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혐의 인정하나 기억 안 난다" 주장에
피해자 입장문 통해 강도 높게 비판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해"…
사건 본질 흐리는 '정치 공방'도 지적

강제추행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강제추행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오거돈 전 부산시장으로부터 근무시간 중 강제추행을 당한 여성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인지 부조화‘를 주장한 오 전 시장에 충격 받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피해자 A씨는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입장문을 발표하며 “’혐의는 인정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라는 말의 모순에 대형 로펌의 명성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이어 “집무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폭언이나 업무상 위력이 결코 없었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향후 재판에서 최소한 합리적 반론으로 대응해 주셨으면 한다”며 “그것이 피해자인 저를 비롯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에 대한 예의다”라고 말했다.

A씨는 “구속영장 기각 전 유치장에서 가슴 통증으로 40여분 진료를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개개인의 고통을 계량하고 비교할 수 없지만 하루 15알이 넘는 약을 먹으려 수면제 없이 한숨도 자지 못하는 저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자신의 상황을 알렸다.

오 전 시장을 향해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오 전 시장의 직접적인 사과를 받은 적 없고 합의할 일도 없었ㅇ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전권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해 ’인지 부조화‘를 주장하는 사람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며 “현실적인 해결이란 말을 앞세워 저와 제 가족을 비롯한 제 주변 누구에게라도 합의를 시도할 시 가만있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떠올리기만 해도 구역질 나는 그날 집무실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며 “기억을 잃은 분께서 범행의 경중과 전혀 상관 없는 그 시간을 사퇴 회견 당시 어떻게 그리 정확하게 인지하셨는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A씨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정치 공방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송에서 제 나이를 강조하며 비하한 모 의원과 인터넷 매체 인터뷰에서 의도를 의심하신 모 의원께서 당시 인지부조화와 비슷한 증상을 겪으셨을 거라 믿고 싶다”며 “인터넷 검색으로 금방 찾을 수 있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내용을 정치권에서 모르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A씨는 이어 사건의 본질이 아닌 사실이 아닌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A씨는 “남자친구가 집무실로 쳐들어가 시장을 압박했다는 삼류 로맨스소설을 최초 집필한 모 일간지 기자의 정보원도 너무나 궁금하다”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소설을 사실이라 믿는 듯한 정치인도 자중해 달라”고 강조했다.

앞서 오 전 시장 측은 지난 2일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강제추행 혐의는 인정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했으며 법원은 이날 강제추행 혐의의 오 전 시장의 사안은 중하지만 범행 내용을 인정하고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A씨는 "해당 입장문은 누구의 의견을 더하지 않고 제 방과 제 책상에서 혼자 작성했음을 밝힌다"고 마무리했다. 

 

다음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 피해자 A씨 입장문 전문이다.

저는 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제 소개를 이렇듯 시작하는 것이 익숙해지기 전에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피해자가 지나치게 적극적’이라는 반응이 부디 없기를 바랍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나온 오 전 시장의 주장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혐의는 인정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는 말의 모순에서 대형 로펌의 명성을 실감합니다. ‘집무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폭언이나 업무상 위력은 결코 없었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퇴 회견 당시 ‘경중을 떠난 5분’을 강조하며 구국의 결단을 하는듯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두려움에 떠는 늙은이일 뿐’이라는 말을 남긴 데 세상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낍니다. 사실 저는 떠올리기만 해도 구역질나는 그날 그 집무실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범행의 경중과 전혀 상관없는 그 시간을, 기억을 잃은 분께서 사퇴 회견 당시 어떻게 그리 정확하게 인지하셨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남자친구가 집무실로 쳐들어가 시장을 압박했다는 삼류 로맨스소설을 최초 집필한 국민일보 윤모기자의 정보원도 너무나 궁금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설을 사실이라 믿으시는 듯한 이 모 전의원님께서도 자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궁금한 것이 넘치지만, 하나씩 풀려갈 것이라 믿으며 말을 아낍니다. 오 전 시장에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향후 재판에서는 최소한의 합리적 반론으로 대응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피해자인 저를 비롯해 이 사건에 관심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에 대한 예의일 줄로 압니다.

구속영장 기각 전 유치장에서 가슴 통증으로 40여분 진료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개개인의 고통을 계량하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심각한 상황인 듯한 환자의 입장으로 한말씀 드립니다. 하루 15알이 넘는 약을 먹으며 수면제 없이는 한숨도 자지 못하는 저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오 전 시장께서도 쾌차하셔서 잃어버린 기억도 되찾으시고, 앞으로의 재판에 성실히 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저는 오 전 시장의 직접적인 사과를 받은 적도 없고, 따라서 합의할 일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해 ‘인지부조화’를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사과의 진정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해결’이란 말을 앞세워 저와 제 가족을 비롯한 제주변 누구에게라도 합의를 시도할 시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정치공방을 원치 않습니다. 저도 인터넷 포털 검색으로 금방 찾아내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내용을 정치권에서 모르시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생방송에서 제 나이를 강조하며 비하하신 박 모 의원님과, 역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 나이를 강조하며 의도를 의심하신 황보 모 의원님께서 당시 인지부조화와 비슷한 증상을 겪으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본인의 잘못’, ‘공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으로 사죄한다’던 70대 오 전 시장은 본인의 말처럼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부산을 너무너무 사랑했다는 한 사람이 응당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반세기 가까이 늦게 태어난 제가 감히 생각합니다.

큰 힘이 되어주시는 부산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전국의 여성단체, 사건 규명에 최선을 다해주시는 변호사님들과 부산지방경찰청과 부산지방검찰청, 피해자 보호에 애써주시는 대다수의 언론인 분들과, 제 판단을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해당 입장문은 누구의 의견도 더하지 않고 제 방 제 책상에서 저 혼자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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