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최초의 극영화 만든 알리스 기, ‘마틸다 효과’를 벗다
[반하라 칼럼] 최초의 극영화 만든 알리스 기, ‘마틸다 효과’를 벗다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20.06.21 11:18
  • 수정 2020-06-2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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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업적 쌓아도 여성이 남성보다
과소평가되는 현상 ‘마틸다 효과’
알리스 기는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세계 최초로 이야기가 담긴 영화 ‘양배추요정’ 장면.
알리스 기는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세계 최초로 이야기가 담긴 영화 ‘양배추요정’ 장면.

 

2017년 말 헐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피해 배우들이 그를 고발하면서 전개된 ‘미투’는 여성참정권운동 이후 여성들의 의식을 깨우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가해자를 고발하는 과정은 사회정의를 향한 의식화를 고취시켰고 평등한 세상을 향한 새로운 물결을 거세게 일으키고 있다. 미투 운동과 병행해서 2018년 이후 ‘잊혀진’(제거된) 여성인물을 복원한 작품 전시회가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고 묻혀진 여성작곡가들을 찾아 그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활발히 열렸다. 과학자, 건축가, 저널리스트, 작가들까지 각계 사라졌던 여성들이 혁명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코로나19 사태로 6월 18일로 연기됐던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황금시대’의 문인들로는 ‘세르반테스’나 ‘로페 데 베가’와 같은 남성작가들만 알려져왔는데 1683년경 이미 보수를 받으며 활약했던 시인이자 극작가인 여성, ‘아나 카로’(Ana Caro 1590-1646)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아나 카로’를 비롯해서 다른 여성작가들과 함께 전시되는 황금시대 여성인물 중엔 출판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모두 존재가 지워졌다가 미투 혁명기 각계 각지역 여성들의 가열찬 연구노력에 의해 그동안 축적된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에 호응되어 드디어 존재를 찾아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일찍이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여성참정권 운동가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는 1870년에 쓴 에세이 ‘발명가로서의 여성’에서 여성과학자들의 업적이 역사에서 지워지고 대신 남성들의 업적으로 왜곡되어 왔다고 통탄했다. 이런 예를 찾자면 12세기 이탈리아 여의사 ‘트로툴라’가 남긴 여성의료에 대한 저작이 16세기 이후 그가 아닌 남성의 저서로 줄곧 왜곡되어온 사실을 들 수 있는데 비근한 예를 반복적으로 찾게된 과학 역사가는 이같은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1993년 과학역사가 ‘마가렛 로시터’가 여성과학자들의 연구를 남성과학자들이 탈취해온 현상을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의 첫 이름을 따서 ‘마틸다 효과’라고 명명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마틸다 효과'는 과학계를 넘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하는 사회 각계에서 효과를 내왔는데 극영화를 세계 최초로 창안해서 만든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영화제작자인 ‘알리스 기’(1873~1968)의 삶에서 드러난 그 ‘효과’의 부당함을 보면 전율케된다.  

세계 최초로 극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 알리스 기. ©위키피디아
세계 최초로 극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 알리스 기. ©위키피디아

 

일반적으로 영화를 발명한 사람은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라고 알고있거나 씨네필이라면 ‘조르주 멜이에스’라는 프랑스 감독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야기가 담긴 극영화, 즉 우리가 알고있는 ‘영화’를 창안해서 최초로 만든 사람이 프랑스 여성인 ‘알리스 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영화사 연구자들이 알리스 기를 지우고 대신 남성인 ‘조르주 멜리에스’의 업적만을 인정하면서 주로 써놓기 때문이다. 알리스 기는 극영화를 창안한 것만이 아니라 영화기술을 탁월하게 이해해서 기술적 실험영화를 혁신적으로 만들었고 시나리오를 직접쓰고 감독제작해서 무려1000편 이상의 20년 이상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았던듯이 지워졌고 그가 남긴 영화들의 저작권도 누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어떤 작품들은 영화사에 그의 남성 조수들이 만든 작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1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프랑스 영화사인 ‘고몽’에 취직하게 된 알리스 기는 1895년 고몽 대표인 레옹 고몽과 함께 ‘뤼미에르’ 형제가 찍은 영화 시사회에 참관하고 영화기술을 완벽히 습득한 이듬해 알리스 기는 극영화를 창안해서 영화사를 설득해서 최초의 극영화인 ‘배추요정’을 직접 쓰고 감독 제작해서 내놓는다. 그후 10년 동안 알리스 기는 고몽에서 영화제작의 총 책임자가 되어 각본·감독·제작·미술장식까지 총괄하며 영화발전 전성기 고몽의 성장과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지만 훗날 고몽이 회사의 역사를 망라한 책을 발간했을때 가장 기여가 컸던 알리스 기를 삭제했다가 한참 후에야 정정하게 되었다.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알리스 기는 ‘솔랙스’라는 자신의 영화 스튜디오를 세우고 1920년까지 총 10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당시 사회의 편견을 깨는 영화들을 남겼다. 흑인배우들만으로 만든 첫 흑인영화를 만들었고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바꿔서 연기하는 젠더 코메디도 만들고 아쉽게 남아있지 않지만 백인여성들이 남미 등지의 성매매여성으로 팔리는 백인 인신매매에 관한 영화(1914)도 만드는 여성, 계급과 이민문제등을 영화로 만든 여러방면의 선구적 영화인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헐리우드 영화가 시작되기 이전에 가장 파급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알리스 기가 여성이었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영화계에서 역사에서 마틸다 효과에 삭제되었던 사실이다. 2018년부터 프랑스에선 매년 ‘알리스 기’를 기념해서 여성감독에게 주는 ‘알리스 기 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는 미투 시대에 활활히 부할했고 마틸다 효과는 미투혁명기에 무력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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