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낙인찍혔던 의료노조 간호사, 재도전 끝에 국회 입성
[W인터뷰] 낙인찍혔던 의료노조 간호사, 재도전 끝에 국회 입성
  • 정다연 기자
  • 승인 2020.05.27 12:32
  • 수정 2020-05-27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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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인터뷰 - 21대 초선의원을 만나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당선인
선원과 지리 선생님이라는 꿈 접고 세브란스병원서 간호사 근무
출산 직후 부당한 인사이동에 사표 쓸 각오하고 노동조합 찾아가
남성중심 노동계에서 손에 꼽히는 여성위원장 거쳐 국회의원까지
20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고배 마시고 4년 준비 끝 재도전에 성공
국민의 눈높이 맞춰 삶의 현장에서 자주 봤던 정치인 되겠다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동작을 당선인은 앞으로 의원으로서 계획의 질문에 "병원 노동자로 아이둘 엄마, 육아 문제, 행복 꿈꾸는 변화시키겠다"며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수업이 지루해질 즈음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부르던 오락부장이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한 간호전문대에서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다 연극부를 만들었던 한 여성은 출산 직후 복귀한 대학병원에서 날벼락 같은 부서 이동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회사를 그만둘 각오로 처음 노동조합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것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줄 몰랐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의 이야기다. 그는 연세의료원노동조합 위원장에 이어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이제 21대 국회의원이 된다.

“4년 전 처음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더 많이 준비하고 인내해서 21개 국회에 들어가는 만큼 노동, 여성, 보건의료 전문 분야로 현장의 전문성을 가지고 국민들의 삶에 깊게 들어가 공감하는 의원이 되고 싶다.”

이수진 당선인은 5월1일 노동절과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에서 각각 따온 ‘5.1플랜’을 구상 중이다. 그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 전문가로서 새로운 노동 형태에 맞는 노동 정책과 공정임금제, 기본소득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직업훈련과 직업전환교육에 대한 지원도 제도화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득 격차를 뛰어넘는 연대임금제도 추진할 예정이다.

선원, 지리 선생님 꿈꾸던 고등학생, 현실과 타협한 간호사에서 새길을 찾다

1991년 7월 간호사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기 한참 전인 학창시절, 이 당선인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업이 지루해질 즈음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노래 한 곡 하겠습니다”라며 심수봉의 노래를 부르던 학생이었다.

“명랑하고 어디 빠지지 않고 잘 나서는 학생이었다. 응원단장, 오락부장을 계속 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수업을 하지 않고 우리들과 놀아줄까 궁리만 했다. 어릴 적 꿈은 바다에 나가 선원이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지리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바깥 세계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세계에 늘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2남2녀 중 장녀였던 이 당선인은 고등학생 때 가세가 기울자 아버지의 권유로 3년제 간호전문대에 진학했다. 피를 보는 일이 무서웠다. 1년간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학교에서 메디컬 드라마를 연극으로 하면서 학교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대학에서 연극부를 만들어 제가 직접 회장을 맡았다. 한 학년에 40명 정도 학생이 다녔는데 20명이 연극부에 가입했다. 피를 보는 일에 적응 못해서 그만둘 생각까지 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어렵고 전문적인 간호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 당선인은 세브란스병원에서 13년간 간호사로 일했다. 주로 소아과와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일했다. 그는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의 신체와 건강에 대해 전문성을 가졌다. 1999년에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최초로 국제모유수유 전문가 자격증을 땄다. 모유수유 교육에는 수가가 따로 없다. 이 당선인은 병원에서 이와 관련해 전문적인 역할을 맡지 못했지만 틈틈이 산모들에게 모유수유를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했다.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면서 산모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기의 모유 수유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에는 세계적인 기업의 분유 광고가 흥행하던 때였는데, 의료인으로서 아이들과 산모의 건강을 위해 모유수유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1999년에 국제모유수유 전문가 자격증을 땄다. 산모들에게 모유수유를 도와주는 활동을 하면서 여성에 대해 더 알게 됐고, 스스로 여성인 점이 자랑스러웠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지난 4월 4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동참을 인증한 모습 ⓒ이수진 당선인 블로그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지난 4월 4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동참을 인증한 모습 ⓒ이수진 당선인 블로그

출산 직후 인사이동에 사표 각오하고 노조 방문

대학시절에 노동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병원에 입사 후에도 직장과 집을 오가며 간호사로서 일에 매진했던 이 당선인이 세브란스병원의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은 것은 출산 직후 갑자기 소아암병동으로 인사 발령이 난 이후였다. 간호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과로의 인사발령은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 요인이다. 병원에서는 과 별로 용어가 다르고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분만 휴가가 두 달이었다. 첫째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무렵이었는데 부서장이 소아암병동에 몸이 아픈 사람이 생겼다면서 월권으로 인사이동을 지시했다. 몸도 회복되지 않고 힘든 터라 도무지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간호사들이 새로운 과나 병동에 인사 발령 나면 일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어지지 않는데다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적인 일이라 스트레스가 크다. 병원을 그만둘 각오로 처음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에 찾아가 물어봤다.”

