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 롤링 ‘트랜스 혐오발언’ 파문 지속
‘월경하는 사람’ 트윗에 비판 일자
과거 젠더폭력 경험 고백한 롤링
“트랜스젠더 운동, 여성의 차별·폭력 문제 간과
나 같은 여성들에게 ‘혐오’ 낙인찍지 말라”
그러나 “혐오 합리화한다” 지적에
해리포터·신동사 주연배우 등 각계에서 비판 이어져

영국 작가 J.K. 롤링이 트랜스젠더 혐오발언을 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최근 영화 ‘해리포터’와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주연 배우들까지 비판에 가세했다.
영국 작가 J.K. 롤링이 트랜스젠더 혐오발언을 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최근 영화 ‘해리포터’와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주연 배우들까지 비판에 가세했다.

 

‘해리포터’로 명성을 떨친 영국 작가 J.K. 롤링의 트랜스젠더 혐오발언 파문이 끊이질 않는다. 영화 ‘해리포터’와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주연 배우들까지 잇따라 롤링을 비판하면서 세계인의 관심이 쏠렸다. 롤링은 긴 입장문을 내고 과거 젠더폭력 피해 경험까지 고백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혐오를 합리화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이번 파문이 트랜스젠더 권리와 여성 인권에 대한 열띤 논쟁으로 이어질 조짐도 보인다.

시작은 롤링이 지난 6일 올린 트윗이다. 롤링은 ‘월경하는 사람들(people who menstruate)에게 좀 더 평등한 코로나19 이후의 세상 만들기’라는 제목의 글을 트윗하며, “이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분명히 있는데 누가 좀 알려달라”고 조롱하듯이 썼다. ‘여성’이라고 썼어야 한다고 에둘러 말한 것이다.

J.K. 롤링의 트윗 ⓒ트위터 화면 캡처
문제가 된 J.K. 롤링의 트윗 ⓒ트위터 화면 캡처

이는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월경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인가?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으로 성별을 전환한 트랜스 남성, 여성도 남성도 아닌 논바이너리처럼, 월경을 하지만 여성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롤링을 향해 “TERF(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라는 야유도 쏟아졌다. 미국 성소수자 단체 GLAAD는 “롤링은 젠더 정체성과 트랜스젠더에 관한 사실을 고의로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에 꾸준히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롤링은 자신을 변호했다.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sex)을 사회적 성별인 ‘젠더’로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여성의 현실이 지워진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내 삶을 만들어왔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혐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의 트윗을 썼다.

롤링은 “트랜스젠더 운동은 여성이 겪는 차별·폭력 문제를 간과한다”며,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나 같은 여성들에게 ‘혐오’라는 낙인을 찍지 말라”고 주장했다.
롤링은 “트랜스젠더 운동은 여성이 겪는 차별·폭력 문제를 간과한다”며,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나 같은 여성들에게 ‘혐오’라는 낙인을 찍지 말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일에는 ‘TERF 전쟁(TERF wars)’이라는 트윗과 함께 3600자 분량의 해명을 내놨다. 요지는 “트랜스젠더 운동이 여성들이 ‘생물학적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과 폭력 문제를 간과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롤링은 자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서 과거 성폭력 경험과 전남편의 학대를 최초로 고백했다. “동정을 사려는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여성들과 연대하고 싶어서 털어놓는 얘기”라며, “남성 가해자가 트랜스젠더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에게 접근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여성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여성전용 공간이 왜 중요한지를 말하는 나 같은 여성들이 트랜스젠더 혐오자로 낙인찍히고 있다. 우리를 ‘TERF’라고 비하하고 발언권을 뺏으려 할수록 더 많은 젊은 여성들이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롤링은 또 트랜스젠더 운동이 아동 교육·보호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10대들이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흔히 겪는 혼란을 ‘성별 정정 욕구’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어릴 적 ‘여자로 살기 싫다’고 생각했었다며, “그때 온라인에서 내 얘기를 들어주고 동정해 줄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내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아들이 되기 위해서 트랜지션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성소수자 단체·활동가들은 롤링처럼 영향력 있는 작가가 여성 인권을 앞세워 트랜스젠더를 부정하고 혐오를 합리화하려 든다며 비판했다. 유명 인사들도 동참했다. 롤링의 소설에 기초한 인기 영화인 ‘해리포터’,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주연 배우들이 잇따라 비판에 나섰다.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다. 이에 반하는 말들은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존엄을 지운다.”(대니얼 래드클리프, 8일 성소수자 단체를 통해 공개한 기고문 중)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고, 트랜스 남성은 남성이며 논바이너리는 존재한다.”(에디 레드메인, 10일 성명 중)

“트랜스젠더들은 그들 스스로가 말하는 그대로의 존재들이며, 의심받거나 부정당하지 않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엠마 왓슨, 11일 트윗)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고, 트랜스 남성은 남성이다. 우리는 누구나 평가받지 않고 사랑 속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루퍼트 그린트, 13일 성명 중)

내년 개봉할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신작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는 10일 “다양성과 포용성을 촉진하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웨스트 서식스주 빌링스허스트의 ‘윌드 스쿨’이라는 학교는 롤링의 트랜스젠더 관련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학교 건물 이름을 ‘JK 롤링’으로 지으려던 계획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트랜스젠더-여성 인권 관련 논쟁 촉발 조짐도

롤링이 쏘아 올린 하나의 트윗은 점차 열띤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여자 혹은 남자로 나눌 수 있다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은 현실적인가?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가?

일각에서는 롤링을 옹호한다. 영국의 유명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줄리 빈델, 서식스대 철학과 교수인 캐스린 스톡 박사 등은 ‘롤링은 여성의 안전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끌어냈다’면서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롤링이 여성이라서 더 많은 공격과 조롱을 당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현지 유력 언론이 롤링의 젠더폭력 고백을 다루며 2차 가해를 저지르기도 했다. 영국 ‘선’ 지는 롤링을 학대했던 전남편 호르헤 아란테스의 사진과 함께 “롤링을 때렸지만 나는 미안하지 않다”는 헤드라인을 최근 1면에 실어 큰 비난을 받고 있다.

한편 영국 출신의 트랜스젠더 모델이자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인 먼로 버그도프는 “젠더는 유동적”이라며, “롤링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해체하는 대신 다른 소수자들을 더욱 상처입히고 있다. 그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롤링의 트랜스젠더 혐오는 이제 그가 펜을 놓을 때임을 보여준다”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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