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성희롱·성폭력 사건 막을
성평등정책 추진체계 변화 필요
행정부지사 직속의 별도 조직으로
양성평등정책담담관 설치·운영하고
시 성희롱·성폭력 사건 대응 위한
성희롱·성폭력구제위원회도 필요

사건은 사건으로 묻힌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우리에게 잊혀진 인물이 되고 있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그 ‘전형성’을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 보여준 사건이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8년 발생한 ‘안희정 사건’에 대한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근무시간 중에 근무 장소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분노를 더 자아냈다.

선출직 공직자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 처리는 별론으로 하고, ‘오거돈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성불평등한 사회와 조직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사건으로 부산시는 성평등한 조직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이에 부산시는 지난 5월 21일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은 시 성인지력 진단,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응체계 마련, 성평등 인식개선, 성평등정책 추진체계 강화로 나누어진다. 조직 컨설팅과 시 조직 및 공무원 대상 성인지 감수성 진단을 통해 성차별 요소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 단기적으로 공공조직 성범죄 예방과 사건 대응을 위한 전담기구 신설 및 2차 가해 행위를 방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민간부문까지 총괄하는 폭력방지전담기구, 여성폭력방지종합지원센터 설치를 하겠다. 또한 공공조직 성인지감수성 향상 및 성희롱·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 확대하고, 성평등 가이드라인 제작 및 온라인 홍보캠페인 개최로 성평등한 공직문화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주류화 정책 결정기구를 통한 성인지 관점의 주요정책을 강화하고, 성인지 정책 추진기반 조성 및 공공조직 성별 균형 참여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4월 23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책 마련을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숙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이 부산시 대책은 기존의 ‘사업을 강화하겠다’, ‘조직을 진단하겠다’, ‘시장 직속 감사위원회에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를 설치해서 그 기구가 성희롱·성폭력 대응 총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이 모든 대책을 총괄하여 추진하는 성평등정책 추진체계 강화를 위한 새로운 고민도 접근도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부산시 성평등정책 추진체계는 행정부시장 소속의 여성가족국 중심으로 여성가족과(여성정책팀, 일가정양립팀, 여성권익증진팀, 가족정책팀, 다문화외국인지원팀) 출산보육과 아동청소년과의 하부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성평등정책 젠더거버넌스로는 부산시 양성평등기본조례에 따라 양성평등정책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치·운영되고 있는 양성평등위원회가 있다.

부산시의 현재와 같은 여성가족국 중심 추진체계로는 성주류화 전략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에는 한계가 있고, 성희롱·성폭력 방지를 위한 대책이 체계적이고 실효적으로 마련되기 어렵다. 여성가족정책 집행 구조와는 별도로 시의 성주류화 강화 및 성희롱·성폭력 방지를 위한 구조(조직)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참조가 될 수 있는 것이 제주도의 이원화된 성평등정책 추진체계와 중앙정부의 8개 부처에 설치되어 있는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이다. 제주도는 행정부시장 직속으로 성평등정책담당관을 설치해 성평등정책을 총괄·조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여성가족정책은 보건복지여성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8개 부처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기획조정실에 설치되어 있고, 부처의 성주류화와 성희롱·성폭력 근절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고 있다.

이를 참조해서 부산시 성평등정책 추진체계를 새롭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부산시정의 성 주류화 강화와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의 총괄·조정을 주요 기능으로는 양성평등정책담담관을 행정부지사 직속의 별도 조직으로 설치·운영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와는 별도로 시, 자치구, 공공기관, 시 직접위탁기관 등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대응을 위한 독립구조 마련도 필요하다. 사건의 조사를 전담하는 (가칭)성인권보호관과 사건의 구제조치를 심의하는 기구로서 (가칭)성희롱·성폭력구제위원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성인권보호관은 성희롱·성폭력 사건 조사 등을 전담하고 시장 직속의 감사위원회 하부 조직으로 설치할 수 있다. 시에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성인권보호관이 신고 사실의 조사 등을 하고, 그 조사결과를 성희롱·성폭력구제위원회에 보고한다. 성희롱·성폭력구제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징계처분, 분쟁조정 등 구제조치를 심의한다. 성희롱·성폭력구제위원회는 독립위원회로 설치해야 하고 위원회에서는 성희롱·성폭력행위에 대한 심의와 피해 구제조치 마련 등을 한다.

다른 한편, 양성평등위원회 권한과 기능을 강화해 이 위원회가 젠더거버넌스로서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양성평등위원회의 기능을 심의에서 조정·자문 등으로 확대하고, 시장 직속으로 설치 운영되어야 한다.

오거돈 사건을 접하고, 바로 충청남도 홈페이지를 방문했었다. 조직도를 보니 안희정 사건 전과 달라진 게 없는 듯 했다. 지역연구원의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 사건 이후 전 직원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한 것이 전부 인 것 같다고 한다.

김지은씨의 ‘미투’와 그 무더운 여름 광화문을 가득 메운 여성들은 안희정 개인의 단죄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직장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와 구조를 변화시키라는 것이었다. 이 요구에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답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이 요구에 여전히 답하고 있지 않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부산시의 대응이 더 주목되는 이유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