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 응우옌 티탄씨
사건 이후 52년 만에 소송
역대 대통령 ‘간접 사과’
정부는 공식 인정 안 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베트남 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사거에 관한 국가배상청구 소장 접수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베트남 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사거에 관한 국가배상청구 소장 접수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에게 가족이 학살됐다고 주장하는 베트남 여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첫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산하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는 21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응우옌 티탄(60)씨를 대신해 국가배상 청구 소장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법원에 제출한 소장은 총 100쪽이 넘는 분량으로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진이 담겼다. 

응우옌 티탄씨는 1968년 2월 12일 발생한 ‘퐁니, 퐁넛학살’의 생존자다. ‘퐁니, 퐁넛학살’이란 꽝남시 디엔반현 탄퐁사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 군인들이 노인, 여성, 아이 등 민간인 74여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8살이던 응우옌 티탄씨는 1968년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쏜 총에 의해 배에 총상을 입고 1년간 입원했으며 수술로 목숨을 건졌지만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응우옌 티탄씨의 14살 오빠도 다쳤으며 가족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 60세가 된 응우옌 티탄씨는 지난 2015년부터 이런 피해사실을 주장하며 해결을 요구해왔다. 2018년 4월에는 민변과 한∙베평화재단이 진행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소송에 원고로 참석했다. 당시 시민법정 재판부는 베트남전 당시 퐁니마을 등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이 살해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2019년 4월에는 피해자 103명과 함께 청와대에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난해 ‘제주 4·3 평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베트남 정부 역시 학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고 있다. 민변 TF의 김남주 변호사는 “수십년간 유족과 생존자는 대한민국에 책임을 물어왔다”며 “지난해 4월 응우옌 티 탄씨를 비롯한 103명의 유족과 생존자는 청와대에 청원 형식으로 공식적인 질문을 제기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응우옌 티탄씨가 한국 정부를 향해 내놓은 카드는 법정소송이었다. 노트북을 통한 화상 전화를 통해 참여한 응우옌 티탄씨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정만이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며 “제 개인의 권리와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TF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의 용기 있는 소송에 국민이 많은 관심을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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