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얼굴문신의 한을 안고 살아온 여성들
[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얼굴문신의 한을 안고 살아온 여성들
  •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 승인 2020.05.14 13:13
  • 수정 2020-05-1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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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얼굴문신의 한을 안고 살아온 여성들

 

미얀마의 서북부, 인도와 방글라데시와의 접경 지역에 친(Chin)이라는 주가 있다. 7개의 주는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민족들의 의상이나 문화가 독특한데, 특히 친 주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어찌 보면 야만적이기까지 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로부터 여성들의 얼굴에 검은 색 문신(Tatooed Face)을 하는 전통이다. 친 주 남부의 깐파랏 (Kantepelat) 시와 민닷(Mindat) 시 주변의 여러 마을에는 얼굴에 검은색 문신(Taatoo)을 한 여성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런 풍습은 1960년 대 후반에 군사 정권에 의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래서 얼굴 문신을 한 여성들은 거의가 70대 이상의 할머니가 되었으며, 전설로나 남게 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깐빨랏(Kantepelat)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의 산기슭에는 친 족 여성들의 얼굴문신에 관한 사진과 관련 자료들을 모아놓은 문신 박물관(Tatoo Museum)이 있다.

여성들에 대한 '얼굴 문신' 풍습은 친 족의 지파에 속하는 다이인두(Dai Yindu), 응그라(Ngra), 뮨(Muun), 까늑(Kanng) 등의 부족을 중심으로 거의 1,000 년 전부터 시행되어 온 전통으로 여성들이 사춘기가 되면 강제적으로 얼굴에 문신을 시행했다고 한다.

친 족의 여성들은 예로부터 얼굴이 아름다워서, 힘있는 이웃 부족, 혹은 바간 왕국의 왕이나 귀족들이 친 족의 여인들을 납치해 가는 경우가 잦았던 모양이다. 이 마을의 남성들이 자기네 여인들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고안한 것이 바로 얼굴 문신이었으며, 이것이 부족의 전통이 돼버린 것이라 한다. 얼굴 문신은 친족 남성들이 자기네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가리기 위해 고안한 수단이었다. 지난 1월 여행에서는 여덟 분의 문신 할머니들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 몇 분을 소개해 본다. 

‘미소 할머니’라는 별명을 지닌 94세의 나이꿰 할머니. 문신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얼굴이 미워지고, 결혼도 할 수 없다는 어른들의 설득에 의해 12살 때 처음 문신을 했다. ©조용경
‘미소 할머니’라는 별명을 지닌 94세의 나이꿰 할머니. 문신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얼굴이 미워지고, 결혼도 할 수 없다는 어른들의 설득에 의해 12살 때 처음 문신을 했다. ©조용경

 

깐빨랏 시내에서 처음 만난 여성은 금년 94세의 ‘나이꿰’(Nay Kwee) 할머니였다. 다이인두(Dai Indu) 부족에 속하는 나이꿰 할머니는 12세 때 문신을 했는데, 혼자 살면서도 늘 웃는 얼굴이어서 마을에서는 '미소 할머니'(Smile Lady)로 통한다.

나이꿰 할머니는 문신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얼굴이 미워지고, 결혼도 할 수 없다는 어른들의 설득에 의해 12살 때 문신을 했다. 문신을 할 때는 누워 있는 상태에서 네 명의 건장한 여성들이 각각 팔과 다리를 누르고, 시술하는 여성이 굵은 가시와 바늘에 나무의 진액과 벌레로 만든 검은 색 문신액을 묻힌 다음 거의 하루 종일 걸려서 문신을 했는데, 도중에 너무 아파서 기절을 했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나이꿰 할머니는 계속 농담을 해서 우리를 웃겼다. 할머니는 열 일곱 살 무렵 결혼을 했고, 열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열두 명의 자녀가 죽었고, 막내딸 하나만 조금 떨어진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

할머니 1 년쯤 전까지 딸 집에서 같이 살았는데, 깐빨랏의 젊고 애향심이 강한 가이드 ‘쪼 츠와’(Kyaw Zwar) 씨가 할머니의 생계를 책임지기로 하고 도심에 가까운 이 집으로 모셔 왔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할머니를 만나고, 사진을 찍은 다음 5,000~1만쨔트(Kyat, 약 3.5~7 달러)을 드리고 가는데, 그 수입이 상당해서 부족함이 없으며, 손자들에게 용돈을 줄 정도가 된다고 했다.

깐빨랏 외곽의 또 다른 마을에는 70세의 '도 흘루마나'(Daw Hlu Mana)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까늑(Kanng) 족에 속하는데, 까늑 족 여인들은 얼굴 문신 외에도 자신의 얼굴 크기만한 화려한 귀걸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까늑 족인 70세 도 흘루마나 할머니도 12살 때 얼굴에 문신을 했다. ©조용경
까늑 족인 70세 도 흘루마나 할머니도 12살 때 얼굴에 문신을 했다. ©조용경

 

까늑 족 여인들은 마을에 축제가 있거나 손님을 초대할 때는 이 귀걸이를 착용한다는데, 혹시 보기 싫어진 얼굴 대신 귀걸이를 '미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아닐까? 도 흘루마나(Daw Hlu Mana) 할머니 역시 12세 때 얼굴에 문신을 했는데, 문신에 대해 특별한 저항감은 없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남편과, 결혼하지 않은 딸과 함께 산다고 했는데, 문신 할 때의 기억을 물으니 어른 네 사람이 자신의 팔 다리를 잡고 짓누르는 데서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었고, 너무 아파서 소리 지르며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도 흘루마나 할머니는 열일곱 살에 결혼했는데, 남편은 키도 크고 힘도 세고, 마을에서 알아주는 사냥꾼이었으며, 요즘은 농사를 짓고 있으며, 자신은 낮 시간 동안 주로 베를 짜거나, 간간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만나 얘기하고 사진 모델이 되어주는 게 일과의 대부분이라고 했다.

