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진씨 부부, 구청에 혼인신고 시도
결과는 '접수' 후 '불수리'
현행법상 동성간 혼인 금지 조항 없지만
혼인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 인정

김규진씨가 종로구청에서 받은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 ⓒ김규진 

 

5월 7일 서울 종로구청에서는 소란이 일었다. 결혼한지 1년 된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하려 하자 구청이 ‘접수’할 수가 없다고 막았기 때문이다. 혼인신고서를 받은 공무원은 놀라 법원에 전화했고 급기야 고위직 공무원들이 차례로 내려왔다. 소동의 이유는 혼인 신고를 하고자 한 부부가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혼인신고서를 들고 간 사람은 지난해 5월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고 11월 한국에서 결혼식까지 올린 김규진(30)씨였다. 그는 결혼 1주년을 맞아 구청에 혼인신고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접수도 아니고, 접수거부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구청이 갖고 있으면 분실했을 때 책임소지가 구청에 있으니 가져가 달라고 했어요. 맞는 말이니까 법원에서 전화가 올 때까지 카페에서 기다렸어요. 눈물이 났어요. 이런 법률, 이런 판례로 ‘선생님의 혼인은 어렵다’라고 말을 하니까... 막연히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왜 내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지 조목조목 들으니 상처가 됐어요.”

김규진 부부의 웨딩사진.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김규진
김규진 부부의 웨딩사진.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김규진

 

5월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30주년이다. 1990년 5월17일 세계 보건 기구(WHO)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해 제정됐다. 2020년 5월9일 현재 세계적으로 동성간 결혼과 결합을 인정하는 나라는 35개국이며 오는 29일 코스타리카가 동성혼을 법제화 할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동성의 연인이 부부로서 살아가는 일은 아직 어렵기만 하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처음 언론을 통해 동성의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음을 알렸다. 당당히 회사에 아내와 결혼 후 신혼여행을 가겠다며 휴가까지 얻어냈다. 김씨를 향해 쏟아지는 악성댓글과 성소수자를 향한 날선 혐오,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부부에 가해지는 성희롱에도 담담하고 당당했던 김씨였다. 그러나 8일 종로에서 만난 규진씨는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구청에서의 소동을 말하는 동안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해 곧 눈물을 닦았다.

“구청에서 소동이 이는 동안 죄송했어요. 저 하나 때문에 세 명의 공무원이 붙어있었고 뒤에 있는 사람들도 주시하며 긴장해 있었어요. 그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런데 미안할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혼인신고를 한 것뿐인데. 그래서 더 비참했어요.”

법원의 판단으로 김씨의 혼인신고서는 구청이 접수했다. 그러나 현행법을 들어 불수리 됐다. 그때 규진씨가 받아든 불수리 통지서에 적힌 사유는 헌법 36조 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와 민법 815조 혼인의 무효 1항 ‘당사자간에 합의가 없는 때’였다. “불수리 통지서가 잘못 나갔다”는 공무원의 말에 가서 다시 받아든 서류에는 ‘김규진과 ○○○는 현행법상 동성이기 때문에 결혼이 어렵다’로 고쳐져 있었다.

“법원이 두 법률을 대표적으로 동성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들 수는 있지만 엄격히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고 고쳐주셨어요. 그때 절 지켜보던 한 중년의 여성분이 '그래도 국회에서 법제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자'며 말해주셨는데 또 눈물이 났어요.”

김씨가 혼인신고를 결심한 것은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김씨는 “다른 부부들은 다 하는 거니까, 나도 결혼을 했으니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헌법과 민법에 따르면 원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고가 안 된다면 왜 안 되는지도 궁금했다. 불수리를 확인하기는 했지만 헌법소원 등 법적인 절차를 밟을 계획은 현재로써는 “없다”고 밝혔다. 

“결혼하고 지난 1년간 행복했어요. 결혼 전에 많은 기혼자들이 결혼생활의 불만이나 괴로운 점을 말해서 긴장했지만 그런 일은 생각보다 없었어요. 물론 다른 건 있어요. 하지만 서로 각자 스타일이니까 하고 인정해요. 결혼하고서 달라진 건 더 안정되고 더 행복해졌다는 것뿐이에요.”

혼인신고의 절차는 간단하다. 구청에 두 결혼 당사자의 신분증만 가지고 가면 된다. 추가적으로 증인 두 명의 인적사항이 필요하다. 혼인신고는 ‘허가’를 필요로 하는 절차가 아니라 ‘신고’하는 절차기 때문에 법률상 금지된 중혼, 근친혼 등의 문제가 없다면 반드시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5분 남짓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날 김씨의 혼인신고와 불수리에 걸린 시간은 4시간여에 달했다.

김규진(30)씨는 혼인신고가 불수리 된 날이자 결혼 1주년이던 날 저녁, 아내가 편지로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다시 반했다, 결혼을 해서 너무 행복하다"고 써주었다고 밝혔다. ⓒ김서현 기자  

그동안 한국에서 동성간 혼인 신고를 시도한 사람은 김씨 부부를 포함해 한 쌍이 더 있다. 2012년 결혼식을 올리고 우편을 통해 혼인신고를 접수시킨 김조광수·김승환씨 부부다. 이때도 혼인신고는 불수리 됐다. 그때도 지금도 현행법에 동성간 혼인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제 기사나 글에는 악성댓글이 엄청나게 달려요. 아내는 그 악성댓글에 자신이 반박 댓글들을 달았다고 말해요. 너무 귀엽지 않나요? 혼인신고를 실패하고 돌아온 날도 편지를 써주었어요. 거기에 오늘 그렇게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다시 반했다, 결혼을 해서 너무 행복하다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걸 보며 정말 힘이 됐어요.”

김씨는 10여 년 후에는 부부가 잊혀질 거라고 말했다. 더 많은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할 것이고 그러는 동안 동성 부부가 당연해지면 김씨 부부의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밝혔다.

"아직도 연예인 홍석천씨가 동성애자의 대표 이미지라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20년도 넘었잖아요. 아마 홍석천씨도 '아니 아직도 내가?' 싶을 거에요. 하지만 앞으론 달라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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