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대책, 아동·청소년에 초점
스토킹·데이트폭력 처벌 미진
여성 안전 공약 대부분 시행 중
젠더폭력 해소할 구조적 인식 전환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오는 17일 4주기를 앞두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지난 2016년 5월 17일 한 남성이 강남역 서초구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숨어 있다가 6명의 남성을 보내고 여성이 들어오자마자 흉기를 휘두른 여성살해(femicide)사건으로 국민들에게 젠더폭력을 각인시켰다. 이듬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12대 공약 중 하나로 ‘지속가능하고 성평등한 대한민국’을 약속하며, 젠더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세부 공약 7개를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 ‘문재인미터’에 따르면, 7개 공약 중 5대 공약은 절반 가량 이행됐다. ‘몰래카메라 등 디지털 성범죄 및 스토킹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 공약은 25% 이행됐다. ‘폭력예방교육’ 공약은 이행률이 15%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의 젠더폭력 관련 공약 7개는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 제정 추진 및 국가행동계획 수립, △젠더폭력 처벌강화 및 피해자 성폭력문제 인식 변화를 위한 정책 방향 전환, △가정보호에서 피해자 권리보장으로 가정폭력문제 정책 방향 전환, △성폭력문제 인식 변화를 위한 정책 방향 전환, △성매매 방지 및 성산업 대책의 획기적 전환, △몰래카메라 등 디지털 성범죄 및 스토킹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 △폭력예방교육(성희롱 성매매 성교육 및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교육)내실화 등이다.

스토킹 처벌은 빠지고 n번방 방지법은 아동·청소년 중심

‘몰래카메라 등 디지털 성범죄 및 스토킹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 공약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당초 공약과 달리 정부 대책은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한정돼 있어 성인 피해자에 대한 입법은 미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 정보통신법, 형법 등에 분산돼 있어 실제로 본회의 통과까지 난관이 많다.

일명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 대책 법안들은 20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각 상임위에서 통과돼 본회의를 앞두고 있다. 불법촬영물 유포협박, 소지, 시청, 광고한 자에 대한 처벌 법안은 신설되거나 강화됐다. 불법촬영물 삭제 서비스 비용에 대해 피해자의 부담을 줄이는 법안도 통과됐다. 정보통신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도 상임위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스토킹·데이트 폭력 등에 관한 처벌법은 진척이 없다. 스토킹 처벌법은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성 안전 공약 이행률. (출처: 문재인미터) ©여성신문
여성 안전 공약 이행률. (출처: 문재인미터) ©여성신문

 

젠더폭력은 여성 대상 폭력으로 제한

‘젠더폭력기본방지법(가칭) 제정 추진 및 국가행동계획 수립’ 공약은 현재 ‘여성폭력방지기본법’으로 명칭이 변경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젠더폭력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2차 피해 개념도 적시하는 진전을 이뤘다. 이 공약은 기존 법이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에 대해 협소하게 규정한 내용을 스토킹, 인신매매, 데이트 폭력, 사이버 성폭력,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 등으로 다양해지는 젠더폭력으로 확대해 처벌하고 피해자 보호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면서 정춘숙 의원이 발의한 원안에서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정의한 여성폭력에 대한 규정을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협소하게 정의했다. 젠더폭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향후 이를 개정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지만,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으로 지난 2월 제1차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이 마련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젠더폭력 처벌강화 및 피해자 지원 확대’ 공약은 아동, 장애여성 등 약자에 대한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범죄 등을 가중 처벌하고 특수성에 맞는 범죄 피해자지원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이 공약은 재단법인이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으로 전환되면서 보다 안정적으로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가정폭력상담 받으면 가해자 기소유예 여전

