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부추기는 ‘웃음 권력’… “여성도 웃지 않을 자유 있다”
성차별 부추기는 ‘웃음 권력’… “여성도 웃지 않을 자유 있다”
  • 진혜민 기자
  • 승인 2020.06.11 17:37
  • 수정 2020-06-12 0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에게 더욱 강요되는 '미소'
‘웃지 않는 여자를 응원한다
No Smile Women’ 펀딩도
“한국 여성은 ‘웃는 얼굴’이
디폴트(기준값)으로 소비돼”
2017년에는 여성의 웃음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No smile women’(연출 송수민)도 상영됐다. ⓒ송수민 감독
2017년에는 여성의 웃음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No smile women’(연출 송수민)도 상영됐다. ⓒ송수민 감독

“시국이 시국이지만 마스크 쓰니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서 양씨는 “하나의 스킬을 얻었다. 눈은 웃고 마스크 속 입은 맹수의 이빨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서비스직 #코로나”라고 썼다. 신종코로나전염바이러스(코로나19)로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업무를 한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얼굴의 일부가 가려지기 때문에 이전처럼 ‘가짜 웃음’을 장착할 필요가 없다. 비단 서비스직뿐 만 아니라 여자 아이돌 등 여성들에게 웃음과 미소는 중요 요소로 작용한다.

은행 직원들에게 “일할 때는 웃으라”라고 강요한 고객이 업무방해 및 폭행죄로 입건돼 구류 5일에 유치명령을 받았다. 2016년 허 씨는 서울의 한 은행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허 씨는 은행 직원에게 “서비스직인데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 일할 때는 웃으라”라고 강요하는 등 1시간 넘게 업무를 방해했다.

어린 청소년노동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소년유니온이 작년 9~12월 만 15~18세 청소년노동자 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61.9%가 고객, 상사, 동료에게 웃음, 친절 등 과도한 감정노동을 요구 당했다. 58.3%의 청소년이 일터에서 감정노동을 못한다는 이유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 23.2%는 표정, 목소리, 말투 관련 컴플레인에 시달렸다.

한 패스트푸드점에는 ‘미소 매뉴얼’이 존재했다. 미소 매뉴얼은 타 패스트푸드점과 다르게CEO가 직접 매장을 돌며 서비스를 점검하고 전담팀을 구성해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JTBC '아는 형님' 방송화면 중 일부.
JTBC '아는 형님' 방송화면 중 일부.
JTBC '아는 형님' 방송화면 중 일부.
JTBC '아는 형님' 방송화면 중 일부.

여자 아이돌에게 더욱 엄격한 웃음 잣대

여자 아이돌의 경우 압력은 더욱 심해진다. 미소는 물론 걸그룹으로서 애교까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룹 레드벨벳의 예리도 무표정에 대한 고충이 있었다. 항상 웃고 밝은 이미지라 잠시만 무표정을 지어도 온갖 비난을 받는다는 고충으로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나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같은 그룹 아이린도 평소 냉미녀,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있는 만큼 무표정으로 인해 오해를 사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iN에는 남자 아이돌에 비해 여자 아이돌이 무표정일 때 욕을 먹는다는 주제를 가지고 ‘제가 잘못했나요? 페미니즘 치고 너무 심하지 않냐’는 제목의 질문이 올라왔다. 이에 답변자 지*는 “남자 아이돌은 정색해도 ‘무슨 일 있나 보다’, ‘멋지다’, ‘무표정도 이쁘다’라고 하는 반면 여자 아이돌은 ‘왜 정색하냐’ 외에 심한 욕을 먹는다”고 설명했다.

한 누리꾼은 “고객 불만에서도 여자 알바는 ‘잘 안 웃는다’, ‘상냥한 목소리가 아니다’, ‘눈이 순하지 않다’ 등을 추가적으로 듣는다”고 SNS에 글을 썼다.

또 다른 누리꾼은 “안 웃길 때 안 웃을 수 있는 남성들의 권력은 사소해 보이지만 어마어마하다”며 “잘 안 웃고 무뚝뚝한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상황에 몰리면 저절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고 썼다.

