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 21대 초선의원을 만나다]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인
30년간 위안부 피해자 옆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역사 써온 여성인권운동가
건강 잃고 마음 지치고 우여곡절 많았지만 ‘피해자 할머니들’ 덕에 버텨
최근 ‘사전협의했다’, ‘일본 지원금 받지 말랬다’ 가짜뉴스에 고통스러운 시간
“21대 국회서 위안부 피해 대책 마련과 진실규명 등 성착취 굴레 끊겠다”

1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이 11일 북한산 진관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그동안 제기된 의혹과 앞으로의 의정활동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2015년 한일위안부 사전 협의 논란, 딸 유학비 논란, 정대협 회계 관리 등의 의혹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정의기억연대 전 대표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11일 오후 북한산 진관사에서 만났다. 진관사는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곳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자 지난 2009년 5월 칠성각 해제·복원 작업 도중 90년 만에 3·1 운동 당시의 태극기와 독립신문이 발견된 곳이다. 사람의 목소리보다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의 푸른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큰 곳에서 윤 당선인은 정대협에서 보낸 30여년 세월을 회상했다.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반박하는 것처럼 비춰지지 않길 바란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답보 상태에 있는 '2015 합의'의 책임은 민간단체인 정대협이 아니라 당시 피해자중심주의를 위배한 합의를 한 책임자들에게 있다. 정대협은 언론 보도로 늘 한 발 늦게 알았고 외교부에 직접 전화해 사실을 확인했다. 한일합의 책임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단체와 피해자를 이용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동안 제가 반박하지 않은 것은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서가 아니다. 피해자와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 한일합의를 해결하는 것이 앞으로 정부와 국회, 저의 과제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은 경상남도 남해군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큰 딸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자 부모님은 짐을 싸서 수원으로 이사했다. 대학을 가서 ‘기생관광’을 하는 또래 여성들의 사례를 알게 된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생활비를 벌다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삶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기생관광’ 반대 운동에 뛰어든 그는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보고 위안부 피해 진실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여성인권 운동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1992년 정대협 간사를 맡게 된 윤 당선인은 이듬해 딸을 출산한 지 한 달 만에 부은 몸을 끌고 100회를 맞은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남편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때였다. 당시 홀로 정대협 실무자를 맡은 그는 아이를 친정 부모에게 맡기고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위안부 피해 과거사 진실규명과 대책을 위해 일했다. 딸의 일기장에 엄마는 ‘밤에도 오지 않는 사람’, ‘주말에도 집에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에게는 어버이날에 오지 못해도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윤미향 당선인이  지난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서지현 검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성신문 
윤미향 당선인이  지난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서지현 검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성신문 

“한일위안부합의 사전 협의 전혀 없었다”

그런 윤 당선인에게 지난 며칠은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 대표였던 그에게 ‘2015 합의를 사전에 협의했다’, ‘부부 연봉이 적은에 미국에 딸을 유학 보냈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의 돈을 받지 말라고 말했다’ 등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윤 당선인은 관련 의혹에 대해 단호하게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윤 당선인에 따르면, 2015년 당시 박근혜 정부는 한일위안부합의를 추진하면서 일본과 협의한 사실과 내용을 정대협에 먼저 알려와 논의한 적 없고 피해자가 우려할 만한 내용도 공유하지 않았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는 당시 언론에서 보도를 해서 전 국민이 알고 있었다. 제가 사전에 협의를 한 일도 없다. 정대협은 뉴스를 통해 한일 국장급 협의 사실을 알았다. 정대협이 먼저 외교부에 전화해 면담을 요청해야만 면담이 이뤄졌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협의 일정이나 내용을 공유하고 논의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소녀상 철거’, ‘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 비난 자제’ 등 문제의 합의 내용은 2015년 12월 28일 한일위안부합의 당일에 사무실에서 그것도 텔레비전 뉴스 생중계로 처음 들었다. 그 자리에는 저를 포함해 이용수 할머니, 정대협 활동가들, 변호사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꾸려진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조사 TF팀은 이러한 사실을 포함해 당시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위배했고 이면합의를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정부가 피해자와 만났다고 한 횟수는 설날 방문, 피해자 할머니들이 피해자 요구서 들고 간 날 방문 등을 말한 것이다. 그것이 마치 피해자와 협의를 위한 만남처럼 느껴지게 말했지만 실제로 당시 정부가 '2015 합의'를 앞두고 피해자와 협의하거나 논의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윤 당선인은 최용상 가자인권평화당 대표가 전했다는 편지에 담긴 ‘할머니 일본 돈 받지 마세요. 정대협 돈 생기면 우리가 줄게요’라는 말은 결단코 자신이 한 적 없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이 합당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할머니들이 받겠다고 하면 배상 받는 게 마땅한 일이다. 가해자로서 책임을 묻는 일은 별개의 일인데 제가 왜 그런 말을 하겠나.”