‘가정폭력문제 정책 방향 전환’ 공약은 그동안 가정보호에 초첨 맞춰진 가정폭력 정책을 피해자 권리보장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한 내용으로, 지난해 3월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는 합동으로 가정폭력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피해자 신변보호를 위한 응급조치 유형에 ‘현행범 체포’ 포함, 상습·흉기사범은 원칙적으로 구속영장 청구,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전문자립지원 프로그램도 신설 등이 담겼다.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들여다보면, 2018년 11월 가정폭력 방지대책에는 경찰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할 수 있게 한 가정폭력 범죄자 체포우선제도가 포함됐다. 이혼 진행 중인 피해자 및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가해자 접근금지명령 적용도 강화됐다. 과거에는 이를 어기면 과태료 처분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는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또 2차 범죄 예방을 위한 자녀 면접교섭권도 제한할 수 있게 됐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보호시설을 퇴소할 경우 피해자게에 1인당 500만원 내외의 자립지원금도 지원하는 정책이 도입됐다. 다만, 세부 공약 중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성실히 상담 받으면 가정폭력행위자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어 면죄부라고 비판받았던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성매매 방지 및 성산업 대책 전환’ 공약은 현재 진행 중이다. △성매매 피해여성 비범죄화 및 탈성매매 지원강화,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 청소년을 피해자로 규정 및 성산업 및 성착취 근절, △성매매 피해아동 청소년 지원센터 설치 운영 상담 지원 등 강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가부는 성매매피해상담소 2개소와 성매매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7개소를 신규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성매매범죄가 지능적으로 점조직화 되는 양상에 따라 서울 4개 지검과 수원, 인천 지검게 여성아동범죄조사부를 신설했다.

젠더폭력 법안 필요 및 폭력예방교육은 지지부진

‘성폭력문제 인식 변화를 위한 정책 방향 전환’ 공약 이행은 다소 미진하다. 피해자의 성이력을 증거로 채택하지 못하게 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 2016년 12월 발의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지만 20대 국회가 끝나는 지금까지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성폭력 무고 수사지침과 절차는 마련됐다. 대검찰청은 성폭력 사건 수사가 끝나기 전에는 성폭력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무고 혐의로 역고소한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는 않도록 수사매뉴얼을 개정했다. 그러나 형법 및 각 성폭력 관련 특별법으로 퍼져 있는 처벌 규정을 재정비하겠다는 공약은 현재까지 진척이 없다.

‘폭력예방교육’ 공약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약에는 △폭력예방교육 대상 확대 △전문강사 역량강화와 체계적 관리 체계 구축 △폭력예방교육 실적 점검 및 이행관리 감독강화 △교육참가자의 평가를 교육내용에 제반영하는 효과적 평가 환류시스템 마련 등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현재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는 성교육 표준안 등 성교육은 성별 고정관념이 개선되지 않고 있고 이비 헌법재판소에서 불합치 결정이 난 임신중절수술 또한 여전히 불법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교육 자격이 불충분한 교사가 성교육을 진행하지 않는 등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여성단체, 문재인 정부 젠더폭력 공약 이행 '미흡'

여성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젠더폭력 공약 등 여성 정책 실현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여세연 권수현 대표는 “공약 이행률이 곧 정책의 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얼마나 잘했는지 평가하자면, 그렇게 잘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로 변경하는 법과 스토킹 처벌법 등 오랫동안 요구한 내용은 여전히 진척이 없다. 피해자 지원도 실효성 부분에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권 대표는 “강남역 여성살해 이후 공공화장실 중심으로 안심벨 설치 등 대책이 나왔지만 사실 젠더폭력은 화장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구조적 차원의 인식 전환과 대책이 필요한데 문재인 정부가 이 부분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은 여전히 불안을 느낀다. 이 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부의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책,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문재인 정부의 젠더폭력 관련 정책은 전반적으로 논쟁을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여진다”며 “n번방 재발방지법과 관련해서 디지털 성범죄는 연령과 상관 없이 피해가 발생하는데 성인 여성 피해자를 두고 ‘피해자냐 아니냐’는 갑론을박을 피해갔다. 성인 여성 피해자가 다수이고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대책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송 사무처장은 “스토킹 처벌법도 입법화 되지 않았고 강서구 살인사건 이후 정부가 가정폭력 종합대책도 내놨지만 마치 모든 일을 국회가 처리해야할 몫인양 대책을 발표했다. 정작 국회도 가정폭력 입법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남역 살해사건 이후, 공공화장실 안심벨 설치나 안심귀가서비스 등 지자체 중심 대책이 있었지만 이는 ‘피해자가 조심하라’는 메시지로 연결되고 오히려 여성폭력을 강화 한다”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여성들의 목소리가 훨씬 커지고 요구도 많았는데 그에 비해 가시화된 정책이나 성과는 없었다. 아직 임기가 남은 만큼, 정부가 목표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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