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원로 여성인권운동가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기자의 눈] 원로 여성인권운동가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 강원=이경순 기자
  • 승인 2020.06.06 09:20
  • 수정 2020-06-08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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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 초대 공동대표 윤정옥 선생을 뵙고
2013년 10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정옥 선생. @여성신문
2013년 10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정옥 선생. @여성신문

 

윤정옥 선생.

1987년,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인 위안부 문제를 정식으로 공론화하고 1990년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정의기억연대 전신)를 발족시켜 동료인 이효재 선생과 초대 공동대표를 맡아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커밍아웃'을 이끌어 낸 사람. 1992년 1월 수요집회를 통해 정신대문제해결을 위한 힘을 결집시키고 아시아 각지를 다니면서 연대하고 중국, 필리핀 등지에 묻혀 지내던 위안부를 발굴해낸 사람. 마침내 1996년 유엔인권위원회가 '위안부' 문제를 다룬 라티카 구마가스와미의 보고서를 채택하게 해 일본에 배상권고를 이끌어 낸 사람. 이어 2000년 12월 국제법정을 열어 일본군성노예 전범을 고발한 사람, 북한과의 위안부 문제 해결 공조를 위해 김일성 주석도 만난 사람.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정대협을 통해 그가 보여준 이 ‘일관되고 집중적인’ 활동과 성과는 그를 이우정, 이효재 선생과 함께 1세대 여성 지도자로 부르는데 손색이 없게 한다.

'정대협'하면 떠오르는 윤정옥 선생은 과연 작금의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에 관한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선생의 제자, 후배들과 함께 5월 25일 오전, 선생이 계시는 요양시설에서 만나 본 윤정옥 선생은 최근의 정의연 논란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나 상황 파악이 부족해 보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표정에서 보여지는 맑고 순수한 면모는 여전하되, 96세의 적지 않은 나이, 30kg에도 못미칠 듯한 체구 등 기력은 쇠해 보였고 기억은 분명치 않아 보였다. 당장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이해하는 듯 했지만 금세 맥락이 닿지 않게 질문을 하셨다. 정대협에 관해서도 무슨 문제가 있는지, 왜 돈 문제가 거론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정대협 직책을 그만두었으면 모르거니와 직책을 갖고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등 간헐적인 의사표명은 하셨다. ‘나는 정대협을 떠난 것’으로 치열했던 여성운동가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인 듯 했다.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한 시절을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면 그것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선생의 후견인 역할을 할 조카와 손주에게도 ‘바쁠텐데 이렇게 시간 많이 써서 어떡하냐‘며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선생을 보며 이런저런 시비에, 이리저리 선생을 곡해하고 오해하며 멋대로 재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가 다시 배출하기 쉽지 않은, 누구보다 뛰어난 열정과 통찰력과 집념과 추진력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여성인권운동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현재 생존해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17명이다. 전 세계에 위안부 피해자로서 겪은 직접 경험을 널리 알리고 나비기금과 장학금을 마련한 김복동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하고 우리 일을 확실히 해결하기 전에 무슨 화합을 한단 말이냐’고 일갈한 바 있다. 이용수 할머니도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방안’으로 활동방향을 잡겠다‘고 하니 윤정옥 선생이 꿈꾸었던 ’일본의 사죄‘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스스로를 여성인권운동가라고 자칭하지 않는가. 그렇게 일궈진 결과물은 누가 가꾼, 어떤 토양에서 이루어진 것인가를 곱씹어본다. ‘이제는 기억이 주욱 한 줄로 이어지질 않아. 자꾸 끊어져.’ 안타까이 뇌이는 여성인권운동가를 보는 일은 아리고, 안타깝고, 형언할 수 없는 비감함마저 느끼게 한다. 더 이상, 그 훌륭했던 여성을 욕보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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