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부산성폭력상담소 고발 결정 밝혀
정치적 계산이라며 피해자를 향한 억측
피해자 보호는 뒷전이고 정쟁만 하는 정치권

미래통합당 곽상도 진상조사단 위원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성범죄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미래통합당 곽상도 진상조사단 위원장이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성범죄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오거돈 전 시장과 부산시청 정무 라인 관계자뿐 아니라 부산성폭력상담소를 비밀 엄수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곽상도 위원장은 부산성폭력상담소 고발 결정 이유에 대해 성폭력상담소에 종사하는 사람은 피해 사실에 대한 비밀 엄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오 전 시장의 정책보좌관을 통해 사실 확인 작업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라 “피해 사실을 접한 부산시장 정무 라인 관계자는 피해여성을 회유하려는 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여성신문이 곽상도 위원장과 통화한 바에 따르면, 성폭력상담소가 사실관계를 가해자 측에 알려줬다는 정보는 언론보도만을 통해 취득한 내용이다. 부산성폭력상담소나 피해자에게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았다. 설사 미래통합당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오거돈 성폭력 사건을 신고 받은 성폭력 상담소가 사실확인 없이 구체적인 피해자 지원을 할 수 있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미래통합당의 부산성폭력상담소 고발은 무리수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성폭력 가해자인 오거돈 전 시장과 정무라인 관계자들만 고발해도 충분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현재 피해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오거돈 시장의 성폭력 사건에 함께 대응 중이다. 피해자 지원에 몰두해야할 시기에 미래통합당 고발 때문에 졸지에 수사 대상이 되었다.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지도 않고,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부산성폭력상담소를 고발하는 것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피해자에 대한 공격과 다름없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오거돈 성추행 사건을 둘러싸고 피해자를 향한 추측과 억측도 난무하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4월 27일 자신의 SNS를 통해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절대 공증업무를 맡겨서는 안될 법무법인 부산을 골라서 공증을 맡긴 것인데 비상식적일 뿐만 아니라 분명 어떤 의도가 있지 않고서 이럴 수는 없다며” 오거돈의 기자회견 전에 청와대와 민주당이 성추행사건을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성추행사건을 미리 알았냐는 질문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총선 이후에 폭로하여 민주당이 승리를 가져가게 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면 피해자가 선거 중에 폭로하여 더 큰 비난과 억측을 견뎠어야 옳다는 것인가.

박성중 미래통합당 의원은 피해자를 깍아내리며 정치권이 개입했을 것이라 의심했다. 4월 29일 박성중 미래통합당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피해자인 20대 여성이 공증까지 해서 시장직 사퇴를 생각하기는 어렵다”며 “정치권 인사 등의 중재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라고 말했다.

피해자의 성추행 사건 폭로가 정치적 계산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과 ‘미국연방대법관 브렛캐버노 미투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89년 6월 자신의 석방환영대회에서 기념연설을 하는 권인숙씨. ⓒ여성신문
1989년 6월 자신의 석방환영대회에서 기념연설을 하는 권인숙씨. ⓒ여성신문

“급진 좌파 사상에 물들고 성적도 불량한 가출자일 뿐.” 
“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 성적 수치심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의 고발에 당시 경찰 당국과 언론이 반박하며 보도한 내용이다. 부천경찰서 경장이었던 문귀동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조사한다면서 노동운동을 하다 체포된 권인숙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다. 군사독재정권의 인권유린 사실을 막기 위해 피해자의 발언이 허위사실이라며 “성마저도 혁명의 도구로 쓴다”고 매도했다. 

2018년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였던 브렛 캐버노의 청문회에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폭로한 크리스틴 포드도 같은 의심을 받았다. 몇몇 공화당 의원은 크리스틴 포드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미투 폭로를 한 건 아닌지 의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그때 성폭력을 고발하지 않고 인제 와서 문제제기 하냐’며 피해자를 조롱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크리스틴 포드 미국 팰로앨토대 교수가 27일(현지시간) 워싱턴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브렛 캐버노 대법관 지명자의 과거 성폭행 기도에 대해 증언하기 전 선서하고 있다. 2018.09.28  ⓒ뉴시스·여성신문<br>
크리스틴 포드 미국 팰로앨토대 교수가 27일(현지시간) 워싱턴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브렛 캐버노 대법관 지명자의 과거 성폭행 기도에 대해 증언하기 전 선서하고 있다. 2018.09.28  ⓒ뉴시스·여성신문

 

여성이 성폭력 사건을 폭로할 때마다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눈초리가 따라붙는다. 다른 여성들이 같은 일로 희생당하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권인숙도,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해 용기를 냈다는 크리스틴 포드도 자신의 ‘의도’를 계속해 해명해야 했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는 지난 23일 이미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번 사건과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부산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부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 내용만으로 충분하다.
의혹만 제기하고 피해자는 뒷전인 사회에서 어떻게 피해자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까.
해명해야 할 사람은 피해자와 그 곁에서 싸우는 이들이 아니라 가해자다. 
정치인은 의혹이 아닌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처벌을 위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피해자를 사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피해자를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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