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수동 젠트리피케이션, 첫 명도소송 카페 “더 이상 서울서 가게 못하겠다”
[단독] 상수동 젠트리피케이션, 첫 명도소송 카페 “더 이상 서울서 가게 못하겠다”
  • 정다연 기자
  • 승인 2020.05.31 11:34
  • 수정 2020-06-06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페 ‘녹(nok)’ “질 것 알지만 다른 상인들 위해 소송”
홍대서 5개월 만에 쫓겨나 2013년 상수동 이전했지만
홍대에 이어 명도소송만 두 번째 1심 패소 후 2심 중
월세와 권리금 사이 갈등이 상인들 합법적으로 내쫓아
주차공간 불법 임대 등 사각지대 많아 사회 갈등 심화
상수동 카페 골목에 위치한 카페 녹(nok)은 상수동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이후 처음으로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다. ⓒ여성신문
상수동 카페 골목에 위치한 카페 녹(nok)은 상수동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이후 처음으로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다. ⓒ여성신문

서울 홍대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난 상인들이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조용한 골목으로 모여 들면서 만들어진 카페 골목이 10년도 안 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면서 임대료는 올랐고 이를 버티지 못한 오래된 가게와 작은 카페들은 흔적도 없이 골목을 떠났다.

가파른 임대료 상승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된 원인이지만, 임차 기간을 10년으로 확대한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풀지 못하는 사회 갈등은 따로 있다. 임대료를 높이려는 건물주가 임차인이 다음 세입자로부터 권리금을 받지 못하도록 합법적인 방법으로 임차인을 내쫓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상수동 골목에 자리한 카페 녹(nok)도 그런 가게들 중 하나다. 홍대에서 쫓겨나 간판 그대로 상수동으로 가게를 이전했지만 곧 가게를 비워야 한다. 카페 녹(nok)은 2018년 임차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다음 세입자를 구했지만 건물주가 까다로운 임대 조건을 밝히는 바람에 계약 만료일까지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건물주로부터 명도소송 소장을 받았다.

카페 녹(nok)을 운영하는 김종욱 씨(41)는 “질 것을 알면서도 명도소송 중이다. 다음 세입자를 구했지만 터무니없는 임대 조건으로 물 건너갔다. 그냥 쫓겨나면 인근의 다른 상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쫓겨나기 때문에 1심에서 패소했지만 현재 2심을 진행 중이다. 더 이상 서울에서는 가게를 못 하겠다”라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지난 2009년 홍대 극동방송 맞은편 거리에서 카페 녹(nok)을 처음 개업했다. 동생과 함께 처음 개업한 카페라서 공 들여서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하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2년의 계약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건물주로부터 5개월 만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당시 건물주가 안전상의 이유로 건물 증축을 해야 하니 나가라고 했다. 2년 임차 계약하고 5개월 되던 때였다. 지금은 법이 개정됐지만, 그 당시에 홍대에서는 건물주들이 세입자를 내쫓는 방법으로 재건축 또는 증축을 말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명도소송을 했지만 졌다. 증축을 한다더니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카페 녹(nok)은 2013년에 상수동에서 이름을 유지한 채 문을 열었다. 이리카페 등 홍대 거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전한 가게들이 상수동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상수동 카페 거리도 오래 지나지 않아 임대료가 치솟았다. 한적한 골목에서 운영되던 카페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술집이 들어섰다.