그는 의혹 제기에 앞장서는 미래한국당 조태용 당선인에게는 당시 '2015 합의' 책임자로서 의정활동을 통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당선인은 굴욕적인 역사를 만든 '2015 합의' 책임자였던 전 외교부 차관이다. 2015년 한일합의는 위안부 피해자와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게 된 사건이었다. 조 당선인은 민간단체인 정대협 전 대표였던 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당시 한일위안부합의 책임자로서 피해자중심주의 입장에서 이 불신을 어떻게 해소할지 고민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30여 년을 거리에서 싸워온 사람이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1997년부터 2002년 돌아오기까지 정대협을 떠나 있던 4년은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는 1997년 정대협 단체 후원금을 횡령 의혹으로 검찰 고발을 당했다. 그는 통장 내역서를 가지고 가서 하루 종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결과는 무혐의였다. 박봉 월급을 받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한 비용을 고스란히 정대협에 쓴 내용이 통장 내역서에 기록돼 있었다. 검찰 수사관은 조사 끝에 “이 정도면 무고죄인데 고소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마음에 병을 얻었다.

정대협에 쏟은 시간만큼 그는 건강도 잃고 때로는 마음도 지쳤다. 출산하고 쉴 새 없이 일하느라 무리했던 탓에 그는 40대에 자궁 적출 수술도 받았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은 함께 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용수 할머니도 그 중 한 분이었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제 삶에 던진 의미가 많다. 뽀글뽀글 파마머리 아줌마였던 이용수 할머니의 첫 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데, 가슴이 먹먹하다. 30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했고 비례대표 후보 등록했다고 전했을 때도 기뻐하셨던 분이다. 할머니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는데 제가 다 듣지 못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봤다. 할머니가 계시는 밀양을 찾아가 6시간을 헤맸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할머니와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할머니가 다시 신뢰할 수 있도록 증명하고 노력하려고 한다.”

1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위안부 피해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인권 외교 하겠다”

총선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걱정이 먼저였다. 부모님과 남편은 “그동안 고생했는데 이제 좀 건강을 돌보면 안되느냐”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이 결심을 굳히자 누구보다 더 뜨겁게 지지해줬다. 미국 UCLA에 유학 가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을 두고 의혹이 제기됐을 때는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정대협에서 일하느라 부모님, 남편, 여동생 등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딸을 키웠다. 유학비는 ‘남매간첩사건’이라는 간첩조작사건으로 4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한 남편이 2018년 재심 판결로 받은 배상금으로 마련했다. 제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곤혹을 치르는 딸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고등학생 때는 밥 한 번 해주지 못했다. 그래도 딸이 이런 일로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분쟁지역의 성폭력 피해 여성과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희망을 주는 음악을 했으면 한다.”

21대 국회에서 윤 당선인은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기를 희망한다. ‘여성인권평화재단법’을 만들어 위안부 피해 진상규명과 과거사 아카이빙, 교사 양성 등 우리나라를 허브로 하는 전시성폭력 대책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국내 의정활동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인권 외교를 할 예정이다. 남북교류의 물꼬를 터서 평양이 고향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평양도 방문하는 것도 꿈이다.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에 따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도 지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해외에서 일본에 유리한 역사를 위해 홍보나 연구를 계획하고 지원하는 만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굳혀질까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위안부 대책 운동을 통해 전시 성폭력을 문제제기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해외 어딜 가나 이를 높게 평가한다. 좀 더 체계화 할 수 있다면 정책이나 외교 활동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이것이 결코 일본과 분쟁을 만드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여성 인권에서 나라다운 나라로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최근 발생한 n번방 사건은 성착취라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와 맞닿아 있다. 윤 당선인은 역사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n번방 사건을 접하고 이게 정말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인가 믿을 수 없었다. 약자의 생명을 도구로 돈을 벌고 권력관계를 통해 착취 구조가 왜 반복되는 것인지 고민했다. 답은 역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제대로 해결됐다면 기생관광, n번방 사건으로 반복되는 성착취 역사의 굴레를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부재한 젠더 시각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한데 역사 교육을 바탕으로 한 교과서, 사회교육, 언론 보도 모두 변화가 필요하다.”

며칠간 심신이 고달픈 와중에도 윤 당선인은 해야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있다. 4년 뒤 그는 ‘약자들의 문제를 의정활동으로 잘 풀어낸 의원’이자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국회에서 전달하는 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다.

“무엇보다도 30년간 거리에서 살던 사람이 국회 들어가길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30년간 온몸으로 싸우면서 피해자도 우리도 지치고 힘들었다. 정치는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다. 30년간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이제 국회로 들어가 정치로 제도로 희망을 보여주겠다. 살아계신 할머니들, 돌아가신 분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겠다.”

940차 수요시위에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한 윤미향 대표.prescription drug discount cards blog.nvcoin.com cialis trial coupon ⓒ한국정신대대책문제협의회
지난 2010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940차 정기수요시위에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한 윤미향 당선인. ⓒ한국정신대대책문제협의회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