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의 건강 손상은 ‘산재’
판결 이끌낸 엄마노동자들
여성노동자 건강권 보장 위한
단일법 체계 구축 필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임신 중 여성노동자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4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임신 중 여성노동자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자회견’이 열렸다. ⓒ여성신문

 

모(母)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 상의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가 다투어졌던 ‘제주의료원 사건’은 대법원이 여성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11년 만에 끝났다.

우연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병원에서 2009년에 아이를 임신한 간호사 중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고 5명은 유산했다.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병원은 서울대학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 간호사들이 임신 중에 주야간 교대근무,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태아 및 임산부에게 해로운 약물취급 등 유해 요소에 노출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생한 간호사들은 ‘임신 초기에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되어 태아 심장형성에 장애가 발생했으므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2012년 12월 11일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법이 규정한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애·사망만을 의미하고, 자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2012년 12월 27일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했다.

이에 그녀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2014년 서울행정법원은 산재보험법에서 ‘업무상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그런데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므로, 태아의 건강손상은 곧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여성 근로자의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했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이다’. ‘산모가 건강이 손상된 태아를 출산한 경우, 물론 이 아이는 독립한 법 주체이고 근로자가 아니지만 산재보험법은 질병의 발병시점이나 보험급여 지급 시점에 재해자 또는 수급권자가 여전히 근로자일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출산으로 모체와 태아의 인격이 분리된다고 하여 그 전까지 업무상 재해였던 것이 더 이상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바뀔 수는 없다’. ‘업무에 기인해 유산한 여성근로자에게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업무에 기인해 선천성 질환아를 출산한 여성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불합리한 차별” 이라며 이들의 산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2016년 항소심 재판부는 “여성 근로자인 원고들이 임신 중에 작업환경의 유해요소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형성에 장애가 생기고 이로 인하여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는 자녀를 출산하였다고 하더라도,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인 원고들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원고들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는 없다” 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지난 4월 29일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 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성 근로자는 출산 이후에도 모체에서 분리되어 태어난 출산아의 선천성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지 않는다. 즉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여성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 법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여성 근로자의 재생산권은 충분히 보호받아야 하고,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임신과 출산 없이는 가족․사회․국가 공동체가 존속․유지할 수 없다.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은 공동체의 존속․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특히 여성 근로자의 재생산권은 그녀들의 건강권과 노동권, 나아가 태아의 건강권이 하나의 몸 안에 존재한다.

이제 남은 일은 여성 근로자, 특히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태아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특히 사업장 내 유해물질 관련 기준을 물리적 요인, 생물적 요인, 화학적 요소 및 노동조건으로 구분(김영택, 2016)해 다양하게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입법적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근로자의 건강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선천성 장애 또는 질병이 있는 자녀를 출산했을 경우 업무상 재해로 보도록 산재보험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더 나아가 이 사건을 계기로 현재, ‘근로기준법’ 등에 산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일하는 여성의 건강과 모성권 보호’가 가임기에서 육아기까지의 순환 주기에 따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단일법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권혁, 2015)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어야 한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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