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마주하며 생명체에 대한 존엄성을 깨닫는다. ©송은아
아이들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마주하며 생명체에 대한 존엄성을 깨닫는다. ©송은아

 

바이러스로 일상이 바뀌고 있다. 봄꽃이 화창한데도 상춘객을 환영하기는커녕 차량조차 통제한다. 굳이 집 바깥에 나가 바이러스의 위협으로 시달리는 사람으로부터 눈총을 받느니 달력, 창밖의 풍경 변화,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 뿐이다. 그러고 보니 창밖에 눈이 오는 시절부터 지금까지 집에 갇혀 있었나 보다. 벌써 계절이 바뀌어 강인하게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싱그러운 잎망울이 반짝이는 게 보인다. 꽃들이 집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하고 미세먼지는 없는 하늘은 유달리 맑고 푸르러 설레이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으니 잔인한 계절이다. 봄은 또 오니 이번 봄은 참자! 집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은 작년의 모습으로 위안을 삼고자 컴퓨터안에 사진폴더를 열어 마음을 달랠 뿐이다.

월별로 정리되어있는 사진 폴더를 클릭하니 집 근처 산과 계곡에서 즐거워하는 세 아이들이 보인다. 우리 아이들은 산을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산에 자주 오른다. 풀벌레, 바람, 새소리와 같은 대자연의 소리와 마주친다. 벌레, 새, 식물의 생태계를 엿보면서 아이들의 감수성은 자라고 있다. 혼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갈 길 꽃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꽃 이름을 알려주는 앱으로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준다. 딱따구리가 소리 내는 동영상을 보면서 아이들의 호기심에 다시 귀 기울여본다.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것이 중요한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산에 오르는 과정을 즐기는 듯하다.

이렇게 목적지 말고 과정을 보면서 걷다 보니, 힘들어하지 않고 산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에 오른 숫자만큼 체력이 길러진 듯 아이들은 산 중턱에서 힘들다고 안아달라거나 울지 않는다. 조금 쉬었다가 가자고 할 뿐이다. 힘들지만 목적지에 스스로 올랐을 때의 성취감을 맛본 아이들은 설령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산을 오르면서 아이들은 경쟁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경쟁을 조금씩 알아간다. 힘든 사람을 위해 기다려줄 수 있는 배려심과 인내심도 느끼고 있다고 믿는다. 

산을 오르며 마음의 크기를 배우는 아이들. ©송은아
산을 오르며 마음의 크기를 배우는 아이들. ©송은아

 

지난해 사진 중에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벗어나 마을의 여러 곳에서 동네 친구와 함께 했던 사진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들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나들이도 즐겁겠지만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더 천진난만한 맑은 얼굴을 보인다. 지난해에는 마을에 있는 도서관과 지역활동가가 협력해 ‘나무 놀이터‘라는 아이들 프로그램을 만들어, 마을에 인접한 산, 공원, 공동체 텃밭, 공터 등 마을 곳곳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하였다. 처음엔 골목길과 공터만 있으면 충분했던 우리 또래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잘 갖춰진 놀이터, 키즈카페, 블록 놀이방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해 괜찮아할지 내심 걱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가고 싶은 장소, 하고 싶은 놀이를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낯설고, 나이대와 성별도 다르니 어색하여 여러 무리를 지어 놀았지만, 점점 같은 놀이를 하고, 함께 대화했다. 산에 올라 애기똥풀을 따서 손톱에 발라 매니큐어처럼 바르기도 하고, 민들레꽃으로 팔찌를 만들고 공원에서는 연못에 나뭇잎으로 만든 배를 띄우고, 청개구리를 그 배에 올려 태워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놀거리를 스스로 찾아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공동체 텃밭에서 밭 옆의 흙을 파서 발견된 곤충, 허물, 지렁이를 보고 생명의 신비를 느꼈다. 아이들은 각자 역할을 정해 모래로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수로와 댐을 설계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사회성이 커져 가는 것을 엿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연과 친구들과 빈번히 만나면서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몸으로 익히는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있다. 세계 속 뉴스를 보니 코로나가 훑고 간 자리에 남겨진 큰 흔적들 때문에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돌아오지 않을 거란다. 그러나 코로나가 미세먼지도 치워놓았고, 호수물도 맑게 해놓았다고 하니,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자연의 치유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 대단한 자연과 닮아가며, 더불어 잘 지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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