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안방을 내주다니 제정신이니?”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화를 내던 친구
“고양이는 백해무익, 너의 혀는 양날의 검!”
이렇게 받아치지 않은 것이 좀 아쉽다

ⓒpeak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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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자마자 우리 집 뒷 베란다로 통하는 부엌문을 열어두었다. 썬라이트로 지붕을 덮고 각목으로 벽을 지지한 허름한 뒷 베란다는 온갖 잡동사니를 두는 탓에 지저분하지만, 구석구석 물걸레로 닦고 틈을 찾아 철망을 쳤다. 짐작대로 고양이들이 베란다로 몰려나가 햇볕을 쬐었다. 햇볕은 집안에도 넘치도록 드는데, 녀석들에겐 수염에 닿는 공기의 흐름이 중요한 듯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거기 진을 치기 시작하자, 베란다 위로 밥을 먹으러 오는 동네 고양이들의 왕래가 뜸해졌다. 2층 베란다 바깥은 들개 떼가 몰려다니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안전한 밥자리인지라 철망 밖에 놓인 사료가 줄지 않아 마음이 쓰였다.

천천히 바깥 고양이와 집안 고양이가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되던 무렵. 우리 집 3호 복이가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하악질 한 번 하지 않는 순하고 겁 많은 고양이라서 내가 잡아 안아도 물 리 없는 단 한 녀석인데, 잡을 수 없어 바라보기만 하는 암컷이다. 자세히 보니 복이는 커플인 참깨에게만 화가 난 듯했다.

언제부턴가 참깨가 그 고양이와 교감하기 시작했다. 한술 더 떠 참깨는 복이를 교묘하게 떼어놓고 바깥 녀석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참깨에게 이상한 느낌을 받은 복이가 뒷 베란다로 달려나가면, 참깨는 딴청을 부리거나 집으로 들어와 시치미를 떼고 뒷다리를 치켜든 채 털을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복이는 꼼짝 않고 바깥을 노려보며 앉아 있곤 했다.

하루는 참깨가 복이에게 오지게 뺨을 맞았다. 워낙 민첩한 참깨라서 얼른 피하거나 맞설 줄 알았는데, 참깨는 복이가 반대쪽 뺨을 올려붙일 때까지도 ‘그래, 때려, 난 맞아도 싸’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며칠 뒤에도 똑 같은 일이 생겼다. 참깨는 자학하듯 복이가 손길을 멈출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맞고 있었다. 마침 고양이와 오래 살고 있는 친구가 전화했기에 그 이야기를 했다.

“복이가 참깨 여자니?”

“어, 참깨가 복이 남자야. 근데 문이 사이에 있어 참깨는 아무 짓도 안했어. 그냥 마음만 줬을 뿐이야.”

“마음을 주면 다 준 거지! 고양이니까 그 정도에서 넘어가지 인간 여자들은 제 남자 어깨를 깨물어.”

친구가 연달아 말했다.

“어깨만 물까. 젖꼭지를 죄다 물어뜯어놓지.”

그제서야 남녀가 욕구는 채우되 은밀한 신체 부위를 물어뜯어야 분이 풀리는 상황을 알아챈 나는 푸하하핫 웃음을 터뜨렸고, 우린 배를 잡고 웃었다.

집에 고양이가 있는 사람들과 만나면 대화가 무궁무진하다. 지루하다고 느꼈던 사람도 고양이를 기르면서 하는 말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평소 그토록 지루하다고 여겼던 개성이 묻힌다. 그래서 굳이 챙겨가며 만나지 않던 사람도 적당한 자리가 있으면 불러내게 되고, 고양이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모습을 재미있어하며 바라본다. 혹 그가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다면, 그의 집은 언젠가 한두 마리 정도는 더 들일 수 있는 잠정적 입양처이기도 하다.

고양이와 같이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행동 패턴을 보인다. 일단, 만나면 슬슬 가방 속을 더듬느라 말이 횡설수설해진다. 생각이 딴 데 가 있는 산만한 행동과 표정으로 그가 드디어 전화를 찾아 손에 들면, 엄청난 집중력으로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왜 그런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쟤가 또 저런다’ 하는 눈길을 주고받는다. 그러면 영락없다. 친구는 고양이사진을 내밀며 설명하기 시작한다. 보다 못해 누군가가 “음식부터 시키자!”며 톤을 높일 때까지. 헤어질 때는 고양이 이야기가 양이 차지 않았는지 이렇게 말한다.

“에고, 오늘 대화가 너무 미진했네. 다음엔 좀 느긋이 만나 실컷 수다 떨자.”

미진한 이야기와 실컷 수자 떨고 싶은 내용이 오로지 자신에 고양이에 관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다시 눈을 마주친다.

나는 그런 사람의 말을 가로채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나도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우리 집 고양이들 이야기를 했다. 네번째로 우리 집에 들어온 참깨가 세 번째로 들어온 복이에게 뺨맞는 이야기였다. 우리 집에 온 친구가 깜짝 놀라며 한 말도 전했다.

“완전히 고양이 집이 되었네!”

똑같은 말을 오래 전 나도 한 친구 집에 가서 한 적 있었다. 고양이를 잘 모르던 그때 내 눈에 보인 친구의 집은 한마디로 고양이만을 위한 집이지 인간의 집이 아니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같이 있던 성정이 거친 친구의 말도 기억난다.

“고양이에게 안방을 내주다니 네가 제정신이니?”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화를 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고양이 때문에 괜한 소리를 들은 친구가 이렇게 받아치지 않은 것이 좀 아쉽다. “내가 제정신이니 고양이들과 공간을 같이 쓰지. 얘들이 내게 주는 활력과 평화에 대한 보답으로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이런 말도 괜찮았겠다. “고양이는 백해무익, 너의 혀는 양날의 검!”

‘고양이에게 안방을…’이라는 표현을 썼던 친구는 내가 캣 맘이 된 뒤 우리 집에 와서도 쌓아둔 길고양이용 사료와 간식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이렇게 사대면 한 달에 삼십만 원은 들 텐데…” 하며 시작된 격분은 무례하고 정도를 넘었다. 남편이 CEO로 넉넉하게 사는 그가 나를 미치광이 취급하며 날뛰던 금액이 고작 30만원이라는 사실이 한편으론 신기했다. 그러니 당신이 경제관념이 철저하고 알뜰한 자라면, 함부로 인간 곁의 굶주린 생명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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