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 21대 초선의원을 만나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당선인
21대 총선에서 소수정당으로 비례정당 참여해 국회 입성한 청년 정치인
“기본소득당에서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기본소득 출발점 만들겠다”

용혜인 당선인. ⓒ뉴시스·여성신문
용혜인 당선인. ⓒ뉴시스·여성신문

“막상 당선되고 나니 어깨가 무겁다. 기본소득당 의원으로서 저에게 주어진 4년이라는 시간과 기회를 통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한국사회에서 오래 논의돼 온 기본소득 의제를 사회를 구성하는 출발점으로 만들고 싶다.”

1990년생 청년 정치인이자 21대 총선에서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기본소득당 용혜인 당선인은 새로 시작하는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또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싶다. 기본소득당으로 돌아가 4년간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토대를 만들고 당의 기반도 탄탄하게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시민당은 12일 소수정당으로 21대 총선에 합류한 기본소득당 용혜인 당선인과 시대전환 조정훈 당선인의 제명을 확정했다. 용혜인 당선인은 13일 기본소득당에 재입당했다.

세월호 참사가 준 깨달음 ‘정치의 역할’

어릴 때부터 경찰을 꿈꿨던 용혜인 당선인이 정치에 눈을 뜬 계기는 2014년 세월호 참사였다. 그는 반복되는 참사를 보고 정치란 무엇인지 고민했고 본격적으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는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왜 사회적 참사가 계속 발생할까 의문이 들었고, 사회적 참사와 관련해 사고의 수습과 대책을 위한 활동을 해왔지만 그 이후에도 수습과 대책 활동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일어났다. 결국 법과 사회를 바꾸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30일부터 침묵행진 ‘가만히 있으라’를 진행했다. 안산에서 오래 살았던 용 당선인은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도 충격을 받았다.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전 국민이 슬픔에 잠겼던 것처럼 그도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또래 친구들 4~5명이 모여서 추모의 의미를 담은 침묵 행진을 준비했다. 많은 시민들이 취지에 공감해주셨다. 주말에 홍대, 명동, 서울 시청을 걸으며 ‘가만히 있으라’ 피켓을 들고 국화꽃을 들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했지만 용 당선인은 좌절했다. 유가족들이 이를 위해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았지만 당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의 과정은 진척이 없었다.

검찰은 2016년 11월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추모 침묵행진을 주도한 혐의로 용 당선에게 징역 2년을 구형하기도 했다. 용 당선인은 당시 마지막 공판에서 정치의 역할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법원은 침묵행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저에게 던졌던 질문은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였다. 다시는 전근대적이고 끔찍한 참사가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그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남겨진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앞으로도 한치 앞의 나의 삶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용혜인 당선인. ⓒ용혜인 당선인 제공.
용혜인 당선인. ⓒ용혜인 당선인 제공.

미래가 불안한 이들을 위한 ‘기본소득’

기존 정치의 한계를 느낀 용 당선인은 2014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정당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그는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세월호에서도 노동개악에서도 그들의 정치 안에 우리는 없었다”며 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다. 2017년에는 청년들이 주축이 된 워킹그룹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를 발족해 헌법에 기본소득을 명시해야 한다는 운동을 했다.

지난 2019년 7월에는 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돼 기본소득당으로 당명을 바꾸고자 했으나 찬반투표 결과 부결됐다. 이후 그는 노동당 당대표 직을 내려놓고 탈당해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다.

“세대에 따라 시대에 대한 인식 차이와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차이를 느낀다. 4차 산업, 여성·성소수자·장애인, 아르바이트 노동 등에 관한 정치적 의제는 기존 정치세력이 담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보는 차이점을 확인했다. 특히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의 실현이 절실하다고 봤다.”

창당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기본소득당은 2019년 9월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린 이후 2019년 11월 당원수 5000명을 돌파해 2020년 1월 19일 창당했다. 용혜인 당선인은 기본소득당 대표를 맡았다.

“창당을 막상 하려고 보니 쉽지 않았다. 온라인 당원가입 시스템을 만드는 일도 어려웠고 전국 5개 시도에서 최소 5000명 이상 당원을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오프라인으로만 당원을 모을 때는 정말 막막하게 느껴졌는데 선관위와 협의하고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결과적으로 창당까지 할 수 있게 됐다.”

기본소득당을 창당하고 난 이후에 그는 기본소득에 대한 시민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더욱 많이 듣는다.

“기본소득당이 창당한 지 100일 정도 됐다. 2만 명 당원들이 합의한 목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 창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를 받았다. 시민들은 ‘기본소득이 언제 실현되느냐’, ‘나도 받을 수 있느냐’, ‘기본소득당이 국회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라며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기본소득당의 당원들은 80%가 10~20대다. 용 당선인은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시민들이 기본소득에 더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용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해 출마한 것은 여러 논의 끝에 어려운 결정은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들이 대다수다.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쿠팡맨, 프리랜서, 동화작가, 간호조무사 등 직업을 가진 분들이 우리 당원들이다. 경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청년들, 노동자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열망을 가지고 있는데 현실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지만 당원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용혜인 당선인. ⓒ용혜인 당선인 제공.
용혜인 당선인. ⓒ용혜인 당선인 제공.

“미래 한국 사회의 비전 제시하는 정치인”

용 당선인은 21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정받기를 희망한다. 기본소득은 결국 재정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책이다. 보건복지위원회나 여성위원회 활동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선거 중에 탈가정 여성 청소년을 지원하는 단체를 만나 이들에 대한 통계나 현황을 파악할 자료부터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재난기본소득 논의 과정에서 봤듯 기본소득을 잘 논의할 수 있는 위원회는 기획재정위원회다. 우선으로 기재위 배정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정당 소속 청년 초선 비례 의원이 기재위 가는 일을 쉽지 않다고 한다. 국회 상임위 배정이 원내 교섭단체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보건복지위원회에 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 장애인 관련 법안, 탈가정 여성 청소년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정책을 만들고 싶다. 겸임으로 여성가족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싶다.”

소수정당이 국회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법에서 봉쇄조항을 낮추는 일에도 뜻이 있다. 현행법은 정당득표율 3%를 넘어야만 원내에 진입할 수 있다. 많은 소수정당이 정당득표율 3%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지난 선거법 개정이 봉쇄조항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 정당 비례대표 투표에서 420만표가 사표가 됐다. 3% 득표율을 달성하지 못하는 정당을 찍은 국민들의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봉쇄조항을 낮춰야 여성, 소수자가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다양한 소수정당들이 국회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1호 법안으로 ‘온국민기본소득법’을 약속했다. 국회 차원에서 연구를 하고 공론화 하는 일부터 하는 것이 계획이다.

“온국민기본소득법은 전국민에게 정기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1대 국회가 시작되면 국회 차원에서 연구를 시작하고 공론화를 할 생각이다. 하반기에는 국회에서 논의에 착수해 내년까지 입법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부터 입법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용 당선인은 국민들에게 어떤 의원으로 남고 싶을까. 그는 87년 민주화 이후에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제까지 90년대생 정치인으로 불렸다면, 앞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미래 한국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으로 불리고 싶다. 젊은 정치인으로만 기억되고 싶지 않다. 87년 민주화 이후에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논의하고 제시하는 의원이 되고 싶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