‘웃지 않는 여자를 응원한다 No Smile Women’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웃지 않는 여자를 응원한다 No Smile Women’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웃음‘ 을 주제로 한 크라우드 펀딩도

여성에게 강요되는 웃음을 주제로 한 크라우드 펀딩도 있었다. 2017년에는 ‘웃지 않는 여자를 응원한다 No Smile Women’ 페미니즘 굿즈 관련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됐다. 굿즈는 엽서·에코백·여권케이스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닉네임 ImPeach 창작자는 ‘친절과 웃음을 강요받는 지인들에게 선물 해보라’라고 권유했다. 해당 펀딩은 349만 9천999원이 모여 174%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ImPeach 창작자는 “한국에서 여성은‘웃는 얼굴’이 디폴트(기준값)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기획의도를 작성했다. 그러면서 “남자가 웃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남자는 화를 낼 수도, 무표정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여자가 웃지 않는다면? 그것은 싹수없고, 무심하고, 직업에 따라서는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타인으로부터 지적과 컴플레인까지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무표정을 용납하지 않는 몇 가지 직업군(간호사·아이돌·직장인·학생)에 대해 소개했다. 창작자는 “간호사는 환자를 간호하고 의료 활동을 돕는 직업이지 사근사근해야 하고 시종일관 웃어야 하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한국에서 간호사에게 이상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돌에 대해서는 “남자 MC가 불쾌한 질문을 했을 때 혹은 그저 웃고 싶지 않을 때, 무대에서 찰나에 무표정을 한 여자 아이돌들은 왜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일까”라며 “찡그린 것도 아니고 화를 낸 것도 아닌 그저 정말 웃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웃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에 대해서는 “직장에서 웃지 않는 남자는 프로페셔널하고 진중한 사람으로 웃지 않는 여자는 히스테릭하고 재미없고 싹수없는 동료가 된다”며 “일뿐만 아니라 회식을 가도 여자는 웃으며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상사가 꼭 한 명씩 있다”고 했다.

학생에 대해서는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에 남자애들은 무심히 게임만 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지만 우리는 달랐다”며 “엄마가 깎은 과일을 웃으며 거실에 있는 남자 친척들에게 날라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사회가 달라진다면 지금 학생인 아이들은 컸을 때 ‘No smile’이라도 공격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온스타일의 이슈 토크쇼 '뜨거운 사이다'가 대표 포스터와 일러스트 포스터.
온스타일의 이슈 토크쇼 '뜨거운 사이다'가 대표 포스터와 일러스트 포스터.

펀딩을 계기로 ImPeach 창작자 2017년 온스타일의 이슈 토크쇼 ‘뜨거운 사이다’의 대표 포스터와 일러스트 포스터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당시 제작진은 “‘웃지 않는 여자를 응원한다’는 여성에게 유달리 웃음을 강요하는 풍조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라며 “당당하고 매력적인 여성들이 모여 속 시원한 사이다 멘트를 던지는 ‘뜨거운 사이다’와 방향성이 일치한다고 생각해 콜라보를 결정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2017년에는 여성의 웃음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No smile women’(연출 송수민)도 상영됐다. ⓒ송수민 감독
2017년에는 여성의 웃음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No smile women’(연출 송수민)도 상영됐다. ⓒ송수민 감독

2017년 다큐멘터리 ‘No smile women’(노 스마일 위민)도 상영

217년에는 여성의 웃음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No smile women’(연출 송수민)도 상영됐다. 송수민 감독은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여성의 웃음’에 대한 고찰을 했다. 송 감독은 “평소에 웃음이 많은 편인데 그 웃음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재단 당했다”며 “한 번은 웃음 때문에 헤퍼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학생 때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러한 경험은 여성들에게 생각보다 보편적인 일임을 알게 됐다”며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는 사회가 여성들에게만 과도하게 요구하는 감정 노동에 거부하고자 주변인들의 무표정한 모습들을 모아놓은 시퀀스로 시작해 이들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짓는 모습들을 모아 놓은 시퀀스로 끝난다”며 “사라져야 할 것은 웃음에 씌워진 잘못된 시선과 요구라는 것을 분명히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이 영화를 보는 여성들이 잠깐이라도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여성들은 유독 여성을 향한 사회적 웃음 강요 현상에 대해 자각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돌봄과 배려를 여성의 본능이자 역할로 이해하는 문화로부터 기인”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여성들에게 웃음의 잣대가 엄격한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돼 있다는 사고방식, 돌봄과 배려를 여성의 본능이자 역할로 이해하는 문화 등 일종의 ‘서비스’를 여성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태도와 연결돼 있다”며 “여성의 웃음은 쉽게 대상화, 성애화되기 때문에 그 ‘서비스’란 결국 ‘성적 서비스’의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