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펴낸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
최초 붓다의 어머니에 관한 책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종교와젠더연구소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종교와젠더연구소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을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라 부른다.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어머니라 부르면 그는 노동자도 정치가도 예술가도 아니다. 그저 헌신적인 돌봄이 당연한 듯 요구된다. 거룩한 숭배의 대상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착취당하는 존재, 그들은 어머니다. 이제 가부장 가치로 오염된 모성 따위는 이야기 하지 말자는 페미니스트도 있다.

이대로 어머니, 모성을 여성운동에서 폐기해야 할까? 월경을 하고, 임신을 하고, 몸을 찢어 아이를 낳는 여성들의 경험을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까? 여성의 헌신을 피해자로만 묘사해야 할까? 여성의 몸의 경험을 지우려 한 가부장제 전략에 동조하는 것은 아닌가? 남자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생명 창조의 여성경험을 부인하는 것이 여성해방에 득이 될까? 여성운동에서 모성해석은 여전히 여성운동의 관건이다.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를 출간한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옥 소장은 책을 출간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경전적, 생애사적 심리학적, 불교 미술사적, 여성학적 관점 등으로 다각적으로 조명했다. 이것은 최초로 시도된 붓다의 어머니 마야왕비에 관한 책이다.

그는 불교페미니스트학자이며, 성평등불교연대(이하 성불연대)의 공동대표다. 최근 N번방 등 성착취물과 관련해서 조계종단 소속 승려의 존재가 드러나자 종단은 재빨리 당사자의 승적 박탈로 꼬리자르기만 하고 침묵했는데, 성불연대는 종단적 차원에서의 사과를 촉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옥봉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 © 본인 제공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 ©종교와젠더연구소

 

-마야왕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2010년 불교인 성의식 실태조사를 했다. 많은 비구니가 다음 생애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응답했다. 불교계에서는 업이 많아 여자로 태어났다는 말이 아직도 전해오고 있고, 여성의 자존감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재가여성(평신도)들 뿐 아니라 스님들도 존경할 수 있는 여성을 찾고 싶었다. 그때 붓다의 어머니 마야왕비를 알게 되었다.

이웃종교인 기독교에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마리아를 숭배하고 기념하는데 신과 인간의 스승인 붓다의 어머니 마야왕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은 숫도다나대왕이라 부르고, 아들인 붓다는 싯달타태자라고 부렀지만, 마야는 그저 마야부인이라 불린다.

붓다를 낳고 7일 만에 돌아가셨기에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할말이 없다고 했지만 빠알리로 쓰여진 초기경전에도 단편적으로 마야왕비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그녀는 엄청난 여성이었다. 마야왕비는 부처의 어머니 불모(佛母)일 뿐만 아니라, 수다원이라는 깨달음의 단계에 든 성모(聖母)이며, 또한 선재동자의 53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인 뛰어난 지도자였다. 가부장제 역사가 지워버린 그녀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알리고 싶었다.“ 

-마야왕비는 붓다를 낳고 7일 후 죽었다.

“불교는 아버지와 어머니 뿐 아니라 태어날 아이도 부모를 선택한다고 믿는다. 붓다는 도솔촌에서 인간으로 한번 만 더 태어나면 깨달은 부처가 될 수 있었다. 부처는 세상을 살펴 자애롭고 지혜로운 여인 마야왕비를 어머니를 선택했다. 마야는 이미 위대한 여성이었다. 싯달타를 낳고 7일 만에 죽어 도솔촌에 환생했을 때, 그를 찾아온 아들 붓다에게 ‘“나의 젖을 먹여 너를 키웠으니 너는 법을 설하여 나를 깨닫게 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이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마야왕비는 구도자였으며, 세상을 향한 사회적 모성을 실천한 인물이다. 지금 동남아 국가에서는 비구니가 사라졌다, 비구니에게 아무도 보시를 하지 않아 굶어죽었다는 말도있다. 마야왕비을 기억했다면 어땠을까?”

-마야왕비의 삶을 통해 여성들의 몸담론을 새롭게 볼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들의 욕망의 시선에 의해서 상상된다. 불교경전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여성관이 혼재되어 있다. 여성의 몸은 유혹자이거나 법을 담는 그릇(법기)으로 묘사되고, 여자의 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가르침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으니 다음 생에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이 혼재되어 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오랜 가부장제 사회를 지나오며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경전에 마야왕비 기록은 여성의 몸을 성전과 법기로 보고 있다. 마야왕비가 임신할 때, 천신들이 내려와 침대를 들고 올라가 천신들의 부인들이 그녀를 씻기고 천신들의 옷을 입힌다. 그리고 옆구리로 하얀 코끼리가 들어가며 붓다를 잉태하는데, 이 때 그녀의 몸은 붓다를 임신한 자궁, 즉 성스러운 장소(성소)가 된다.” 

지난해 5월 성평등불교연대가 주최한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페스티벌’의 모습. ©종교와젠더연구소
2018년 5월 성평등불교연대가 주최한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페스티벌’의 모습. ©종교와젠더연구소
지난해 5월 성평등불교연대가 주최한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페스티벌’의 모습. ©종교와젠더연구소
지난해 5월 성평등불교연대가 주최한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페스티벌’의 모습. ©종교와젠더연구소

 

-여성을 아이를 낳는 도구로만 본 것은 아닌지?

“그건 옹졸한 해석이다. 붓다 당시 인도는 딸과 땔감 한 무더기와 바꿀 정도로 여성의 지위가 열악한 시대였다. 붓다는 남녀의 차이에 기초한 성평등을 강조했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남편의 경」, 「아내의 경」에서 부부의 의무를 가르쳤는데, 남편은 아내에게 귀금속 등을 선물해 경제력이 없던 여성들이 자산을 가지도록 도왔다. 더 놀라운 것은 「남자의 경」뿐 아니라 「여자의 경」을 따로 만들어 구도의 길을 안내하였는데, 「남자의 경」에는 여자의 모습, 목소리, 감촉, 냄새, 맛처럼 유혹적인 것은 없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여자의 경」에도 남자의 모습, 목소리, 감촉, 냄새, 맛이 가장 유혹적이라고 가르치며, 여성의 성적 욕망을 인정하였다. 비구로 출가한 사람이 자신의 성정체성이 문제가 되자, 결국 그는 비구니승단으로 옮기기도 했다. 남자든 여자든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데, 성적 차이가 깨달음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인도의 마야왕비 조각상. ©종교와젠더연구소
인도의 마야왕비 조각상. ©종교와젠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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