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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길거리 농구로 체력을 다지는 한국 학생들. <사진·민원기 기자>

‘미국식 나홀로 육아’(본지 736호) 기사를 읽고 미국에 사는 여성신문 독자 한 분이, 집 안에서만 아이를 기르는 유년기 육아 방식은 미국으로 이민 온 가족의 특징일 뿐이고 미국인들은 자녀를 시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아이들 프로그램에 데리고 다니며 기른다는 고마운 메일을 보내주셨다. 우려했듯이 내 짧은 관찰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유아교육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주는 실수를 범했고 이 점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를 한다.

나는 독자들에게 내가 파악 못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주고 싶어 시설이 제공하는 유아교육문화 외에 아이들끼리 이집 저집 놀러 다니는 문화의 유무에 대해 질문하는 메일을 보냈으나 이에 대해선 답변을 받지 못했다. 어쨌든 이 지적이 자극이 됐는지, 내가 미국 교육에서 탄복한 것도 있는데 그것을 글감의 망에 올려놓지 않은 나를 보게 됐다. 부시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반미 감정으로 먼저 내 마음의 눈을 가렸기 때문일까? 하여튼, 미국과 다른 외국의 교육과 우리 교육에서 관찰되는 결정적 차이 한가지를 놓치지 않고 쓸 수 있게 나를 툭 쳐준, 그 메일을 보내주신 분께 감사한 마음을 보내며 이번 호를 쓴다.

생활 운동으로 자리잡은 외국 교육

내 사촌 동생의 말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피놀시의 학생들은 아침에 학교에 가면 1마일(1609m)을 뛰는 것으로 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학교에 샤워 시설이 돼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의 아침자습 개념에 해당하는 아침 체육 자습인 셈이고 정규 교과 시간에 체육, 재즈, 수영 같은 운동이나 춤이 포함되고 있다. 나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1년에 한 번 체력장을 할 때 800m를 뛰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아들이 다니는 학교 뒤에는 한 시간이면 오르내릴 수 있는 300m 정도의 낮은 우면산이 있는데 주 1회는 산을 오르게 했으면 하는 내 마음과 달리 학교에서는 월 1회 정도 산에 간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운동이 필수라는 것을 아는 부모들은 학교에서 충족되지 않는 이 부분을 결국 사교육으로 해결한다. 태권도 학원, 수영 학원, 축구 교실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 집에서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것,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들어가 있는 발레 등이 운동 관련 활동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교육을 통한 이런 운동도 초등학교 저학년 한 2, 3년에서 그치지 유년기에서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외국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은 대학에서 본국 아이들은 주중에 밤새며 공부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체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고 보인다.

독일에서 공부한 동료의 말을 들으면 독일 아이들은 고등학생도 1∼3시면 학교가 끝난다. 방과 후에 아이들은 구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제공하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 문화 프로그램을 수강하기도 하고 공원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운동하고 여름에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보낸다.

이렇게 외국에서 운동은 학교의 아침 자율학습 시간, 정규 학교 시간, 방과 후 아이들끼리의 자율적인 운동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 생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교육에서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일반 아이들은 충분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다는 것이다. 이모 집의 넓은 차고의 양 옆 벽 선반은 공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두 사촌 남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차 고치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놀이가 어린이들 자율적 시간관리 키워

차바퀴를 내리는 게 유행이면 차바퀴를 내려달라고 온 친구들이 줄줄이 찾아오곤 했다고 한다. 결국 이 취미가 직업이 돼 한 아이는 이미 BMW 엔지니어 대학에 진학해 기사가 돼 LA에 독립해 나가 있고 다른 한 아이도 같은 회사의 대학에 다니고 있다.

이모부가 여행이라는 취미를 살려 여행사를 직업으로 한, 집안 내력이 있기는 하지만 차 고치는 취미가 직업이 되게 된 데에는 이런 집안 내력 외에도 자유로운 청소년기가 필수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운 청소년기란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자유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은 앞에서 언급한 독일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두 아이를 기르며 갖게 된 나의 유아교육 원리는 아이들은 ‘멍석을 깔아 주면, 즉 놀 만한 환경-놀이터나 친구들, 장난감 등-만 있으면 알아서 놀게 되어 있다’ 라는 ‘놀이 교육론’이다. 놀이는 어린아이들의 자율적 시간 관리이다. 이 놀이는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커가면서 자율적 취미 활동과 여가 활동으로 발전해 간다.

외국에는 이 자율적 시간관리가 살아 있다. 우리? 완전히 죽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으나 - 왜냐하면 어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은 절멸되는 법은 없으니까 - 참으로 빈곤하기 짝이 없다.

아마도 사생활 양이 한국 고1의 평균 수준을 상회할 법한 딸의 생활을 엿보면, 자율적 시간은 학원 다녀오고 나서 전화나 채팅으로 친구들과 수다 떨기, 주말 영화 관람이나 쇼핑, 시험 끝나고 찜질방에서 밤새 수다 떨거나 빌려온 만화 읽기, 영화 잡지 가끔 뒤적이기, 달빛 체조가 돼버린 야밤의 자전거 타기 정도이다.

고등학교에 동아리가 있기는 하지만, 한 학기 두세 번 정도 선후배가 모여 패스트푸드점에 가는 것이 고작인 듯 싶다. 고1인 딸은 여름방학에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는 영화 캠프에 가고 있다. 이번 방학에도 학원을 빼먹고 갈 생각인데, 작년 캠프에 고등학생은 한 명만 왔다고 하니, 아마도 이번 캠프에 딸은 유일한 최고 왕언니(왕누나)가 될 것 같다.

빈곤하기 짝이 없는 딸의 소소한 자율적 생활거리들이지만 나는 이 정도 딸의 자율성을 편안하게 보아 넘겨주기 위해 늘 마음 비우는 연습을 한다. “너와 나, ‘무슨’ ‘무슨’ 대학으로 상처받지 말자. 넌 이미 너 자체로 내 귀한 딸이니까. 건강한 심신으로 네가 잘 살아갈 걸 엄마는 알고 있지.”

신과학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자율은 곧 생명체의 핵심이다. 이 자율성은 세포 단위에서도 관철되는 생명 법칙이다. 생명체가 함께 생명을 짜깁기해 가는 자율 활동이 없었다면, 하등 동물에서 고등동물로의 진화도 불가능했다. 제 2세대의 자율성에 사형선고까지는 아니지만 ‘종신형’ 정도는 내린, 이 입시체제로 우리 사회의 살아 있음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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