 사회경제적 요인과 같이 외부요인이 결부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인 K2인터내셔널에 소속된 코보리 모토무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심한 증세를 보인다”고 우려한다. “청년에 가해지는 큰 사회적 압력, 극대화된 스펙사회, 은둔현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부제,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교육, 개인에게 이상형임을 강요하는 규범사회, 다양성 없는 성공지향주의,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기대, 은둔을 숨기려는 문화 등이 한국에서 관찰된다”고 지적한다.

감귤씨도 타인과 교류하지 않는 이유를 “패배자여서, 비참하고 우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히키방’에 참여하는 사람들뿐이다. “여느 히키방이나 주제는 비슷해요. 다이어트, 왕따, 공시, 무기력, 우울증, 게임, 가족, 배달음식 그런 것들이에요. 여자만 있는 곳에서는 섭식장애 이야기도 있어요. 다들 비슷해요. 실패자죠.”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당사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 가정에 대한 지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20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A씨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A씨의 자녀는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문제로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해 20대 중반이 된 현재까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A씨는 “부부 사이도, 자녀와 나의 관계도 최악의 상태인데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정말로 없기도 하고, 주변에 사실이 밝혀지면 사회로 아이가 나갔을 때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며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개인적인 역량이나 성격, 노력으로 헤어나올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가족에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1월 꾸려진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는 등교거부, 해직, 대인기피, 불안증, 무기력증, 우울증 등으로 은둔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모임이다.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해 꾸려진 최초 단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지원책을 요구하고 박 시장으로부터 서울에 거주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최근 각 지자체마다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조례를 마련하고자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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