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발표
대책은 진보, 아동·청소년만 ‘초점’ 한계
성인 피해자 지원은 사각지대
‘온라인 성착취 특별법’ 필요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브리핑을 했다. ⓒ뉴시스·여성신문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브리핑을 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최근 n번방, 박사방 등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이 공개됐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도 디지털 성범죄에 전면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 대책은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서 전반적으로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아동·청소년 피해 대응책에만 머물렀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특히 성인 피해 대응책이 미흡하다는 점과 전반적인 피해자 지원 및 보호 방안 부족하다는 점이 향후 입법 과제로 제시됐다.

정부는 지난 23일 교육부, 과기정통부, 법무부, 국방부, 행안부, 여가부, 방통위, 경찰청 등과 공동으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아동·청소년 이용 성착취물 범죄 처벌 상향 및 양형 기준 마련, 범죄수익 독립몰수제 도입, 온라인 그루밍 처벌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성착취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가운데 ‘박사방’을 운영한 혐의를 받는 A씨 등 4명을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여성신문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성착취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가운데 ‘박사방’을 운영한 혐의를 받는 A씨 등 4명을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여성신문

 

신설,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기준 상향, 인터넷 사업자 징벌적 과징금제 도입 등이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겠다는 목표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실효성 강화, 아동·청소년 보호, 수요 차단 및 인식 개선, 피해자 지원 내실화 등 4대 분야에서 17개 중과제 및 41개 세부과제를 마련했다.

그러나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3일 정부의 대책에 대해 “보다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향후 대책 방향이 필요하다”며 정부 대책의 한계를 짚었다. 공대위는 모든 성착취물의 구매·소지·스트리밍 수요행위 처벌, 전 연령대 피해자에 대해 일어나는 온라인 성착취 범죄의 중대범죄화 및 법정형 상향, 경찰 신고 단계부터 성폭력 범죄로 일괄 포함, 유포협박 처벌, 피해자 중심의 삭제 지원 등이 포함된 포괄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논평을 냈다.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한계점으로는 유포협박죄 미포함, 성인 피해자 사각지대 발생, 시청 방식의 이용 처벌 미흡, 플랫폼 사업자의 형사처벌 한계, 전반적인 피해자 지원 및 보호 대책 부족 등이 꼽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성착취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가운데 ‘박사방’을 운영한 혐의를 받는 A씨 등 4명을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여성신문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성착취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가운데 ‘박사방’을 운영한 혐의를 받는 A씨 등 4명을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여성신문

유포 협박은 디지털 성범죄의 시작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처벌 실효성 강화를 위해 중대 성범죄 예비·음모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디지털 성범죄에서 피해자에 대한 괴롭힘이 시작되는 단계인 ‘유포협박’이 누락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뿐 아니라 대다수 디지털 성범죄의 사례들이 유포협박, 유포, 촬영 강요와 얽혀 있다. 가해자는 유포협박을 통해 피해자를 더 강력한 방식으로 통제한다”며 “디지털 성범죄에서 유포협박을 성폭력으로 처벌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고 지적했다.

서랑 대표는 “현재는 디지털 성범죄의 유포협박이 형법상 협박죄로 처벌되는데, 디지털 성범죄에서 유포협박은 성범죄와 연결돼 있는 만큼 특수한 성폭력처벌법으로 다뤄져야 한다”며 “이번 정부 대책에서 유포협박죄가 빠진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전 연령대 피해자 포함하고 스트리밍도 처벌해야

정부는 수요 차단 및 인식 개선을 위한 대책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대해서는 소지죄와 구매죄를 별도로 구분해 소지하지 않고 구매만 해도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성인 대상 성범죄물에 대해서는 소지죄만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정부 대책에서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소지죄만 처벌하는 것은 사각지대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다수는 여전히 성인이다. 지난 3월 서울지방경찰청이 발표한 텔레그램 ‘박사방’ 피해자는 최소 74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미성년자는 16명으로, 피해자의 80%인 58면은 20세 이상 성인 피해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정부 대책은 최근 성범죄 영상물이 시청 즉 스트리밍 방식으로 이용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랑 대표는 “웹하드, 텔레그램, 불법사이트 모두 소지가 아니라 시청 방식으로 성범죄물을 이용한다. 구매와 시청까지 포함해야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의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와 구매를 분리해 이해한다는 점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구매와 시청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성범죄 산업화 막을 사업자 형사처벌 필요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높이기 위해 징벌적 과징금제를 도입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형사 처벌이 뒤따라야 실효성이 강화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인터넷 사업자의 책임 강화를 위해 바로 삭제 범위에 디지털 성범죄물을 포함하고, 모든 사업자에 유통 방지를 위한 삭제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 의무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제재 수단은 징벌적 과징금제로 그쳤다.

서랑 대표는 “플랫폼 사업자 책임 강화 대책과 관련해 형사처벌 근거조항이 마련돼야 한다. 현행법은 2000만 원 미만의 행정처분에 그쳐, 플랫폼 사업자가 실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며 “전기통신사업법에 있는 형사처벌 조항은 수사기관의 증명이 어려워 실효성이 없다. 플랫폼 사업자가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을 못하도록 적극적인 조치, 형사처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망법상 해외사업자에 불법정보 유통금지 의무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개선책으로 꼽혔다. 그동안 해외에 서버를 두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불법 사이트는 추적이 어렵고 처벌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 규정이 통과되면, 그동안 해외에 서버를 둔 내국인을 우리 법으로 처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랑 대표는 “정부가 내놓은 디지털 성범죄 대책은 전반적으로 진보한 면이 있다. 그런데 아동·청소년 중심으로 우회에서 성인 피해자와 구분해 대책을 만든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21대 국회에서는 온라인 성착취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랑 대표는 “정부의 대책에는 피해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대책이 미흡하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해서도 관련 법안이 분산돼 있어 현행법으로는 너무 많은 입법 과정과 개정이 필요해 복잡하다”며 “통합적인 관점으로 디지털 성범죄 처벌을 포괄하고 피해자 지원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향후 과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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