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온통 총선으로 시끄러운데 나는 총선 이후 성평등정책 지형을 상상했었다. 2018년에는 ‘미투가 있었고 불법촬영이라는 단일의제로 30만명이 모인 ‘혜화역 시위’가 있었다. 최근에는 ‘N번방’이라는 지옥문이 열렸다. 그러나 양대 정당 공약 속에 존재하는 여성 유권자는 성폭력 피해자, 재취업을 지원해야 하는 경력단절여성, 돌봄 제공자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1020세대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 3040세대의 좌절과 고단함, 5060세대의 일자리와 7080세대의 빈곤과 고독 등에 대한 대답은 보이지 않았다. 집권 여당의 압승이라는 총선 결과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변화되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인 “정치 권력의 성별 비대칭”과 만난다.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제도정치 특히 의회 내 여성 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심이 되었고, 성별 할당제는 유효한 전략으로 채택되어왔다. 우리나라 역시 2000년부터 의회 내 여성 비율 제고를 위해 할당제를 도입·발전시켰고 할당제는 여성 국회의원 수를 완만하게나마 증가시키는데 기여했다. 21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은 20대 국회 17%에서 19%로 소폭 상승했다. 여성 의원의 증가는 할당제 제도화의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증가 속도는 완만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여성 의원 비율 28.8% (2017년 기준) 보다는 10%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왼쪽부터) 기본소득당 신민주 후보, 여성의당 이지원 비례대표 후보, 무소속 신지예 후보.
(왼쪽부터) 기본소득당 신민주 후보, 여성의당 이지원 비례대표 후보, 무소속 신지예 후보.

 

21대 총선은 지난 총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성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진행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여성의제 정당인 여성의당이 창당해 20만 표의 정당 지지를 받았다. 소수정당과 무소속으로 “그 따위 정치는 끝났다”며 페미니즘 정치를 내걸고 지역구에 출마한 여성들이 존재했다. 2018년 미투, 불편한 용기 시위, N번방 사건에 대한 분노, 온라인 페미니즘 대중화가 이뤄낸 성과이고 그녀들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여성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는 할당제 전략이 상정했던 “주류 정당과의 협상과 개인 차원의 끼어들기 전략”이 아닌 그 ‘독자성’과 ‘주체성’에 있다. 이런 변화는 정치 권력의 성별 비대칭성 해결을 위한‘새로운 전략과 정책’을 고민하게 한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여성정치할당제를 넘어(할당제 강화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당과 선거제도 그 자체를 이른바 “성인지적”으로 다시 써야 한다. 현행 정당법상의 정당 설립요건과 정당 등록 취소 요건 등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고, 신생정당과 소수정당의 선거참여를 결과적으로 봉쇄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 장벽은 낮추어야 한다.

현행 정당법상의 5개 시도 이상의 지역에 시·도당을 가지며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 확보 요건은 창당과 유지를 위해 많은 자금과 인력을 필요하게 한다. 정치시장에의 새로운 정당의 진입을 어렵게 하여, 청년과 여성 등의 정치결사체 결성에 많은 제약으로 작용한다. 정당 창당 요건은 완화되어야 한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해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 정당등록은 취소된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결정을 받았고, 그 조항은 실효(失效) 되었다. “정당등록취소조항은 신생·군소 정당으로 하여금 국회의원 선거에의 참여 자체를 포기하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이 위헌이 되지 않았다면 21대 총선을 끝으로 여성의당, 민중당 등은 정당 등록이 취소되고 당명을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헌 결정 취지에 맞게 해당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 국회 내 의석을 보유한 정당과 그렇지 못한 정당 간의 차별 역시, 장기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교섭단체 중심의 국고보조금 배분제도는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정당은 국고보조금을 거의 배분받지 못해 정당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정치의 다원화의 걸림돌이 된다.

선거는 정당 활동의 꽃이고 정당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다. 그 만큼 정당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선거제도가 갖는 의미는 크다. 그러나 현행 선거제도는 소수정당과 신생정당 등의 선거활동을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제도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녹색당의 헌법 소원 결과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비례대표국회의원 후보 기탁금은 1500만원에서 500만 원으로 하향되었다. 그러나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경우, 후보자명부에 올라 있는 후보자 중 당선인이 1명이라도 있으면 기탁금 전액을 반환받게 되지만, 1명이 당선되기 위해서는 해당 정당이 유효투표총수의 3%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이러한 반환 요건은 신생정당이나 소수정당의 입장에서는 달성하기 어렵다. 21대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결과를 보더라도 선거에 참여한 37개 정당 중 실제로 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5개 정당에 불과한 것이 이를 확인시켜준다.

비례대표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특정 지역구에서 후보자 개개인을 홍보하는 데에 효과적인 선거운동 방법에 해당하는 후보자 개인에 대한 선거벽보 제작, 현수막 게시,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 등이 허용되지 않는다. 어깨띠, 윗옷, 마스코트, 표찰·수기 그 밖의 소품 등을 착용하여 공개장소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것, 선거일이 아닌 때에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는 것 등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연설 등 금지조항은 비례대표국회의원후보자의 연설·대담 기회 자체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 재정상태가 열악한 신생정당이나 소수정당의 선거활동에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호별방문 선거운동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 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은 호별방문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호별 방문에 의한 선거운동은 별다른 준비물이나 자본의 투입 없이 가장 손쉽게 직접 유권자를 대면할 수 있는 방법에 해당하고, 이를 통해 다른 매체를 통한 정보의 습득보다 더 직관적이고 핵심적인 판단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생정당과 소수정당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선거운동이다. “정당의 인지도나 정치적 영향력에 관계없이 정당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호별 방문에 의한 선거운동을 허용” 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당을 지지한 20만명, 20~30대의 페미니스트 후보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녀들과 “신생 초미니 정당”인 29번의 여성의당을 찾아냈을까. ‘나의 목소리’를 그 당명에서, A4 반쪽 짜리 공보물에서, 그녀들의 목소리에서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0만명이라는 이 숫자는 성평등정책의 방향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변화되어야 함을 알리는 숫자임에 틀림없다. 또한 이 숫자는 여성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라는 여성정치의 새로운 길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득권 양당체계 강화라는 총선 결과는 ‘성평등 민주주의’를 향한 여성의 정치세력화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과 함께 성평등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여성들의 바람 역시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성의당이 정당으로서 그동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우리 여성들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가 들을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의 정치세력화”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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