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 칼럼] 스토킹 처벌법, 21년 표류 끝내라
[김효선 칼럼] 스토킹 처벌법, 21년 표류 끝내라
  • 김효선 발행인
  • 승인 2020.06.18 07:37
  • 수정 2020-06-18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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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범죄 ‘스토킹’
노상방뇨와 같은 경범죄 처벌
21대 국회 첫 법안으로 제정하라

 

어느 날 갑자기 40대 남성이 만나달라고 요구해온다. 그 남성은 생면부지의 인물일수도 있고, 어느 정도 아는 인물일 수도 있으나, 분명한 건 그 남성의 접근 자체가 끔찍하게 싫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남성은 문자를 수백통 보내고, 일터나 거주지에 나타나서 욕설, 고함, 협박, 난동을 피운다.

수년간 이런 행동을 계속하는 이런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하면 어떤 처벌을 받을까?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훈방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벼운 벌금내고 나와서 똑같은 행동을 계속한다.

경범죄는 죄의 정도가 가벼운 범죄를 말한다. 노상방뇨, 쓰레기 투척, 불법 광고물 부착 같은 매너 없는 행동들이 여기에 속한다. 스토킹을 남자들의 일방적인 구애행위 정도로 보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이런 법을 만들었다. 차라리 가해자를 보호하는 법이라 하겠다.

스토킹의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명예훼손과 모욕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생활이 파괴되고, 극도의 불안을 경험하며 상해, 살인 등 형법상의 범죄로 쉽게 연결된다. 스토킹이 적절히 처벌되지 않고 방치되어서 무고한 여성들이 희생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스토킹을 경범죄에서 분리해 별도로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스토킹 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법’ 입법이 1999년부터 추진돼 왔다. 20년 넘게 발의되었다가 회기를 넘겨 폐기되기를 반복하면서 다시 21대 국회에 첫 법안으로 발의되었다. 스토킹을 남자들의 심한 장난정도로 여겨온 안이한 의식이 20년째 표류하는 법안을 만들어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여성들이 희생됐다.

창원의 60대 식당 여주인은 단골손님으로 위장한 남성에게 10년간 스토킹을 당하다가 계획적으로 살해되었다. 작년 분당에서는 이혼을 원하며 피신해 있는 아내를 남편이 살해했다. 두 살인사건의 가해자들은 모두 살인 혐의를 받았지만 ‘스토킹’은 혐의에 추가되지 않았다. 그 때의 스토킹은 살인의 전조현상이었는데도 처벌할 길이 없었다.

최근에 관심을 모았던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은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스토킹을 당해서 경찰에 신고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실질적인 가해가 없기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초등생들이 드나드는 학원에 나타나 욕설을 하고 고함을 지르고 협박을 하고 난동을 피웠다. 심지어 늦은 밤 으슥한 곳에서 1시간 가량 소리를 지르는 등의 피해는 실질적인 피해가 아니고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청와대 청원에 고통을 호소한 끝에 가해자가 구속되었지만 그의 혐의는 스토킹이 아니라 명예훼손, 재물손괴 등이다. 조씨는 이 가해자가 다시 풀려나 보복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아는 지인 역시 어이없는 스토킹으로 피해를 당하며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해보려 했지만 스토킹의 위협이 즉각적이며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자구책을 찾아내기 위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피해자는 심각한데 가해자는 가벼운 벌금만 내는 경범죄로 처리되는 현실. 언제까지 피해당한 여성들이 알아서 자구책을 구해야 하나. 

여러 면에서 새로워진 21대 국회가 시작됐다. 21년의 표류를 끝내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스토킹 처벌법이 꼭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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