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으로 가득 채워진 벽면은 도서관을 지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송은아
달콤함으로 가득 채워진 벽면은 도서관을 지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송은아

 

며칠 전 아파트 공동체 텃밭에서 아이들의 친구와 그 엄마를 만났다. 그분도 세 자매로 자라 세 딸을 키우는 면에서는 나와 비슷한 분이다. 겨울방학과 봄방학을 알차게 보내자고 했는데,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하기 전 1월 박물관 견학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만나지조차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텃밭에 있는 시소를 타며 즐거워했다. 집에만 있던 우리는 아이들을 보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책에서 배운 단어를 실감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갈 수 없는 세상이 오다니 믿을 수 없다.

세 아이들이 집에 머물며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하면 챙겨 줘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끼니와 간식 시간은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분주한 일상으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 모를 정도다. 작은 도서관과 아파트 공동체 텃밭에서의 북적북적함 속에서의 봉사활동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치일 지경이다. 

첫번째 송년 모임은 단출했지만 따뜻했다. ©송은아
첫번째 송년 모임은 단출했지만 따뜻했다. ©송은아

 

도서관이 생긴 첫해의 연말에 참여자 각자가 음식을 가져와서 나눠 먹는 ‘십시일반’ 송년모임(포트락 파티)을 열었다. 오랫동안 열지 못했던 도서관을 재개관한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기도 했고, 그 간 마을의 분위기를 통해 봤을 때 오시는 분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낯선 도서관에 낯선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어색한데, 더군다나 음식까지 가지고 오라고 하다니... 불편한 자리임에 틀림 없었다. 그래도 운영진의 입장에서는 도서관의 재개관을 더욱 널리 알리고, 도서관이 지향하는 ‘자발적인 참여‘를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활동이었다. 모임 당일이 되자 도서관 운영위분들께서 하나, 둘 음식을 준비해 오셨다. 예측했었지만, 도서관에 자주오는 아이들과 운영위분들이 함께 해주셨다. 음식들을 열람실(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중·고등학생들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했다.  

두번째 송년 모임은 북적스러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송은아
두번째 송년 모임은 북적스러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송은아

 

그로부터 1년이 지날 무렵, 도서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송년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우리 다른 이웃들도 초대하면 어떨까요?‘ 라는 제안에 모두 동의하며 아이디어가 쏟아져나왔다.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 벽 한 쪽을 초콜렛, 캔디로 가득 채워 주셨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집에서 했던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이벤트였다고 하셨다. 어른들이 조금 힘들더라도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면 아이들은 행복한 기억을 평생 가지고 살면서 슬픔도 행복했던 감정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독서모임에서 음식과 집에 있는 물건 중 선물이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챙겨오기로 했다. ‘송년파티에 초대 한다’는 게시물이 온·오프라인에 게재되었다. 송년파티 당일, 회사의 퇴근 시간을 조금씩 앞당겨 독서 모임분들은 함께 할 저녁을 준비하셨다. 많은 분들께서 정성과 시간이 많이 할애되는 음식들을 준비해오셨다.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준비해서 빔프로젝트를 이용하여 상영하니 근사한 영화관이 되었다.

독서 모임분들만 모일 것 같다는 예상과 달리 도시락통에 들은 음식과 물물교환할 물건들을 들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도서관에 모이기 시작했다. 쓸쓸하게 치러졌전 1년 전 송년회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잔치집 느낌이였다. 아이들은 영화도 보고 선물도 나누면서 1년 중 가장 즐거운 날을 보냈다고 했다. ‘내년에도 또 송년파티 또 열려요?’라며 1년 후의 오늘을 미리 물어보는 아이의 말에 어른들 모두 즐거웠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의 결과는 틀림없이 이런 날이 또 올 것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나누고 싶은 소박한 음식들이 모여 진수성찬을 만들어냈다. ©송은아
나누고 싶은 소박한 음식들이 모여 진수성찬을 만들어냈다. ©송은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일상을 바꾼 지금은 확신할 수 없다. 도서관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고, 지독히 적극적이었던 독서 모임조차 비대면으로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던 아이들을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마주치면 코로나19로 닫힌 도서관 문은 언제쯤 다시 여냐고 묻곤 하니, 잊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우리 아파트 작은 도서관은 코로나 이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기술의 발전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대면해서 느꼈던 그 사람의 온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걱정은 없지 않다. 텃밭에서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 친구와 그 엄마가 온라인에서만 만나더라도 텃밭에서와 같이 반가워할 수 있을까? 한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일인지 일상에서 뒤로 물러서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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