김 씨는 “2013년 당시에 월세가 15평당 100만 원 이하였다. 1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올랐다. 2017년 즈음엔 부르는 게 값이 됐다”며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다고 느끼는 지점은 임대료가 오르고 골목에 있던 상가들의 업태가 바뀔 때다. 지금 우리 카페가 있는 골목에는 5년 안 된 가게들이 즐비해 있는데 5년 사이에 카페에서 술집으로 업태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카페 녹(nok)은 부동산에서 소개한 대로 이전에 영업소를 운영했던 임차인처럼 차 3대의 주차 공간을 포함해 공간을 임대하는 계약을 했다. 사진은 구청의 시정명령 이후 주차공간에 차를 주차한 모습. ⓒ카페 녹(nok) 제공.
카페 녹(nok)은 부동산에서 소개한 대로 이전에 영업소를 운영했던 임차인처럼 차 3대의 주차 공간을 포함해 공간을 임대하는 계약을 했다. 사진은 구청의 시정명령 이후 주차공간에 차를 주차한 모습. ⓒ카페 녹(nok) 제공.

건물주들이 다음 세입자 없이 기존의 세입자를 내보내는 합법적인 방법은 다양하다. 주차 공간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임대 공간으로 내주고 인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세를 내 계약을 맺은 다음 이를 빌미로 세입자에게 불법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거나 관청에 신고해 영업을 못하게 하는 등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김 씨는 “부동산에서 ‘관행적으로 다 한다’거나 ‘별 문제 안 된다’고 하고 넓은 영업장소를 쓰게 해준다고 하면 마음이 동한다. 우리 가게도 주차 공간으로 3대나 포함돼 있다. 구청에서 정기 단속 나올 때마다 시정명령이 떨어지면 주차장으로 변경했다가 다시 영업장으로 썼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계약을 할 땐 위법한 문제라는 개념이 없었다. 막상 가게를 운영해보니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건물주와 부동산이 그렇게 가게를 내놔서 해도 괜찮은 줄 알았다”며 “정작 불법 사용에 대한 책임은 저와 같은 세입자들이 지는 것이 통상이다. 근처에 있는 한 가게도 비슷한 문제로 건물주가 구청에 신고해 영업을 하지 못해 결국 가게를 뺐다. 세입자들이 혹할 수 있는데 주의해야 한다. 건물주나 부동산도 주차용도 공간을 영업장으로 사용하도록 내놓으면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권리금이 형성되면 월세를 올리기 힘들거나 번거로워지는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많이 할수록 이득인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것도 기존의 세입자를 내쫓는 데 역할을 한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지만 현재 임대차보호법은 사회 갈등을 완화시키는 뾰족한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상수동에서 2013년부터 카페 녹(nok)을 운영 중인 형제 김종욱 씨(41)와 김종혁 씨(38). 이들은 홍대 거리에서 카페 녹(nok)을 처음 개업했으나 계약 5개월 만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고 명도소송에서 패소한 뒤 상수동에 자리를 잡았다. ⓒ여성신문
상수동에서 2013년부터 카페 녹(nok)을 운영 중인 형제 김종욱 씨(41)와 김종혁 씨(38) 그리고 카페 녹(nok)의 역사와 함께한 반려견 나나. 이들은 홍대 거리에서 카페 녹(nok)을 처음 개업했으나 계약 5개월 만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고 명도소송에서 패소한 뒤 상수동에 자리를 잡았다. ⓒ여성신문

김 씨는 “예술가들이 모여서 힙한 골목이 만들어지고 방문하는 사람이 늘면 어김없이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긴다. 예술가들이 떠나고 대형 프랜차이즈나 술집이 즐비해지면 사람들은 발길을 돌린다. 세입자와 건물주가 충분히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가게를 비우기 전에, 음악성 있지만 돈이 없어 빛을 보지 못하는 음악인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가게를 하루 비우고 음악인들의 뮤직 비디오를 무료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며 “1심 판결문에서 판사도 우리가 마음대로 주차 공간을 개조해서 썼다고 하더라. 명도소송에서 질 것을 알지만 그냥 소송을 포기하고 나가면 다른 상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니까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신문은 카페 녹(nok)이 입주한 건물주와의 통화에서 주차 공간 임대 및 명도 소송에 관한 입장을 물었으나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카페 녹(nok)에 중개를 한 부동산 중개인에게도 연락을 취했으나 “사생활에 관한 부분으로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 들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