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jpg

나이가 들수록 평화롭고 편안한 삶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평화롭고 편안한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옛날에 한 임금님이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사람에게 상을 주기로 하자 많은 예술가들이 응모했다. 임금님은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 두 개를 골랐다. 하나는 조용한 호수를 그린 것으로서 호수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완벽하게 비추고 있는 그림이었다. 누가 보아도 평화를 상징하는 훌륭한 그림이었다. 또 하나의 그림도 마찬가지로 산과 호수를 그렸다. 하지만 이 그림은 언뜻 보기에는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거칠게 쏟아지는 폭우와 번갯불 위로 성난 하늘이 보였고, 또 한 쪽에는 요란스러운 폭포도 있었다.

그러나 임금님은 두 번째 그림을 선택했다. 왜냐고? 임금님은 두 번째 그림을 살펴보다가 깨어진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아주 작은 덤불과 덤불 속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한 어미새를 발견했던 것이다. 임금님은 화려하게 장식된 침묵하는 무덤과도 같은 첫 번째 그림보다는 무서운 폭우 속에서도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그림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이 공평하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객관적으로 아무 걱정 없는, 소위 ‘팔자 좋은’ 사람이 실제로는 외로움이나 불행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객관적으로는 고달파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훨씬 활기찬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

S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이점순 할머니도 객관적으로는 고달픈 노인이다. 여기 저기 쑤시는 데가 많아서 혼자 밥 끓여 먹기도 힘들었던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혼하여 네 살과 아홉 살짜리 어린 두 손자를 키워달라고 데려오자 덜컥 겁부터 났다. 며느리로부터 봉양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나이에 한창 손을 필요로 하는 손자들까지 돌봐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절로 팔자타령이 나왔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뜻밖에도 무척 건강해 보이고 활기차 있었다.

“아들이 쥐꼬리만큼 가져오는 월급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시장도 여기 저기 다니고, 아이들 밥 해 먹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건강해졌지 뭐예요. 하루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몰라요. 아유,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게 됐어요.”

할머니는 겉으로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지만, 나는 할머니의 얼굴에 전에 없던 활기가 넘쳐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 건강해 보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했던 것이다.

반면 홍금자 할머니는 아들네 집에서 이렇다 할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시는 할머니다. 아들이 주는 넉넉한 용돈과 집안 일에서 손 뗀 지 오래라는 것이 할머니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홍금자 할머니는 요즘 들어 부쩍 마음이 불편하다. 며느리와 손자들이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는 것이 전에 없이 불만스럽다. 더욱이 요즘 자신보다 훨씬 나쁜 상황에서도 행복하고 활기차 보이는 이점순 할머니를 보면서 홍금자 할머니의 마음은 괜히 더 울적해진다.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행복은 몸에 좋지만, 마음의 힘을 개발하는 것은 슬픔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점순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고통이 마음 뿐 아니라 몸에도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고통에 의미가 있다는 말이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티베트에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있다고 한다.

“제가 여행하는 동안에, 저의 마음이 진정으로 깨어나고 자유와 우주적인 연민을 진실로 실천할 수 있도록 적절한 난관과 고통을 내려 주십시오.”

나는 이 기도문이 무척 마음에 든다. 물론 일부러 고통과 난관을 찾아 나설 필요까지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통 때문에 마음을 상하고, 또 고통을 없애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들이기보다는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때로는 적절한 고통과 난관이 삶에 활기를 준다. 나이 들면서 어려움이 다가온다 해도, 너무 두려워하거나 의기소침해지지는 말 일이다. 그것을 삶의 활력소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아무 고통이 없는 삶은 겉으로는 평화롭고 편안해 보여도 무덤과도 같은 삶임을 기억하자.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