깐빨랏 외곽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응그라 족(Ngra Tribe) 출신의, 금년 75세인 ‘도 흐누마나’(Daw Hnu Mana) 할머니는 젊었을 때 한 미모 했을 듯한 단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국을 끓이기 위해 파이프를 불어 불을 피우는 도 흐누마나 할머니. 14살 때 주변 여자들이 다 문신을 해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했지만 문신을 할 때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조용경
국을 끓이기 위해 파이프를 불어 불을 피우는 도 흐누마나 할머니. 14살 때 주변 여자들이 다 문신을 해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했지만 문신을 할 때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조용경

 

도 흐누마나 할머니는 실내의 아궁이에 솥을 걸고 야채국을 끓이기 위해, 직경 3~4cm 정도의 파이프로 바람을 불어보내서 불을 피우고 있었다. 실내에서 장작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니, 매캐한 연기가 눈을 맵게 했다.

할머니는 14세 때 문신을 했는데, 주변 여자들이 다 한 것이어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일에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고, 며칠 동안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얼마 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속이 상해서 울었던 기억도 난다고 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면서 그 아픔을 잊게 됐는데, 지금은 막내 아들 집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깐빨랏 시내에서 빅토리아산 방향으로 조금 높은 위치에 있는 산동네에 사는, 금년 121세의 ‘쉐 영’(Shwe Young) 할머니는, ‘뮨'’ 부족 출신으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고 한다.

121세 쉐 영 할머니. 어른들이 문신을 하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16세에 얼굴에 문신을 받아야 했다. ©조용경
121세 쉐 영 할머니. 어른들이 문신을 하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16세에 얼굴에 문신을 받아야 했다. ©조용경

 

‘사람이 121세가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하는 게 무척 궁금했었는데, 쉐 영 할머니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에, 귀도 잘 들리지 않지만, 눈초리는 형형했다.

밖에는 잘 나가지 않는 편이며, 잘 때를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보낸다고 한다. 할머니는 16세 때까지 문신을 하지 않았는데, 어른들이 문신을 하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결국은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거의 죽을 뻔 했다고 얘기했다. 이 할머니가 태어난 해가 1899년이었다니, 심심산골의 16세 소녀가 무슨 방법으로 부족의 풍습을 피해 나갈 수 있었겠는가. 할머니는 밖에 나오자 짤막한 곰방대에 담뱃불을 붙여서 계속 뻑뻑 빨아대고 있었는데, 담배를 피운 지가 몇 십년 된다니, 담배가 반드시 생명을 단축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 주의 민닷(Mindat) 시에는 ‘코 피리 할머니’(Nose Flute Lady)로 유명한 금년 94세(1926년 생)의 ‘요신 할머니’(Mother Yaw Shin)가 살고 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키가 155cm 정도의 할머니가 코 피리(Nose Flute)를 지팡이 삼아 내실로부터 걸어 나왔다.
요신 할머니는 까늑(Kanng) 부족에 속하는 여성으로 얼굴에 문신을 했으며, 귀에는 무척 큰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할머니는 조그만 의자에 걸처 앉아 피리를 코에다 대고 약 3분 동안 애절한 곡조의 음악을 연주했다.요신 할머니는 15세 때 코 피리를 배웠으며, 그 후로 80년 가까이 각종 행사에서 연주를 하다보니 코 피리 할머니로 미얀마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구글에서 ‘큰 귀걸이’(Huge Earrings) 또는 ‘코 피리 할머니’를 검색하면 이 요신 할머니의 사진과 소개글이 여럿 있으니 이제는 세계적인 인물이라 해도 되겠다. 요신 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붙은 큰 건물은 아들이 경영하는 학원이며, 또 다른 두 아들은 미국으로 가서 사업에 성공했고, 그 아들들 덕분에 아주 잘 살고 있다고 자랑했다. 얼굴 문신을 해서 힘든 삶을 살았겠지만, 말년에 복이 많은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귀걸이는 ‘조롱박’과 ‘구슬’을 엮어서 만든 것이라며 까늑 부족 여인들이 중요한 행사 때 착용하는 장신구라고 설명했다. 요신 할머니는 중년 시절부터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매주 교회에 나가고 있고, 물질적으로도 교회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깐빨랏에서 만난 다른 얼굴 문신 할머니들과 달리 표정이 온화하고 평화스러웠다. 

‘코 피리 할머니’로 유명한 94세 요신 할머니. 15세 때부터 80년 가까이 코 피리를 불어 유명인사가 됐다. ©조용경
‘코 피리 할머니’로 유명한 94세 요신 할머니. 15세 때부터 80년 가까이 코 피리를 불어 유명인사가 됐다. ©조용경

 

이렇게 얼굴 문신을 한 다섯 할머니들을 소개했는데, 어찌 본면 그 할머니들은 이 얼굴 문신을 타고난 운명으로 받아 들였고, 흉한 얼굴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했다. 아무리 오래된 부족의 전통이라 해도 이것은 인간에 대한 중대한 범죄가 아니겠는가. 명목이야 자기들의 여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 내면에는 여성을 사유재산으로 취급하면서 착취했던 남성 중심의 사고가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자기네 여인들을 지킬 수 없었던 무능하고 무책임한 이들 부족의 남성들은, 무수한 화냥년(환향녀, 還鄕女)을 만들어 낸 오래 전 조선의 남성들과 쌍벽을 이루는 후안무치한 족속들이 아닐 수 없겠다. 1960년 대 후반에 미얀마 군사정권이 이런 전통을 금지시킨 것은 참 잘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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