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두산중공업에 1조 2000억원 추가 지원 결정
정부는 정책금융 지원과 함께 경영권 교체라는 강력한 조건 내걸어야
뿐만 아니라 개인, 특히 경제 취약자에 대한 과감한 금융 및 소득 지원 필요해
정부 역할은 오너 일가가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를 살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5월 21일 서울 강남구 한국무역협회에서 열린 ‘위기극복을 위한 주요 산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박복영 경제보좌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5월 21일 서울 강남구 한국무역협회에서 열린 ‘위기극복을 위한 주요 산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박복영 경제보좌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정부가 코로나위기 극복을 위한 35조 3천억원 규모의 슈퍼추경을 편성했다. 이 중 정책금융 1조 3천억원이 두산중공업에 투입된다. 지난 4월 지원된 정책금융과 합치면 3조 6천억원이다.

두산그룹은 전근대적인 세습 경영과 비자금 조성 문제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부가 코로나를 이유로 그냥 지원만 할 것이 아니라 경영권 교체 등의 강력한 조 걸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재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한다고 당당히 요구한다. 그러나 막상 국민의 세금에 힘입어 위기를 넘기고 나면,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기업 자율에 맡기라고 주장한다.

기업 자율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 두산 그룹 전 회장인 박용성이다. 그는 2004년 “정부 개입은 시장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왜곡할 소지가 크다”며 기업은 내부의 투명성으로 인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자율성이 높을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2005년 그가 2800억원 대의 분식회계를 했고, 200억원 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회장 일가와 형제들의 생활비로 사용했음이 드러났다. 회장의 형제들이 여러 자회사의 이사로 중복 등재를 통해 ‘겹치기 연봉’을 받았던 사실도 밝혀졌다.

지금 두산이 겪는 위기는 다름 아닌 두산건설을 둘러싼 경영진, 즉 박씨 일가의 무능에서 기인한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박씨 일가는 두산건설 주택사업프로젝트에 큰 애착을 보였다. 그러나 해당 사업의 파이낸싱(PF) 실패로 인한 막대한 손실을 계열사들의 이익으로 메꾸는 일이 거듭되었고 그룹 내 자금 흐름을 악화시켰다. 그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 지금의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핵 정책’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정부 추진 방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기업이 바로 좀비기업 아닌가.

두산 그룹은 ‘형제 승계’라는 특유의 방식으로 경영 세습을 한다. 초대회장인 박두병의 아들들이 한 번씩 번갈아 가며 회장을 맡았고, 지금 회장인 박정원은 명예회장 박용곤의 장남이다. 오너 4세 사촌형제들 중 장손인 박정원의 뒤는 다른 사촌형제들이 연이어 맡는다는 것이 두산 그룹의 자연스러운 정서이다.

2005년 박용성 당시 회장은 “왕위직을 한세대가 계속 승계하고 다음 장자로 넘어가 그 세대도 반복되는 사우디 왕가방식”을 인용하고 있다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박씨 일가가 주식회사라는 조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의 비루함은 2015년 중앙대학교 학사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교수들을 상대로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는 방법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는 폭언으로 이어졌다.

박씨 일가가 자신들의 안위에 집중하는 사이 두산 중공업 노동자들은 1천억원에 가까운 우리 사주 매입을 통해 회사 살리기에 동원됐다. 유상 증자를 통한 우리 사주 매입은 명예 퇴직이 일상인 상황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지금 주가는 매입 당시보다 30퍼센트 하락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두산 경영진의 자구책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알짜배기 기업은 손에 쥐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시장에 내놓고 있다. 두산 경영진은 노동자와 주주를 인질로 삼고 가문의 그룹 경영권 소유를 목표로 코로나 시국에도 3조 6천억원의 특혜를 보는 것 아닌가.

5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비상경제대책본부 일자리-고용TF 토론회 ⓒ뉴시스·여성신문
5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비상경제대책본부 일자리-고용TF 토론회 ⓒ뉴시스·여성신문

정부는 정책금융 지원과 함께 경영권 교체라는 강력한 조건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다시 세금으로 오너들의 무능을 지켜줘야 하고, 노동자와 주주, 세금을 내는 국민은 또다시 인질이 될 뿐이다. 정부의 역할은 오너 일가가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를 살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 특히 경제 취약자에 대한 과감한 금융 및 소득 지원이 동시에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경영 위기에 놓인 대기업에 대해 정책 금융을 지원하는 것이 국민경제를 살리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정당화되었다. 반면 일자리 없는 청년, 소상공인 등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융자확대나 보조금 지원은 개인 부채를 증가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 잘못된 정책으로 치부되어 왔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미비하다.

정부는 코로나 19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적은 시급에도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쿠팡 물류 노동자들,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들, 일거리가 끊겨 당장의 수입이 사라진 프리랜서들, 마냥 입사시험 공고를 기다리고 있는 취업준비생들, 매상이 끊긴 자영업자들, 흔들리는 중소기업에게 당장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

경제적 위험에 처한 국민을 살리는 데에는 인색하고, 부실 대기업을 살리는 데에는 발 벗고 나서는 정부라면 이런 정부를 국민의 정부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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