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기조실 산하 ‘성인지정책담당관’ 신설 1년 만에
여성·가족·청소년 아우르는 ‘여성가족국’ 하위로 개편
지역 여성계 반대...“성평등 퇴행” VS
대전시 “조직 확대·격상해 내실 다지려는 것”

대전시가 최근 성인지정책담당관 조직 개편을 예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전광역시
대전시가 최근 성인지정책담당관 조직 개편을 예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전광역시

청년들 일자리 고민도 해결하고, 성평등한 지역 문화도 만들려면 뭘 할까? 대전시의 청년일자리 사업 ‘젠더공감 2030’이 좋은 사례다. 청년들이 대전에서 성평등 활동가로 일하면, 대전시가 급여의 90%와 성평등 교육을 지원한다. 3월부터 시행 중인데 참가자 만족도가 높아 내년에도 계속 진행한다. 

이 사업은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이 기존 사업을 검토해 새로 제안했다. 성인지정책담당관이란 대전시의 주요 정책에 성차별 요소는 없는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충분히 반영됐는지 ‘성인지 관점’으로 검토하고 조정하는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다. 생긴 지 약 1년밖에 안 됐는데, 대전시가 최근 이 기구의 개편을 예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전시의 청년일자리 사업 ‘젠더공감 2030’ 홍보물.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이 기존 사업을 검토해 새로 제안한 사업이다. ⓒ대전광역시
대전시가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청년일자리 사업 ‘젠더공감 2030’ 홍보물.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이 기존 사업을 검토해 새로 제안한 사업이다. ⓒ대전광역시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은 지방정부 내에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를 별도 배치한 드문 사례다. 지난해 3월, 지역 행정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 내에 설치됐고, 김경희 전 한국여성단체연합·대전여민회 대표가 담당관직을 맡고 있다. 서울시의 ‘젠더자문관’과 ‘젠더특보’, 제주도의 ‘성평등정책관’와 함께 “지역이 여성정책에서 성평등정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주목받았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

이 전담기구가 곧 사라진다. 오는 7월 1일 자로 행정부서 ‘여성가족국’(가칭)이 생기면, 성인지정책담당관실은 여성가족국 아래 ‘성인지정책과’로 바뀐다. 지난 5월 12일 대전시가 입법예고한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담긴 내용이다.

지역 여성단체들은 “시대에 역행한다”며 반대했다. 대전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폭력방지상담소·시설협의회는 지난달 19일 반대 성명을 내고 “성인지정책담당관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담당관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여성가족국은 가족, 청년, 아동·청소년, 복지, 평생교육 등 폭넓은 분야를 관장하는 부서인데, 과연 성평등 정책 총괄·조정기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여성을 복지와 돌봄의 주체로 한정해 성인지 정책 패러다임 이전의 여성정책으로 퇴행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성가족국이 2년 뒤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부서 신설 2년 후 실적 평가를 거쳐 존폐를 정하기 때문이다.

대전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폭력방지상담소·시설협의회는 지난달 19일 성인지정책담당관 폐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대전여민회
대전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폭력방지상담소·시설협의회는 지난달 19일 성인지정책담당관 폐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대전여민회

 

대전시는 이번 개편으로 조직이 확대·격상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성가족국은 지방부이사관(3급)이 성평등 정책을 직접 관장하는 행정부서가 될 것이다. 현 성인지정책담당관이 과장(서기관·4급)이 되면서 직급을 유지하고, 사무관(5급)과 6, 7급 인력은 늘어난다. 여성계의 우려에 답하기 위해 양성평등기본조례 개정도 추진 중이다. 기조실장이 시의 성평등 정책 추진을 총괄하는 양성평등정책책임관을 맡고, 각 과의 과장을 양성평등정책담당관으로 지정해 각종 정책에 양성평등 관점을 반영할 계획이다. 양성평등위원회 실질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김경희 담당관 “여성계 우려 이해하나

행정체계에 녹아들어야 바꿀 수 있더라

개편하면 성평등정책 총괄기능도 강화”

여성계는 회의적...“명확한 대안 없다”

이번 개편은 “2라운드 진출”이라고 김경희 성인지정책담당관은 말했다. 여성계의 우려를 이해하지만, 행정조직에서 일해보니 “조직에 녹아들어야만 바꿀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저도 외부에 있었다면 퇴행이라며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행정체계에 들어가보니 공무원들과 부딪혀야만 실질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아무리 개선안을 내도 외부에서 자문하는 식으론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성인지정책담당관실은 고작 12명이 성인지 정책 총괄 업무, 양성평등 사업 업무까지 도맡았다. 힘이 모자랐다. 그래도 조직 내 입지를 어느 정도 다졌다. 여러 부서 사람들과 젠더 관점에서 토론해 새로운 일을 기획해왔다. 부서 간 협업도 가능해졌다. 이제 우리가 사업부서로 갈 때다. 이번 개편으로 젠더 전문가를 영입해서 역량을 강화하겠다. 추진체계를 보완해서 총괄 기능도 계속 가져가겠다.”

채계순 대전시의원은 “성인지정책담당관이 그간 성평등 정책 총괄 기능을 잘 못 하기는 했다. 일자리 정책 등 주류정책에 적극 개입해야 했는데 잘 못 했다. 하지만 지방정부에 성평등 정책은 항상 뒷순위였고, 고위 공무원들도 이해나 의지가 부족하다보니 담당관 혼자 바꾸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채 의원은 “조직 개편보다도 시장, 고위 공무원, 시의원 등 모두가 성인지 정책과 그 추진체계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내실을 다질 수 있는지 이해하고 관심을 갖고 지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대전 여성계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최영민 대전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지금은 코로나19 이후 여성들이 겪을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할 때다. 대전 여성의 현안을 살피고, 여러 부서를 넘나들면서 시정 전반을 성인지 관점으로 검토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며 "기조실에서 총괄하려고 해도 안 됐다면 더 탄탄한 입지를 만들어야 할 텐데, 개편 이후 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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