이 당선인은 병원 현장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평소에는 노동조합 근처는 찾아오지 않다가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문을 두드리는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 당선인 또한 그런 마음이었다. 이 당선인의 부당한 인사이동은 노사협의회 안건으로 올라가 철회됐지만 그는 낙인이 찍혀 인사고과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노동조합 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에 비장한 결의는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하는 선배가 이름만 올리면 된다고 일 많지 않다고 설득했다. 아이를 키우던 처지라 일이 느는 것이 부담이었는데 정말 이름만 올리면 되는 줄 알고 하겠다고 했다. 그게 시작이 될 줄 몰랐다. 1995년도에 노조 대의원을 맡고, 간부로 활동하면서 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했다. 2007년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면 파업도 했는데,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기업별 노조를 넘어 다양한 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 당선인에 따르면 병원 내에는 60여개의 직종 종사자들이 근무한다. 이해관계별, 세대별, 성별에 따라 바라는 처우나 업무 환경은 제각각이다. 간호사는 간호등급 상향 조정 등 인력 수급 문제에 관심이 많다. 병원이 적은 간호 인력만 고용해도 정부가 수가를 주는 것에 문제의식이 크다. 의료기사 직종은 인턴 제도 등 비정규직이 많아 정규직, 임금 상향에 관심이 많다.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요구와 조건들을 조율하면서도 기업 내부의 노조를 뛰어 넘어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을 추진했다.

“세브란스병원은 파업할 때 5인실 이상의 병상 확대를 요구했다. 지방에는 다인병상이 100%인 곳도 많고 평균 70% 정도를 유지한다. 5다인병상은 50%만 넘으면 돼 세브란스병원을 포함한 빅5 병원은 딱 규정만큼만 다인병상을 확보하고 있다. 환자들의 불만이 큰 부분인 만큼 의료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이를 주장했다. 하지만 한 달 파업 끝에 사후조정을 했고 파업 이후 각종 손해배상 청구와 조합원 탈퇴, 전 직원 인성교육으로 이어져 노조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노동자에서 국회의원으로 “용기 있게 나서겠다”

2011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포함한 여러 시민단체가 민주당, 시민통합당과 합당해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을 만들었다. 세브란스병원 노조가 소속된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의료노련)은 병원노동조합 연합단체로 한국노총 산하에 있다. 이 당선인은 이 일을 계기로 정당 활동에 참여했다.

“의료노련위원장으로서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고 보건복지부에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는데 성과가 미미했다. 한국노총이 함께 참여해 민주통합당이 만들어지면서 전국노동위원회 활동도 하게 되고 노동자들과 함께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활동도 했다. 정치수업과 같은 기간이 있었기에 현직 위원장으로서 노조 활동을 넘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 당선인은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처음 출마를 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4년을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해 21대 총선에서는 당선됐다.

“2016년에 처음 출마를 결심하기 전에는 노조 활동이 천직인데 내가 무슨 정치를 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 강연에서 ‘정치는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돌이켜보니 욕심으로 비춰질까봐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은 아닌지, 나는 준비가 됐는데 주변에서 반대한다고 망설이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 그 다음부터는 떳떳하게 말하고 다녔다. 노동계는 전체 조합원의 20%가 여성에 불과하고 큰 조직에서 전문성 가진 여성 위원장은 손에 꼽힌다. 대부분은 남성이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으로서 노동자를 대표해 내가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모성보호법, 직장어린이집 설치 지원, 보육 문제에 관심이 크다. n번방 사건 등을 엄격하게 처벌해 여성의 성을 상품화를 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낙태죄 헌법 불합치 이후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에 관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젠가 딸이 집회를 다녀와서는 방에 ‘내 몸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한다’는 손팻말을 벽에 붙인 것을 봤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또한 그 내용에 동의한다. 여성의 고민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이 해결해야 한다. 결국은 정치인이 용기 있게 나서야 한다. 여성의 비율을 늘리기 위한 의무 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당선인은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공감하는 의원이 되고 싶다.

“학생 때 노동운동을 해본 적은 없다. 일하러 병원에 입사했고 출산 이후 고충을 겪으면서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게 됐다. 주변에 있던 많은 간호사 동료들이 ‘이수진 간호사 때문에 노동조합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어려운 언어가 아니라 국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신뢰를 유지하는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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